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Oct 04. 2016

"한 순간도 쓸모없는 순간은 없다"

일상의 기록자 공혜진 작가 인터뷰

               

※ 일상을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공혜진 작가가 신간 <오늘, 작은 발견>(인디고)을 펴냈습니다. 인디고 출판사 편집부가 공혜진 작가와 한 인터뷰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오늘은 어떤 물건을 만나게 될까?' 무심코 주운 사물 덕분에 일상이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공혜진 작가. 작고 소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서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을 맛보게 됐다. 그런 순간들을 담아낸 <오늘, 작은 발견>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뿌듯하게 하는 사소한 기쁨을 만나보자.


Q 3년간 꾸준히 사물을 주워 사진을 찍고,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전부터 이러한 작업을 하셨는지요? 


대학을 졸업한 후, 수목원에서 식물 세밀화 그리는 작업을 했어요. 단순히 한 장면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 식물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관찰한 후에 한 장에 담아내야 하지요. 이 작업을 3년 정도 하다 보니까 식물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연일기를 쓰게 됐고, 무언가를 관찰하여 제 생각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꽃, 어떤 식물로 보였던 것들도 자꾸 관찰을 하다 보니 애정이 생기고, 마치 제게 말을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교감하는 순간이 있어요. 우리는 순간순간 많은 것들과 교감하고, 감정을 나누는데, 그것이 꼭 사람만은 아니지요. 이러한 작업들이 제게는 수많은 감정들을 선사했고, 이제는 일상처럼 자리하게 됐어요.  


Q 이 책은 특히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으신가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분들이나 혼자 지내고 싶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우리가 생활하면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들과 순간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공감하고,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또 이제 막 글을 쓰려고 하는 분들이나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은 분들, 혼자서 있는 시간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이 책을 통해 어떤 것을 얻어 가시길 바라나요? 


제가 오랜 시간 식물을 그리고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바로 식물이 태어나서 시들어 죽을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중요하고, 그 식물 자체라는 것이지요. 화려한 꽃이 피어났을 때만, 그 식물이 아니듯이 어쩌면 한 순간도 쓸모없는 순간은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나눌 수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순간이나 굉장히 하찮게 여겨지는 순간들까지도 전부 내 삶이고, 내 자신이잖아요. 내 삶의 경중이 없다고 생각하면, 소소한 순간들도 소중하고,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런 순간들을 이 책을 통해 느껴보시고, 내 삶 속에서도 찾아보시면서 힘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프고 하찮은 순간도 전부 내 삶"


Q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간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었을 텐데요. 작가님에게 이런 작업들은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 자연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중에 우연히 길에서 단추를 주웠는데, 반짝 하고 빛이 났어요. 너무 작고 예뻐서 주웠는데, 그때부터는 수많은 단추들이 제 눈에 들어왔지요. 실이 풀려 소매 끝에서 덜렁거리는 단추, 옷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단추, 유난히 돋보이는 단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추들이 제게 말을 거는 거예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공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내가 가는 길에 한 사물이 떨어져 있는 것 자체가 저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마치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자세히 관찰하고, 교감을 하게 돼요. 이제는 이런 작업들이 일상이자 삶 자체가 되었어요. 


Q 무언가를 기록하는 작업은 작가님에게 어떤 장점을 선사하나요? 


사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은 모두 다르지요. 그런데 사소한 것에 애정을 갖고 기록하다 보니까 제 감각이 다듬어지는 것 같아요. 똑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감정이 깨어나고 느끼는 것의 가지 수는 일반인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수많은 사물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물은 무엇인가요? 이유가 있다면요? 


어차피 같은 것이라면, 작고 응축되어 있거나 색깔이 여러 개인 것, 어느 사물의 일부분이어서 주었을 때 뭔지 모르는 것들을 주로 좋아해요. 자연물을 제외한 것 중에서는 일회용 라이터 손잡이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색색깔의 작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모아 놓으니까 너무 깜찍해서 이걸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처음에는 주워 놓고도 뭔지를 몰라 탐정이 범인 잡듯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어요.(웃음)


또 하나는, 세탁소에서 세탁물에 붙이는 작은 종이를 아시나요? 보통 아파트 동, 호수가 적혀 있는 작은 종이인데, 어느 날 이 종이를 줍고는 ‘세탁소 찾아 삼만리’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 종이를 들고 직접 찾아갔더니 세탁소 사장님이 선물로 한 뭉치를 주시기도 했어요. 자꾸 물건을 줍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고, 소소한 사건들도 생기네요. 이럴 때 참 반갑고, 재미있지요. 


Q 사물을 발견하고, 줍는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주로 어떤 것들을 모아 기록하시는지요? 


대부분 눈에 보이면 주워서 관찰하는 편이에요. 주우면서 몇 가지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져오게 되더라고요. 가끔 뭔지 모르거나 더러워서 그냥 지나치는 사물도 있는데, 집에 와서 생각이 나요.(웃음) 요즘에는 틈새 식물을 기록하고 있어서 사물 기록은 잠시 쉬어가며, 현재 작업에 집중하려고 해요. 


Q 혹시 잃어버린 자신의 물건을 길에서 다시 찾은 적도 있나요? 


신기하게도 있어요. 제가 직접 만든 작은 인형인데, 시내에 나갔다가 떨어뜨렸거든요. 그런데 3일 만에 다시 제 품으로 돌아왔어요. 비록 인형이 망가지긴 했지만, 더 다치기 전에 저를 다시 만난 것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아요. 제가 주운 다양한 물건들도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더 소중해지죠. 그래서 제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봐요.


"작은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면 스스로 단단해질 것"


Q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지만, 독자들이 특히 공감하거나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그것보다 제가 평소에 주운 사물들을 새로 배치하거나 꾸며서 주변인들에게 핸드폰 배경화면용으로 선물하곤 하는데 반응이 무척 좋아요. 또 주변인들은 길을 가다 예쁜 사물이 있으면 제 생각이 나서 주워다 주기도 하는데, 제게는 이런 반응들이 모두 감사하네요. 


Q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꾸준히, 조금씩 매일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걸 쌓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한데, 결국은 애정이자 관심이겠지요. 한 자를 쓰더라도 매일 쓰다보면 습관이 되고,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예요. 거창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작은 감정, 재미있는 순간, 짧은 말 등으로 출발해보는 건 어떨까요. 


Q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작은 물건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기분이나 시간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책이 출간된 후에도 꾸준히 사물들을 기록하고 계시는지요?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들은 계속될까요? 


그럼요, 현재 하고 있는 작업에 집중하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예쁜 게 많아서 자꾸 줍게 되네요.(웃음) 제 눈에는 예쁜 게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이 작업은 계속될 것 같아요. 여러분도 '나에게만큼은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작은 기쁨을 만끽해보세요. 소중한 순간들이 자꾸 쌓여 특별한 순간이 된답니다. 


Q <오늘, 작은 발견>외에도 여러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앞으로 다른 책도 출간하실 예정이신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못하는, 길 위의 틈새 식물을 관찰해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알고 보면 틈새 식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해살이 식물이어서 이야기가 풍부하거든요. 아직 출간 날짜는 미정이지만, 많은 독자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하루 중, 내가 어떤 순간에 마음의 위안을 얻을까 생각해보세요. 아마도 작고 사소한 순간일 때가 많을 거예요.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었을 때, 단골집 사장님이 안주를 하나 덤으로 주실 때, 친구가 힘이 되는 말을 해줄 때 등 커다란 무언가가 아닌, 사소하고 작은 순간들 덕분에 힘을 얻을 때가 많지요. 결국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작은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서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그런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면, 스스로도 무척 단단해질 거예요. 이 책을 통해 그런 오늘, 작은 순간들을 느끼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네요.


사진 : 인디고 출판사 제공


취재 :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김별아 "여성 저항 아름다워야 한다?  말도 안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