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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Sep 27. 2016

사진으로 옮기기에도 아까운, 리치필드 국립공원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 10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준비할 때이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 두근거리는 그 마음처럼, 여행 전은 늘 앞으로 올 시간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다. 여행의 중반을 채우는 것은 신기함과 즐거움이다. 연인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희노애락이 여행 중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여행의 후반,  어느새 지쳐버린 마음에 헤어지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치 이별 직전의 연인들처럼. 그러면서도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때늦은 후회 또한 밀려오기 마련이다. 

이럴 땐 온몸이 더 이상은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오기도 한다. 최고기온 48도, 최저기온 25도인 건기 시즌 탑엔드Top End로의 여행이 그랬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그 달아오른 대지와 야생동물의 천국인 이곳과 뜨겁게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지칠 대로 지쳐 방향감각조차 상실해버린 나는, 예정되어 있던 리치필드 국립공원Litchfield National Park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리치필드 국립공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동안의 숱한 경험을 통해 함께 보낸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으려면 마지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국립공원 내 플로렌스 폭포Florence Falls 앞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두근거리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쁘게 다듬어진 '공원'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자연' 그대로 국립공원에서 만난 시원한 물줄기는 지난 일정 동안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어 지쳐버린 내게 환희 그 자체였다. 여행지와 나의 관계가 흔들렸던 것은 여행지 탓이 아니라 단지 내가 힘들고 지쳐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계곡 위에서부터 우렁찬 소리를 내며 쏟아져 두 갈래로 나뉘는 쌍둥이 폭포의 물줄기는 카탈로그에서 봐왔던 '잘 찍은 사진 한 장'보다 훨씬 커다란 황홀경을 안겨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더위를 식히는 서늘한 공기와 얼굴에 튀는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클로즈업하여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젖은 옷을 어찌할 것인가 고민할 틈도 없이 폭포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맑은 물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동안 그동안 쌓였던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다시 여행과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다가가 지친 마음을 풀어놓자 그는 변함없이 멋진 모습으로 잠시 쉴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흥미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에 싫증을 내며 살아가지만 여행만큼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제 할 만큼 했다거나 충분하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나만의 착각이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매 순간 달라지듯 여행에서 얻는 것 역시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과 사랑에 빠지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 삶은 여행으로 인해 늘 두근거린다. 

내가 평생 사랑할 대상이 '여행'이라서, 한없이 즐겁고 고맙다.


about: Litchfield National Park 
다윈Darwin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리치필드 국립공원은 1년 내내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유칼립투스를 비롯해 자생식물도 많이 자란다. 가파른 산비탈부터 평원, 사암 절벽, 완만한 구릉지 등 다양한 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마그네틱 터마이트 마운스Magnetic Termite Mounds는 흰개미들이 쌓아 올린 탑으로 작게는 1m, 크게는 3m에 가까운 높이를 자랑한다. 두 개의 폭포가 함께 떨어지면서 깊은 계곡을 형성하는 플로렌스 폭포는 더 없이 맑은 물로 수영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역시 폭포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왕가이 폭포Wangi Falls는 찾아가기 쉬워 사람들로 붐빈다. 폭포들이 만든 자연 수영장인 불리 록홀Buley Rockholes도 인기가 좋다.


글 : 칼럼니스트 앨리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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