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성숙한 세월, 굳이 이름붙이자면 그랬다. '시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이다음에 우리도 큰 세상에서 또 만나자!'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원고를 낭독하던 선배가 후배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게 되었으니, 그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짝꿍은 한성동네의 박숙희.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정착민 부모를 따라 무라리에 내려온 아이. 칠산 바다를 파 들어간 드넓은 간척지를 경작할 노동력과 서울의 달동네 해소라고 하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무라리 일대에 정착촌을 건설하였고, 여기에서 생겨난 동네가 한성과 평산이었다. 어떻든 1학년에서 5학년까지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그 아이와 맨 앞줄, 한 중앙에 앉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그녀의 희멀건 콧물과 쉼 없이 연필에 침을 묻혀 대는 버릇 때문에 그러잖아도 피곤한 인생에 아예 살맛마저 달아났다.
연필로 책상 한가운데에 삼팔선을 그었다가 나중에는 그곳을 칼로 파내어 깊은 홈을 만들고, 색연필이 다 닳아지도록 색칠까지 했었다. 그리고 뾰족하게 연필을 깎아 서로를 향해 겨냥하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경계선을 넘는 날이면 사정없이 찔러 댔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한 미움과 증오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증오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예쁘지도 않은 주제에 도통 꾸밀 줄도 몰랐으니, 머리칼은 항상 너풀너풀했고 눈곱은 늘 떼어지지 않은 채였다. 여기에 더해 콧물에, 침에. 마음씨라도 착하다면 또 모를까. 놀부 같은 욕심에 시기 질투도 강하여 태민을 향해 불 일 듯하는 승부근성을 드려내곤 했으니. '호랑이 없는 산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말처럼, 1등이야 제 또래에서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내 앞에서는 어림없는 일. 감히 제 까짓 게 수석 졸업한 선배를 향해 도전장을 띄우다니. 제 딴에 서울에서 왔다고 누구를 촌놈으로 보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그녀의 도전적인 자세에 보태어 태민의 속을 긁는 일 중의 하나는 은근히 그녀를 응원하는 듯한 교장의 눈초리.
젊은 교사의 리더 격인 심영진은 교장에게 늘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심 선생이 태민을 유난히 챙겼던 데다 또한 기성 회장인 이씨와 친하다는 역학관계로 인하여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류 중학교 입시에 낙방함으로써 기대를 저버린 데 대한 분노도 작용했을 것이로되, 이씨와 불편한 사이가 되었던 교장은 태민을 볼 때마다 '소가 닭 보듯' 수준을 넘어 '개 닭 보듯'(단순한 무관심이 아닌, 미움과 경계의 단계로) 눈망울만 끔벅거리곤 했었다.
재수생으로서 서러웠던 경험은 또 있었다. 해 질 녘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호랑이’가 다짜고짜 쥐어 패기 시작했던 것.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수제자를 두들겨 팼다. 이에 대해 못난 제자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완전히 몸을 내맡기면서도 도리어 통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입시실패에 따른 자책감과 그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땅바닥에 쓰러져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의 입에서 나온 언어들은 낙방생의 폐부를 찌르고도 남았다.
"이태민! 너는 나의 기대를 배신한 놈이야. 나쁜 놈.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그까짓 중학교도 못 들어가 빌빌 싸고..."
아! 어렴풋이 짐작은 해 왔으나 이제야 실체가 드러나는구나. 이상스럽게 아무 말이 없다 했더니, 결국 배신감과 서운함을 속으로 삭히고 있었구나.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기회를 잡은 거로구나. 술을 빙자하여 실컷 분풀이할 수 있는 그 기회를.
그래. 당신 마음이 그렇게 해서 후련해진다면,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맞아드려야지요. 맘껏 때리십시오. 그러한 폭력 역시 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 믿기에,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저도 편합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이 흙냄새가 참 좋네요. 나도 한 줌의 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땅속에 묻혀 푹 썩을 수 있다면, 맘이 편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에 새롭게 태어난다면, 그것도 참 좋겠습니다.
몸서리쳐지게 듣기 싫은 말, 재수생. 그 레테르(꼬리표)를 뒤통수에 단 채 겨우 삼류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전기 시험에 낙방한 뒤, 후기로. 절대로 재수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리고 2학년 때의 늦가을. 촌닭이 도시와 겨우 호흡을 맞추는가 했더니 웬걸. 고교 입시가 내년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입시 지옥. 세상살이가 버거웠다. 소심한 성격을 개조한답시고 태권도도 배우고, 싸움질도 하며 악다구니를 써 봤다. 하지만 입시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열심히 공부를 해도, 아무리 실력을 쌓아도 그걸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왜 나는 본 게임에 약한 걸까? 나는 연습용에 불과한 사람인가? 어차피 나는 안 되는 놈인가?'
무라리를 떠난 도시생활은 쉽사리 몸에 익지 않았었다. 피가 터지도록 애를 써도 여전히 낯설었다. 야무지고 야발진 도시아이들 앞에 서면, 자신의 존재가 점점 축소되었다. 작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세 번의 입시 실패로 머리가 좋지 않음은 만천하에 증명되었거니와, 생긴 건 또 왜 이럴까? 거무잡잡한 피부, 옆으로 짝 째어진 눈, 두툼한 입술, 한가운데가 도드라져 보이는 두상, 그리고 불거져 나온 엉덩이와 짧은 다리. 아!...'
어렸을 적에는 제법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었다. 아이들에 비해 하얀 얼굴, 곱슬곱슬한 머리칼, 오뚝한 콧날 등. 동네에서 부자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 가면 우등생으로, 기성 회장 아들로 대우도 받았다. 하지만 거대한 도시에서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층 양옥집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안에 자기 방을 갖고 있는 친구를 볼 때마다 부러운 한편, 주눅이 들었다. 아! 우리 집은 '새 발의 피'로구나.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젤 잘난 줄 알았는데, 그보다 잘난 아버지들도 많구나. 성적으로 나를 따라올 아이가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선두 그룹과 한참 떨어져 있으니. 그래. 고향을 떠나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 거야.
'멀리 떨어져있는 고향, 늘 배가 고픈 하숙집 밥,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먼 아이들, 몸을 나른하게 하는 여름날의 오후 햇살...이 모든 것들이 나를 못 견디게 한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차지하는, 그 존재의 가벼움이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부쩍 커진 몸으로 태민은 싸움질하기에 바빴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아무하고나 쌈박질을 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 물론 결과는 얻어터지기 일쑤. 그래서 순전히 ‘싸움 기술’을 배우기 위해 태권도 도장에 등록을 했었다. 하지만 지루하게 반복되는 '기마 중단지르기' 동작과 거의 지린내 수준인 땜 냄새에 질려 2주일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 아무리 발악을 해도 소용이 없구나. 쓸데없는 짓이로구나. 모든 것이 덧없구나.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없어지자.
'내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달라지는 게 뭐 있기나 할까? 부모님이야 당분간 슬퍼하시겠지. 그러나 그것도 시간과 함께 잊어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거대한 우주는 그 운행을 계속할 거고. 그래. 모든 인간은 우연이고, 기껏해야 잉여물에 불과하지. 우리 모두는 뒤에 오는 낯선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이 지구를 더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육체를 썩혀. 모두가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 사랑과 낭만을 노래해도, 심오한 철학을 논하고 거룩한 종교를 들먹여도, 원대한 이상을 품고 우주 정복을 꿈꾸어도, 우리는 결국 한 그루 나무의 한 끼 식량에 불과한 것을!'
죽음을 꿈꾸는 심경과 달리, 집안 경제는 성장 가도에 들어서 있었다. 이씨는 가게와 나락 장사를 통하여 축적된 자금으로 솔밭을 사들였고, 그곳의 소나무들과 잡목들을 제거하여 땅콩 밭을 일구었다. 땅콩은 무른 땅에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적합한 작물이어서, 무라리 모래땅과 궁합이 잘 맞았다. 들어간 비용에 비해 높은 가치를 내는, 이른바 투자비용 대비 고소득 작물이었다. 헐값에 사들인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다시 그 땅을 높은 가격에 되파는 식으로 이씨는 살림을 불려나갔다. 김씨가 운영하는 가게로부터는 막강한 화력(현금)이 지원되었고.
경제적 자립의 기운이 완연해지자 이씨는 농민운동 외에 교육 및 사회 활동에도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기성 회장을 역임하였고, 백수면 번영 회장, 원불교 백수교당 신도 회장, 영광군 종친회 회장 등 김씨의 표현대로 '돈이 되지 않는' 자리라면 빠짐없이 감투를 썼다. 명망이 높아지자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40대 초반에 민주 공화당 영광, 장성, 함평 지구당 수석 부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군수도, 경찰서장도 내 앞에서는 쩔쩔 맨다!"며 호기를 부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집권 여당의 지구당 수석 부위원장인데 누가 함부로 무시할 수 있겠느냐며, 입에 침을 튀겼다.
지역유지인 만큼 생활하는 공간 역시 격에 맞아야 한다며, 집 짓는 일에 열을 냈다. 발복(發福)의 근원을 없애면 안 된다 하여 가게가 딸린 원채는 그대로 살려두되, 마당 남쪽을 둘러싼 뽕밭을 깎아내어 평평한 마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랑방 격인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하나, 외양간을 겸한 부엌과 창고 두 칸을 겸하여 일자로 지어놓고 보니, 제법 번듯한 새 건물이 마당 서쪽에 세워지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향을 찾는 태민의 입장에서는 독방을 차지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가세(家勢)가 팽창하면 할수록,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충장로를 걷다가 약국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약사가 빤히 쳐다본다.
"쩌어기요. 수면...제 있어요?"
"수면제? 무슨 일로?"
"예?"
"어째서 수면제를 찾냐고?"
"아니요. 그게 아니라, 공부하다가 잠이 잘 안 와서요."
"몇 알이나?"
"예?"
"차말로 깝깝허네 이. 몇 알이나 주끄나고?"
"스무 개요!"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꺼번에 고로코 많이는 안 팔아. 원래 다섯 알 이상 못 팔게 되야 있그든."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도리어 깊이 잠기고 말았다. 허둥지둥 도망쳐 나와 궁리하기 시작했다. 다섯 알 갖고는 약발이 안 먹힐 텐데. 싸이나(꿩을 잡는데 사용하는 독약)나 농약을 들이켜고, 리어카로 읍에까지 실려 갔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식도(食道)가 다 타버렸다거나 내장이 다 고장 나 버렸다고 했었다.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는 말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이 일에서 만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해. 그렇다면? 아! 맞다. 조금씩 여러 군데서 사 모으는 거야. 다섯 알씩, 네 곳만 돌아도. 히히. 회심의 미소. 낙방에 이골이 난 둔재가 ‘죽을 꾀’를 내는 데에는 가히 천재로구나. 잘 숙달된 사람처럼, 약국 네 군데를 돌았다.
도청 앞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9번 시내버스. 금남로와 광천동을 지나 극락강 둑길에 올라선 고물차는 곧 스러질 육신을 싣고 살맛 나게 달렸다. 둑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 버스 종점 근처에 원숭이 이마만 한 가게 하나가 하오의 햇빛을 받아 졸고 있었다. 둑 아래에는 서너 명의 강태공들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강 건너편에는 거름더미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극락강이라. 여기에 빠져 죽으면 극락에라도 간다는 말일까?
가게를 지키던 아낙네가 희멀건 시선으로 태민의 행색을 살피다가 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사이다 한 병을 부여잡고, 강둑길을 걸었다. 돌을 밟았다. 자칫 넘어질 뻔. 그 통에도 화가 났다. 축구공을 차는 폼으로 힘껏 날려 보냈다. 발이 아프다. 통증 가운데 꿈속에서처럼 김씨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서라면 살이라도 깎아 먹이실 분... 그런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가슴팍에서 울컥한 것이 올라 왔다. 이번에는 심영진 선생님.
'나에게 큰 포부를 심어주고자 안달이 나신 분, 백수남초등학교에 와서 이태민, 너 하나를 남겼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 내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사람을 잘못 봤다고 가슴을 칠까. 수제자라 믿었더니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이었다 욕을 하실까. 어떻든 못난 제자를 원망하시겠지. 몇 날 며칠 술을 마시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우실지도 몰라.'
그래도 소용없어. 어차피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 옆에도 사람이 있었구나. 외톨이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로구나. 세상 사람들 모두 등을 돌린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구나. 회한(悔恨)인지 감격인지 모를 눈물, 닭똥 같은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기야, 그까짓 일류 학교가 무슨 대수인가? 운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을. 그리고 난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앞으로 기회도 있잖아. 맞아. 얼마 남지 않은 고입(高入)에서는 기필코...'
알 수 없는 힘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병을 높이 쳐들었다. 이미 비어버린 그것을, 강을 향해 힘껏 던졌다.
"첨벙!..."
경쾌한 음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속이 빈 병과 함께 지지리도 못난 생각마저 극락강에 빠져버리기를. 깊숙이 가라앉기를. 맞아. 제발 그런 치졸한 생각일랑 하지 말자. 이제 기백 있게 좀 살아 보자. 별 것도 아닌 일에 사내자식이 눈물이나 질질 짜고, 아직 살아 보기도 전에 죽을 궁리부터 하다니. 내 삶이 박숙희의 허연 콧물을 닮아서는 안 된다. 텁텁하고 끈적거리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밝고 보송보송하게, 그렇게 내 인생은 바뀌어야 한다. 내성적인 성격도 바뀌어야 하고, 겁이 많아 좁아진 가슴도 넓게 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네 명이서 달리는 백 미터 경주에서 호랑이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며 태민을 닦달했었다.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내 보니, 가능했다. 노력하다 보니, 옆에서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함께 달리는 아이들이 일부러 속도를 늦추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달리는 일이 없을 테니. 상호 윈윈(win win)하는 상생(相生)의 원리, 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비로소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축구도 해 보고, 배구도 해 보았다. 마침내 제법 잘한다는 평가를 넘어, 주장 자리까지 넘보게 되었으니. 맞아. 그러고 보면 세상도 별 것 아니로구나. 용기 있는 자를 향해 세상은 두 팔을 벌리고 있구나. 도전하는 자에게 가슴을 여는구나. 보아라! 나를 백안시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히 나를 맞아들이는 모습을.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