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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6. 2016

책임감 없는 아이, 책임감 없는 어른

말만 하는 부모, 상처 받는 아이


세상이 점점 험해진다고, 사람 사는 게 삭막하다고 한다. 크고 작은 청소년들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큰 일이다 큰일.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아이들이 저럴까?” 걱정 반 한숨 반이다.


한번은 집 근처 중학교에서 일하는 목공소 아저씨의 푸념을 듣게 됐다.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어요. 아이들이 부숴놓은 창문, 문짝, 사물함, 신발장 수리하느라 하루 해가 짧아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부숴놓고 미안해 하지도 않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래도 물건 부서지는 건 괜찮다. 아이들끼리 다투다 다칠까 겁이 난다. 친구를 때려놓고, 사과도 뒷감당도 부모가 하는 걸 보면 아이들에게 과연 책임감이 있는 걸까 싶다. 일만 저질러놓고 나 몰라라 하는 아이들. 가슴속 인성이 메말라가고 있으니 책임감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친한 친구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화해서 길고 긴 하소연을 한다. 친구는 학원 원장인데, 자기가 학원 원장인지 인력센터 소장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이해가 안 돼. 사람들 상대하느라 가슴이 까맣게 멍든 것 같아. 월급을 받으면 다음 날부터 말없이 안 나오고, 연락이 없어서 전화하면 번호가 바뀌어 있고, 아프다고 결근했는데 알고 보니 여행 갔더라고. 정말 거짓말도 가지가지야."

애들 가르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학원 직원들 관리가 훨씬 힘들다고 한다. 도대체 그 부모는 자식에게 뭘 가르쳤는지 가정교육이 궁금하다며 울먹거린다.

우리 동네 단골 미용실은 원장님이 직원 없이 일하신다. 혼자서 동동거리며 일하는 게 힘들어 보일 때가 많다.

"사람을 쓰지 왜 혼자 고생이세요?"

그랬더니 이러신다.


"사람들 쓰다 쓰다 지쳤어요."

간신히 사람 구해놓으면 시키는 일만 겨우 하고 돈 받으면 바로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람 구하고 일 시키는 데 신경이 너무 많이 쓰여서 차라리 몸이 힘들더라도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단다.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도 식당 아줌마도 푸념이 똑같다.

"일이 힘든 게 아니에요. 사람 때문에 힘들어요. 다들 뭔가를 책임지는 걸 너무 싫어하거든요."

결혼 안 하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져서라고 한다. 결혼 비용도 많이 들고, 집 장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아이들 키우는 건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라고 겁을 낸다. 결혼은커녕 취직도 힘든 시기에 무슨 결혼이냐고 발끈하기까지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힘드니까 어떤 것도 책임지기 싫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책임감이 늘고 아이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단다. 그냥 맘 편히 나 혼자 적당히 쓰면서 재밌게 살고 싶다고 한다. 시도조차 안 해보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이다.

20, 30대가 그러는 것도 모자라 얼마 전엔 건너 건너 아는 분이 "친구 얘기"라며 해주셨다. 친구 아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가는 좋은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지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단다. 어느 날 집에 오더니 자신은 "절대 결혼은 안 하겠다"고 하더란다. 고등학생 아들이 벌써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니 어이도 없고 황당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대답이 이랬단다.

"제가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다니려고 이렇게 밤 새워 공부하는데 결혼하면 아내랑 자식들 책임져야 하니까 또 힘들 거 아니에요. 제가 죽도록 고생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만 편히 사는 것도 싫고요. 그냥 혼자 벌어서 제 맘대로 쓰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래요. 저 혼자 살 집도 이미 다 설계해놨어요."

그리고 덧붙이더란다.

"저만 이런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비슷한 생각하는 친구들 많아요."

실화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10대 청소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 본 연재는 <말만 하는 부모, 상처받는 아이>(김은미, 서숙원/ 별글/ 2016)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글 : 칼럼니스트 김은미, 서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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