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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8. 2016

김별아 "여성 저항 아름다워야 한다?  말도 안 돼"

                     


탄실(彈實). 딸이 열매처럼 탐스럽게 여물기를 바라며 그녀의 부모는 딸의 아명을 ‘탄실’이라 붙였다. 본명은 김명순(1896~미상). 그녀는 훗날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가 되었다. 


부유한 집안 환경 속에서 귀하게 자란 초년기가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비극적 삶을 살았다. 기생첩의 딸, 스캔들 메이커라는 꼬리표가 늘 그녀를 괴롭혔지만 김명순은 소설, 시, 수필, 희곡, 번역에 능한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한국 문학사 위의 김명순이란 세 글자는 희미하다. 소설가 김별아는 역사 속에 감춰진 그녀의 이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2년 만의 신작소설 <탄실>에는 김명순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이 채 완결되지 않은 그녀의 수많은 작품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저는 자기 운명을 뚫고 나아가는 여성들을 좋아해요. 김명순의 삶은 그 자체가 처절한 패배로 끝이 났지만 이 여성은 끝까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흔적을 발굴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생을 발목 잡았던 신분과 성폭행 피해자임에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시간. 온갖 인신공격의 대상이 된 여성. 결국 일본의 정신병원에서 미쳐 삶을 마감한 이 여인이 현 시대에 살았더라면 과연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올해는 김명순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 존재를 부정당했던 신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13일,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김별아 작가를 만났다. 



"탄실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사회, 크게 다르지 않다"


Q <탄실>은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삶과 사랑에 대한 소설입니다.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재구성된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무엇보다 '왜 김명순이어야 했을까?'라는 선택의 이유를 묻고 싶었습니다.


근대문학은 아직까지도 계속 연구 중이고 발굴 중인데,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부분은 많이 누락되어 있어요. 오히려 저는 '왜 하필 이 여자가 빠졌을까?'가 궁금하더라고요. 그 궁금증을 기본으로 시작된 것이죠.


Q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가 외에도 기생의 딸, 스캔들 메이커라는 갖가지 수식이 붙은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기생의 딸이라는 점이 그녀의 험난한 인생의 시작점이 된 것 같았어요. 


기생의 딸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는 했어요. 조선 여성들을 옥죄었던 것이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덕목들인데, 삼종지도 할 수 있는 세 사람(아버지, 남편,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던 거죠.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순은 문인으로서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고자 했던 인물이에요. 그녀의 수필들을 보면 특히 작가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 있어요. 어린 시절에는 기생의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엄마를 엄마라고도 부르지 않았던 그녀가, 나중에는 엄마의 삶을 인정하게 된 대목들이 수필에 녹아 있거든요. 그런 대목들이 저는 작가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삶은 비극이었지만 그 사람 나름대로는 충실하게 살다 갔구나, 싶은 거죠. 


Q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소설집을 출간했고 그 외에도 시, 수필, 평론, 희곡, 번역 시, 번역 소설,을 발표하고 매일신보의 기자로 활약하기로 했어요. 이토록 많은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 누락된 이유가 의문이에요.


근대 여성으로서 김명순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에서 '발견된' 인물이에요. 여성이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회에서 이 신여성의 존재는 더욱 남달랐죠. 다들 신여성을 아주 신기해 했어요. 하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재미있다'라고 취할 수 있는 만큼의 여성성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 싹을 잘라버려요. 책에도 나오지만 김명순을 가리켜 "세련치 못한 표본"이라 칭하는 것이 그중 하나예요. 


그런 세간의 오해들을 풀어보고자 김명순은 더 많은 글을 쓰고 작품 활동을 했지만, 실제로 시를 제외하고는 완결된 작품들이 많지 않아요. 창작이라는 것은 첫 번째가 자기 고백의 성격을 갖고 있고, 두 번째가 그 자체로 소통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김명순은 공격에 대한 방어로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마무리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감정을 정제해서 감정이나 개인사를 뛰어넘어 그것을 객관화 해야 하는데 그 벽에 멈췄기 때문에 더욱 비극이죠. 유난히 그녀의 작품이 애상, 한탄, 비탄 등의 감상성이 짙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Q 삶과 작품 활동의 상당 부분이 누락된 인물인 만큼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요새는 데이터베이스가 굉장히 잘 돼 있더라고요. 김명순에 대해 나와 있는 전집을 기본으로 했고, 편집자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연구 자료의 경우는 필요한 맥락에서 캐치를 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 숨은 행간들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원문을 계속해서 찾아보려고 했죠. 


<미실> <영영 이별 영이별> <채홍> <백범> 등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실존 인물들의 삶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역사물을 쓴 지 10여 년이 됐어요. 작가적 소명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분명 여성 작가만이 볼 수 있는 시선이 있거든요. 역사를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비어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 거죠. 


저는 자기 운명을 뚫고 나아가는 여성들을 좋아해요. 김명순의 삶은 그 자체가 처절한 패배로 끝이 났지만 이 여성은 끝까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흔적을 발굴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Q <탄실>의 의미가 특별한 것은 대중들에게 '근대 여성 소설가 김명순'을 알리는 첫 번째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부분에서 부담감은 없으셨는지 궁금하네요.


현재까지 전집 두 권과 논문을 빼놓고는 김명순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 위주의 이야기를 담고자 많이 노력했어요. 그녀의 작품을 인용해서 소설을 재구성한 것도 같은 이유고요. 무엇보다 대중들은 실존 인물에 대한 극화를 역사 그대로 인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김명순이란 인물과 그 삶에 대해서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어요.


Q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된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데요. 각색된 이야기를 통해 해당 인물을 알게 될 경우의 혼선도 상당한 것 같아요. 사실이 아닌 내용을 간혹 사실로 인식하게 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현재 '사극'이라고 하는 콘텐츠에 대한 불만이 있어요. 역사물은 접근을 잘 해야 하는데 모든 극의 세자, 왕자, 공주들의 이야기가 연애로만 이어지잖아요. 의사든, 변호사든, 군인이든 연애만 하면 다 비슷하게 그려지는 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차라리 그렇다면 역사를 배경으로만 삼고 아예 새롭게 각색한 픽션으로 가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나마 각색에 대해서 그 재미에 인정한 것은 영화 '왕의 남자' 정도예요. 영화 속 '공길'은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두 번 정도 기록되어 있는 공결(孔潔)이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인물이에요. 연산군 앞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를 봐도, 실제로 연산군 5년에는 공결(孔潔)이란 광대가 왕을 풍자하다 형장을 맞았다는 기록도 있으니 아주 얼토당토않은 상상력은 아니잖아요. 시대적 팩트를 거스르더라도 '괜찮군. 재밌는 상상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를 아예 바꿔버린다거나, 없는 사실을 가지고 미화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죠.



"100만 부 파는 작가 한 명보다 1만 부 파는 작가 100명이 필요하다"


Q 김명순이 현재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녀의 신분이 회자되었을 것이고 여러 스캔들로 구설수에 휘말려 더 힘든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씁쓸하게도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네요.


제가 처음 등단을 했던 24년 전만 생각해봐도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제가 더 이상 부당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단지 내가 '나이를 먹은 여자'이기 때문이지 이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또 하나의 이유는 1990년대 이후부터 여성 작가들이 많은 책을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니까.


여자 후배들을 만나면 그 이야기를 꼭 해요. 경제력은 절대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은 후배들이나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친구들은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을 거예요. 가진 자들의 타깃은 언제나 더 어리고 힘없고 약한 이들을 향하게 돼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봐요.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계속해서 지적을 해줘야 하고요.


Q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의 폐해가 여전히 이 사회에 잠식되어 있다는 의미겠군요.


그럼요. 하지만 그들은 비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무지에서 비롯한 거겠죠. 한 번도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거든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요즘 한국 사회가 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게, 각각의 본색을 드러낼 만한 사건들이 자꾸만 생기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인권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을 키워야 해요. 기본적으로 젠더 감수성은 인권 감수성이지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이런 것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세상이 이런 꼴이죠.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어야 해요. 현재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느껴지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그런 방법 중 하나인 거고요. 그런데 그 방식을 두고 그게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저항이 아름다워야 하나요? 그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에게 '아름답게' 헤엄쳐서 나오라는 말과 같아요. 이런 시도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는 ‘왜 저들이 저런 언어, 왜 저런 방식으로 대응을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 ‘왜’를 생각도 하지 않고 묻지도 않고 무조건 화를 내는 형국인 거죠.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그것을 성찰할 만한 사회가 아니라는 거예요. 단순히 남녀의 관계를 떠나서 모두가 적이 되어버리는 이 사회 분위기도 원인이니까. 낙인을 찍고 '더 이상 얘기하지 마'라는 방식의 불통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김명순이 살았던 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고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싶어요.


Q 현재의 한국 문학계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젊은 작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지고 세계적인 문학상에서 쾌거를 이루는 등 많은 변화와 성과가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 문학계의 변화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긍정적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고 분명 유의미한 일이지만 그것으로 한국 문학계 전체가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했다고는 볼 수 없어요. 책이 잘 판매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작가를 가장 위축시키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거거든요. 작가가 책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고, 그것으로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면 문학계는 저절로 활성화가 될 거예요. 독자는 많이 읽고 작가는 많이 쓴다는 방증이 될 테니까.


전 언제나 그랬어요. 100만 부를 파는 한 명의 작가보다 만 부를 파는 100명의 작가가 필요하다고. 만 부를 판매하면 천만 원 정도가 되는데, 그 돈이면 적어도 1년에 한 권씩은 어떻게든 쓸 수 있다고요. 만 부를 팔기 위해 이렇게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만 부를 판매하는 작가가 100명이나 될까요? 이제 독서는 특수하고 특별한 취미가 됐어요. 말 그대로 '활자를 보는' 것에 익숙한 시대이기 때문에 '읽는' 성찰의 행위까지는 도달하기가 힘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읽기를 포기하느냐. 그게 아니라 함께 읽는 '낭독'의 행위처럼 더 많은 방식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금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다들 이야기를 해요. 욕망이라든가 욕망의 좌절, 상실에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책 밖에 없다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게 되는 행복감. 물질로 해결되지 않는 자기 충만감들을 모두 얻을 수 있는데 그걸 잘 모르죠. 그때가 올 때까지 저나 기자님이나 출판사 모두가 의자를 빼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아올 누군가를 위해서 지금은 큰 성과가 없더라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죠. 그게 언제가 될지, 돌아올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다시 책의 자리로 돌아올 누군가를 위해서 빈 의자 몇 개는 준비해두고 있는 것. 이게 우리의 역할이겠죠.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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