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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3. 2016

"'빠순이'라는 게 부끄러웠다면 못 썼을 것"

<환상통> 이희주 작가 인터뷰

                         

이번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의 수상작은 조금 남달랐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를 알린 터라 꽤 강렬한 마무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줄곧 이 소설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라는 심사위원 정한아의 표현에 격하게 공감했고, 책을 읽은 후에는 이 작가를 빨리 만나서 "압도적이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소설 <환상통>은 아이돌 스타를 사랑하는 팬 '만옥'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다. 총 3장으로 나뉜 소설은 일정 기간 동안 만옥과 함께 '팬질'을 했던 m과 만옥, 만옥을 짝사랑하는 남자 민규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이 과정에는 각기 다른 환상통을 앓는 처연한 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표면적으로는 흔한 사생팬(스타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팬)에 불과한 주인공 만옥도 이 구성을 통해서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된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만옥이지만 이희주 작가의 말마따나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팬질의 평균치"라고도 할 수 있다. "기억하는 한 항상 누군가의 팬이었다"라는 이희주 작가의 오랜 ‘팬질’ 경험으로 탄생한 <환상통>의 디테일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독자를 압도한다.

9월 초, 서울 상수동에서 이희주 작가를 만났다. 자신은 항상 '팬 활동'의 현역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상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각기 다른 환상통을 앓는 처연한 존재들에 대해, 오랜 시간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되어왔던 팬덤으로, 보다 다양한 여성 문학가들에 대한 열망으로까지 이어졌다.

"<환상통>의 결말,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Q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의 마지막 수상자가 되었어요. 

너무 좋아요. 문 닫고 들어오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웃음) 원래 대학교도 추가합격이 더 짜릿하잖아요. 한편으로는 다른 분들께 죄송하기도 하고요. 대학을 늦게 졸업하는 핑계로 편법을 쓴 것 같기도 하고… 스무 살이 넘었으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잘 고군분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Q 후기를 찾아보니 "이 작가는 분명 팬질의 아주 깊은 곳까지 도달했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실제로도 오랜 '팬질'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 활동이 소설로 이어진 계기는 뭔가요?

기억하는 한 항상 누군가의 팬이었어요. 항상 '이 감정을 한번 기록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휴학을 했기 때문에 제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 기회에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쓰다보니 이걸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간 거예요. 기록이라는 것은 어떤 구체성이라든지 객관성을 가질 필요 없이 소설의 방식으로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Q 사실 팬 문화만큼 우리 사회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도 드문데, 그것에 대한 문학적 발화는 거의 없었다는 게 조금 의아했어요.

저도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올 법한 이야기인데 오랜 시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팬 활동의 전부를 대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통해 팬들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팬 활동의) 현역이기 때문에 팬이 아닌 분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어요. 부정적인 측면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그냥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주인공 만옥과 m은 같은 팬의 입장이면서도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어요. 만옥은 아이돌 민규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사생팬이죠. 그녀에게 투영된 모습은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담고 있나요?

만옥이라는 인물이 일반적인 팬들보다는 더 강한 팬심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이긴 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워낙 극단적인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아, 이 정도는 극단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최소한의 존엄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은 지켜진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Q 더 극단적인 사례도 많나요?

그럼요. 이건 소설이니까 제가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절을 한 거예요. 굳이 따지자면 만옥은 오히려 현실 속 팬질의 '평균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팬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왔다갔다 하는 인물이지만,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만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어요.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죠. 극단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 의견들을 듣게 될까봐. 하지만 그 인물을 미화하거나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그들은 한순간이나마 우리의 연인이었다. 선팅된 차에 올라타 가버리는 연인, 창문을 열어주지 않는 연인,  그들을 위해 우리는 머리를 빗고 화장을 고쳤다. 그 결과 누가 보면 세게 맞은 것 같은 얼굴을 갖게 되었음에도. (중략) 기다리다가 기다림 자체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처럼 지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는 안온함을 느꼈다." - <환상통> 68쪽


Q 만옥은 아이돌 스타 민규를 이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했어요. 그런 만옥을 보니 '연예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준에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팬들의 모습이나 행동이 '이성적 사랑'이라는 프레임에 맞춰진 순간 이해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주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좋아하는 연예인의 열애설이 터지든 말든 '나는 내 갈길을 간다. 너는 네 갈길을 가라.' 이런 분들도 있거든요. (기자 : 열애설이 나면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잖아요.) 음, 사실 저는 '배신감'이라는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슬퍼할 수는 있지만 악플을 단다든지, 감정적으로 욕을 한다든지 이런 행동은 분명 나쁘다고 생각하거든요. 혼자 슬퍼하고 혼자 술 먹고(웃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팬들에 의해 컨트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월권이죠. 좀 어려운 문제 같아요.

Q m과 만옥, 만옥을 짝사랑한 동명이인의 주인공 민규까지, 모두 각자의 환상통을 앓고 있던 것 사람들인데요. 각기 다른 방식이었지만 세 사람의 사랑은 모두 처연했어요. 사랑의 무수한 단면 중에서도 이들의 사랑은 왜 모두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 대상이 '쉽사리 닿을 수 없고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제가 좋아하는 많은 문학 작품에서 사랑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그런 저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 속 만옥과 민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의 대상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팬이기 때문에, 혹은 짝사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처럼 고통 받고 좌절하게 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나요?

만옥과 m이 공개방송에 간 마지막 밤, 가짜 눈이 내리는 장면을 좋아해요. 두 사람이 쏟아지는 빛과 눈을 맞으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 소설의 결말에 대한 여운이 길었습니다. 만옥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의 감정으로 고통스러워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조금 더 행복한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소설의 결말이 나름대로 해피엔딩이라고 봐요. 쓰면서 다른 결말은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이렇게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빠순이' 집단에 대한 불합리에 반발할 필요 느낀다"

Q 앞서 '기억하는 한 항상 누군가의 팬이었다'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나 그 대상의 영향력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 궁금했어요. 이를테면 만옥에게 있어 아이돌 민규와 같은 존재처럼요.

다르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로 다른지는 확답을 드릴 수 없어요. 만옥처럼 깊게 사랑하는 이들부터 일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삶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팬덤의 스펙트럼이 넓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팬질이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에요. 저의 경우에는 생애 첫 출국을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기 위해 했고, 또 이렇게 아이돌과 관련된 소설까지 썼으니 영향을 많이 받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을 마구잡이로 촬영하는 사람들이나, 팬의 사랑을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의 편견.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는 팬질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이 존재해왔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시선은 저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왜냐면 제가 그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까요. 그보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하는 거예요. 만약 제가 그들이 지칭하는 '한심한 빠순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팬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결국 공연장 등에서의 과도한 몸수색이나 폭력, 혹은 방송국에 고용된 안전요원들이 팬들을 하대하는 태도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으니 팬들에 대한 편견은 분명 문제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나를 '빠순이'라는 이유로 얕잡아본다면 그냥 무시하면 돼요. 그러나 그 '부정적 시선'이 커져서 불합리한 일이 생길 때는 그것을 무시하면 안 돼요. 이런 일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게 팬들이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요.

Q 성숙한 팬문화로 사회적 인식이 상당 부분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정하고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런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팬덤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요. 팬덤 내부자가 성찰을 통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나 또는 연구자가 접근하는 것과 달리 이들이 하는 일은 그냥 전형적인 '빠순이' 이미지만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비난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된 것에는 먼저 팬덤문화가 형성되었던 초기에 미디어에서 팬을 부정적으로 그려낸 영향이 크지 않나 생각해요. 또 누군가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이 비일상적이고 낯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이들이 재현될 때 그 이미지가 '빠순이'처럼 그려지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빠순이' 집단이 가졌다고 생각되는 평균 연령이나 성별, '어린 여자'라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Q 사회통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이 소설 속에도 드러나있어요. 많은 문학 작품들이 소설 속에 인용되는데, 가령 <롤리타>가 인용되는 부분에서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이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모습이 변태적으로 묘사되어 불편하다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오죠. 이런 부분에서 작가님의 성향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 독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느낀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기분 좋게 책을 읽다가도 그런 부분이 나오면 소위 '잡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책의 훌륭한 문학성과는 별개로 정말 기분이 상해요. 소설에 <롤리타>를 인용했는데 저는 이 작품의 훌륭한 문학성을 좋아하지만 분명히 불편한 부분이 있거든요.

어릴 때는 사실… 잘 모르죠. 대부분의 콘텐츠가 그랬으니까요. 많은 콘텐츠들이 이미 자연스럽게 남성중심적으로 만들어졌고 남성 주인공에게 이입을 하게끔 훈련하는 과정으로 작용하니까요. 제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만 해도 다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지뢰밭에서 우연히 발을 디뎠는데 '다행히 맨땅이네' 싶었던 동화책 몇 권만 빼고요. 앞으로 태어날 많은 소녀들은 좀 더 다양한 텍스트 안에서 더 많은 꿈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국문과라서 근대문학부터 시작해서 많은 걸 배우는데, 수업을 듣다보면 당시의 여성문학가가 단 한 명뿐이에요. 시대적 문제도 있을 테지만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어요. 쉬운 예로 사람들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를 '츤데레(퉁명스럽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의 대명사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나쁜 놈이잖아요. 미화된 거죠. 그런 것들이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여성 문학가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독자로서 재미를 쏙쏙 빼먹는 즐거운 독서생활을 하고 싶어요.

Q 차기작은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아주 다양한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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