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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05. 2016

타블로 "권지용·유희열의 손글씨여야 했던 이유 있다"

                                                                       



저자로서의 외출은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후 8년 만이다. 그 사이 타블로의 이름 앞에는 꽤나 많은 수식이 붙었다. 배우 강혜정의 남편, 딸 이하루의 아빠,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독립 레이블 '하이그라운드' 대표, 최근 정식 출간된 <블로노트>의 저자. 


이미 대중들에게는 낯선 수식이 아님에도 그는 유달리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작가' 혹은 '저자'라는 두 글자가 어색한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불리기를 원치 않았다. <블로노트>가 '시/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이 상황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단다. 250여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글귀들은 시나 에세이의 형태는 분명 아니지만 그 여운이 시처럼 길다. 그러나 이 책의 장르를 굳이 나눈다면, 그의 말처럼 <블로노트>라는 네 글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블로노트>는 그가 두 시즌(2008년~2009년, 2014년~2015년)을 DJ로 함께했던 MBC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속 동명의 코너 '블로노트'의 글귀를 모아 완성한 책이다. 코너가 시작되면 즉흥적으로 떠오른 짧은 단상들을 소개하던 코너다. 책에 소개된 글귀 중 일부는 영화감독 박찬욱, 빅뱅의 권지용, 배우 공효진 등 열세  명의 셀럽들과 여섯 명의 독자들이 참여해 손글씨로 완성했다. <블로노트>의 예쁜 타이틀 폰트는 그의 딸 하루의 손글씨다.


"학교로 비유를 하자면, 음악을 할 때는 학교 방송실에 들어가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방송하는 느낌이고, 이렇게 책을 내는 것은 친구들에게 비밀 쪽지를 돌리는 느낌이에요."


그가 8년 만에 건넨 이 비밀 쪽지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적혀 있을까. 9월 28일 <블로노트>의 정식출간일에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타블로를 만났다.



"권지용, 박찬욱, 유희열… 그들의 손글씨여야 했던 이유 있다"


<당신의 조각들> 이후 8년 만이네요. 오늘이 정식 출간일인데, 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어요. 많은 분들이 타블로의 책을 기다렸다는 의미인 것 같네요.


너무 감사해요. 사실 이미 라디오에서 진행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 두 번째 시즌(2014년~2015년) 때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걸 알고 조금씩 멘트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블로노트> 자체가 라디오 엔딩 멘트 대신 즉흥적으로 생각나던 것들을 이야기한 거라서 아쉬운 부분을 다듬은 후에 출간이 됐죠. 


Q 각 글귀마다 완성된 시간들이 모두 달라서인지, 책 작업을 하면서 오래전에 써둔 일기장을 발견하는 느낌처럼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블로노트>를 처음 시작했던 2008년 당시의 글도 있거든요. 굉장히 신기했던 게, 글을 보면서 그때의 나를 돌아보는 것 같았어요.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내용이 꽤 많아서, 지금에 비해 그때의 저는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알잖아요. 제가 (강)혜정이를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했는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글이 또 달라지더라고요. 예전 사진을 모아둔 사진첩을 서랍 속에 두었다가 오랜만에 꺼내보는 기분이긴 했어요. 특히 <블로노트>에는 독자분들의 추억도 함께 있어서 단순히 저의 추억을 담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의 추억도 함께 담는 기분이라 더 부담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설레기도 했고요.


Q 셀럽들과 일반 독자들의 손글씨가 선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들의 손글씨여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권지용 씨도 그렇고 박찬욱 감독님도 그렇고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해당 글귀를 그분의 손글씨로 표현을 해줘야 더 잘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통은 제가 직접 글귀를 정해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분들은 여러 개의 후보 중에서 직접 글귀를 선택하시기도 했고요. 특히 유희열 선배님 같은 경우는 평소 선배님이 노래를 부르는 스타일을 생각해보았을 때 너무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죠. 


권지용(상) 유희열(하)의 손글씨 (달출판사 제공)


 

Q 소설집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짧은 글귀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호흡이 짧은 글이 주는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런 짧은 글들의 매력이라면 지은이가 씨앗만 던져주고 그 씨앗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될지, 꽃이 될지, 그냥 흙의 일부가 될지는 완벽히 독자의 권한으로 넘긴다는 거죠. 독자가 자신의 영역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저 역시 독자로서 그런 글을 읽는 걸 좋아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광고 카피예요. 어릴 때부터 광고 카피에 굉장히 큰 매력을 느꼈거든요.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큰 울림을 주는 문장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제 노래 가사도 보면, 마치 짧은 문장들의 조합처럼 구성이 되어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던 것 같아요.



Q 비슷해 보여도 짧은 글과 노래 가사를 작업할 때의 차이는 분명히 있죠?


네, 분명히 있어요. 아무리 닮은 것 같아도 확실히 다르다는 걸 저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실제로 <블로노트>를 작업하면서 가사를 위해 빼둔 것도 있고, 오히려 문장으로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한 글귀도 있거든요. 코너의 음악이 재생되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이야기한 건데, 가끔은 너무 괜찮은 게 떠올라서 '이거 노래 가사로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라고 판단이 되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또 다른 걸 생각해서 소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되게 별로인 글귀를 막 지어내요.(웃음) '락' 이런 거. 말이 안 되는 것도 굉장히 많았어요. 


반대로 '이런 표현은 가사로 전달되면 좀 미흡하게 느껴지거나 근사하지 않은 표현처럼 느껴지겠다'라는 생각이 들 경우에는 글로 남겨두었고요. 글로 보는 것이 음악에서는 표현해주지 못하는 또 다른 매력을 갖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문장이라는 건 종이 위에 얹히는 순간 ‘픽스’되는 거잖아요. 음악처럼 한 번에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 글을 들고, 쥐고, 소유하면서, 때로는 생각하면서 볼 수 있으니까 가볍지 않고… 그만의 무게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Q 노래 가사를 위해 아껴두었던 글로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몇 개는 이미 썼어요. 되게 신기한 게 가끔은 <블로노트>에 썼는지도 몰랐던 표현들을 가사에 쓰고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감사하게도 젝스키스 신곡 프로듀싱을 맡게 됐는데, 이번 젝스키스 노래의 가사 한 부분에 예전에 ‘블로노트’에서 소개했던 글귀가 살짝 등장해요.



"예술 '하는' 사람 아닌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신비로운 일 한다."


Q 트위터를 보니 <블로노트> 읽을 때 들을 만한 선곡표를 정리해주셨더라고요.


이것도 역시 팬분이 그런 걸 하나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셔서 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블로노트>가 라디오에서 시작된 거니까요. 어제(27일) 비도 오고 그래서 열심히 올렸죠.


Q 그 아래에는 "독서는 신비로운 행위"라는 글이 있었어요. 책을 읽은 직후였나요?


책은 항상 읽고 있어요. 책을 읽기가 갈수록 어렵거든요. 책을 읽을 시간을 갖는 것도 어렵고, 집중력을 갖는 것도 어렵고. 이제는 눈으로 보고 흡수하는 것들이 제가 원치 않아도 여기저기에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책을 쥐고 있을 여유가 많지 않아요. 어릴 때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음악을 시작한 후로는 '많이' 읽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요즘에는 책을 일부러라도 더 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예술 그 자체를 읽는 사람, 듣는 사람, 보는 사람이 가장 신비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걸 만드는 사람이 아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마술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예술을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서는 신비로운 행위"인 것 같다고 올린 거였어요. 읽는 행위 자체를 그렇게 느끼거든요.


Q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런 마인드가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네. 저는 그 어떤 것도 듣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제 음악이 조금 추상적이거나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음악을 듣고, 글을 읽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지, 그 사람을 앉혀 놓고 '연설'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물론 그 연설이 훌륭하다면 괜찮겠지만, 저는 제가 훌륭한 연설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좀 괜찮은 대화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음악도, 글도 항상 소통의 여지를 위해서 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 같아요.


Q '읽기'보다 '보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예요. 프린트 미디어 시대에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데, 출판시장의 소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타블로 역시 글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테이프, CD의 세대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겪었어요. 4집 발매 후에는 테이프가 사라졌거든요. 어느 순간 앨범 판매가 아닌 디지털 음원이 순위의 척도가 된거죠. 음원사이트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잠시 '어쩔 수 없이 타격을 봐야 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당시에 인터뷰를 할 때마다 '변해가는 음반 시장의 추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거든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에요. '시장이 변한다고 해서 음악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음악을 안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에요. 어차피 음악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 이 시장이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요.


숫자로 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졌을 수도 있죠. 그로 인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의견, 모두 타당하다고 봐요. 부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책을 아무도 안 읽는 것도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책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찾게 될 책,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 읽었을 때 뭔가 보탬이 되는 책.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걸 목표로 한다면 좋겠어요. 그 아쉬움 때문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런 경쟁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Q 책을 출간하는 연예인들이 꾸준한데, 그 분야가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나름의 이슈가 되곤 했어요. 8년 전 타블로 씨가 출간한 <당신의 조각들>이 그랬고, 작년에는 샤이니 종현이 출간한 <산하엽>이 그랬고요.


분야 밖에 있는 사람이 어느 분야에 발을 들이면 이슈가 되는 건 당연한거고, 저 역시 매우 감사해하는 일이에요.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이슈가 될만한 일로 느껴지진 않아요. 작가나 소설가 도전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글 쓰기를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책을 낸 것 뿐이니까요.


콜링(calling : 천직)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영화감독을 위해서 태어났어. 운명이야."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다. 그런 의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한 가지 일을 평생 하는 장인 정신에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무턱대고 다양한 일을 해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박수쳐요.


Q 대중들과 음악이 아닌 책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에너지가 될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학교로 비유를 하자면, 음악을 할 때는 학교 방송실에 들어가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방송하는 느낌이고, 이렇게 책을 내는 것은 친구들에게 비밀 쪽지를 돌리는 느낌이에요. 규모라는 단어를 붙이자면 에픽하이의 음악은 사실 소규모예요. 저희 셋이 하는 걸 전달을 하는 것인데, 음악의 특성상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에는 피할 수 없이 많은 곳에 퍼지잖아요. 막상 우리는 속삭이고 있는데 결국 외침이 되는 것처럼요.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속삭임을 속삭임대로 전달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책은 그런 속삭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제 책을 읽는 분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아요.


Q 타블로의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상당한데 소설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당신의 조각들>은 제가 19살~20살 때, 음악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때 썼던 단편 소설들을 모아서 출간하게 된 거라 따지고 보면 저는 ‘타블로’라는 이름을 가진 후에 소설을 써본 적이 없는 거예요. 가끔 팬분들이 “소설 또 냈으면 좋겠다”라고 하실 때 참 감사하지만 그럴 시간 있으면 그냥 좋은 소설가의 작품을 읽을래요.(웃음) 다만 <블로노트>는 그동안의 글이 이 한 권에 모두 담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편의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요.


Q 속편이 나온다면 <블로노트 2>는 시/에세이가 아닌 어떤 장르에 분류가 되는 게 좋을까요?


<블로노트>는 <블로노트>만의 장르라서 저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기에는 제가 너무 작고... 모르겠네요. 그냥 '수다' 혹은 '애매함' 아니면 '쪽지' 이런 거 어떨까요.(웃음)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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