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민! 제광고에, 원서 한 번 내 봐."
".........."
호남 제일의 명문고. 워낙에 시험 운이 없어 한 등급을 낮추어 지원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담임으로부터 ‘공인’을 받고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합격 후에 펼쳐질 축하 퍼레이드.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지난날의 실패는 보다 옹골진 성공으로, 과거의 좌절은 더욱 찬란한 영광으로 다가올 것이다. 삼류 중학교 졸업은 차라리 인간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시험장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어떠한 불길한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경쟁률은 낮았고, 수험번호 역시 4번이 아니었다. 번호의 숫자들을 모두 합쳐 보았을 때, 한 끗 따라지나 ‘망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김씨가 부적을 달아주는 일도 없었고, 이씨가 바짝 붙어 심리적 압박감을 주지도 않았으며, 억지로 엿을 먹이지도 않았다. 잠도 비교적 잘 잔 것 같았다. 복도를 걸어갈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책상과 의자가 모두 낡긴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몸에 걸친 옷처럼, 오히려 그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교실 안에서 떠들거나 까불어 대는 아이도 없었고, 스스로 따돌림을 받는 기분도 아니었다. 낯익은 얼굴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 덕분에 그다지 긴장하지도 않았다. 열에 들뜬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지도 않았다. 시험 문제 역시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도리어 너무 쉽게 출제된 것 같아 어리둥절할 지경.
'일류 고등학교 시험 문제가 뭐 이래? 이러다가 혹시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거 아니야?'
장학생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합격만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믿어졌다. 2학년이 방황의 세월이었다면, 3학년은 학업에 정진했던 시기였다. 초저녁에 일찍 자고 자정 무렵 깨어나 새벽까지 공부하는 방식으로, 그동안의 공백을 메워 나갔다. 덕분에 일천 명이 넘는 동급생 가운데 10등 안에 들 수 있었고, 따라서 아무리 일류 고등학교일망정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 여겨졌다. 고사장을 빠져 나올 때, 육체는 가볍고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러나 발표일이 다가오는 동안, 이상하게 초조감이 밀려 왔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난 분명 합격했을 거야. 드디어 발표일 아침의 밥상머리. 고모부가 말했다.
"내가 댕개 오마. 뭇헐라 추운 디, 식구대로 고상을 해야?"
".........."
"그래라. 한 사람이 보나 두 사람이 보나 마찬가질 턴 디, 차비 들고 둘이나 텀벙대고 댕길 필요가 웂제에."
"그것은 느그 고무 말이 옳다. 막상 말로 그만치 열심히 했넌 디, 안 되았을라디야?"
사실 중학교 입시발표 때, 직접 눈으로 보지 못 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어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하숙집을 전전하다가 고모네 집으로 들어온 지 1년. 조카 하나를 명문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분들. 합격을 바라는 마음은 수험생 본인이나 진배없을 터. 더욱이 이번에는 보나마나 합격했을 텐데, 굳이 따라나설 필요까진 없다 여겨졌다. 또한 만에 하나 불합격했을 경우, 그 뒷감당을 할 자신도 없었다.
'째깍 째깍'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콩콩거렸다. 숨죽이며 기다리던 전화는 오지 않았고, 어느새 오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해 질 무렵. 바람처럼 고모부가 나타났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까짓 것! 후기에도 조은 디 많고, 정 서운허먼 한 일 년 더 공부해 갖고, 들어가는 수도 있은 게. 너머 꺽정헐 것은 웂넌 디..."
머릿속이 텅 비어오는데,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이 온다며 둘러댄 다음, 이불을 뒤집어썼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사태를 도저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학교에서 채점을 잘못했든지, 고모부가 내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든지 둘 중의 하나야. 혹시 장학생 명단에 들어가는 바람에 보통 합격자들 명단에는 빠졌을지도 몰라. 늙은 고모부 대신, 내가 직접 갔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확인하러 가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불 속에서 한참 동안 몸부림치는데,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인정하기 싫음에도 인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안으로부터 들려왔다.
'그래. 인정하자. 나의 패배를 받아들이자. 그런데 왜?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세상은 늘 나에게 어색한 걸까?'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세상이나 자신이나 무척 힘겨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참 이상허다 이. 너보당 헐썩 못헌 아그덜도 다 들어갔넌 디, 어째서 너만 떨어졌냐?"
".........."
"우리 학교서 제광고에 오십 명인가 맻 명인가 지원했넌 디, 거진 다 들어 갔다여어. 근디 너만..."
"알았어. 그만해!"
"..........?"
경철이 입을 다문다. 중학교 동창들을 통틀어 가장 친했던 녀석. 2학년 때, 수학 여행비를 타다가 몽땅 써 버린 다음, 여행이 시작되는 바로 그 전날 무라리로 함께 내려갔었다. 신나게 놀던 중, 담임선생님의 ‘급상광 요망’이라는 전보를 받았고, 셋은 올라오는 즉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미리 엉덩이 부분에 걸레를 받쳐 입고 나온 용문이는 그것이 툭 떨어지는 바람에 '정량' 외에 보너스까지 덤으로 받았고. 사건은 수학여행 날짜가 갑자기 미루어진 데서 비롯되었다. 담임이 '니들 세 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데리고 간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여행비를 한 번씩 더 타 내야 했었다.
뱃속에 70명씩 집어넣은 채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30인승 완행버스, 소금국이나 다름없는 해운대의 콩나물국, 코딱지만 한 방에 20명씩 몰아넣고 '수학여행 와서 잠은 무슨 잠이냐?'며 도리어 잠을 깨우고 다니는 선생님들. 교장과 교사들이 '뒷돈'을 받는다는 소문이 들려 왔지만, 그런 일은 관심 밖이었다.
어쨌든 둘은 아니, 적어도 태민 쪽에서는 함께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면서 남녀 사이의 로맨스 못지않은 끈적끈적한 정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녀석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혹시 저 놈마저 내심으로 나의 패배를 즐기고 있는 것 아닐까. 이래저래 속이 상했다.
담임 역시 태민의 불합격을 최대의 이변(異變)으로 규정했다. 그만 못한 아이들의 경우, 애초부터 랭킹 2위의 고등학교에 지망하여 다수 합격했단다. 물론 그 소식 역시 낙방생에게는 비보(悲報)나 마찬가지였지만.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은 낙방 그 자체가 아니다. 왜 하필 나만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하는가? 왜 나만? 운명의 여신이 왜 나만 겨냥하여 화살을 쏘아대는가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나를 못 견디게 만든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면 애초부터 쳐다보지나 말 걸, 랭킹 2위를 맘 편하게 진학할 수 있었더라면. 항상 어정쩡한 실력이 문제였다. 여름날 오후, 뜨거운 햇빛 속에 무라리 모래땅을 걸어가는 기분. 봉덕산1) 칡넝쿨에 칭칭 얽혀있는 느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에서 언제 나는 벗어날 것이며, 질기고도 질긴 이 운명의 밧줄로부터 언제쯤 나는 풀려날 것인가?
생뚱맞게 B고등학교에 합격한 아이들이 부러웠다. 내가 교만했을까? 아니다. 그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 실력, 내 자존심으로 처음부터 2위를 선택할 수는 없었던 거야. 그렇다면? 불운이나 나의 소심함을 탓할 수밖에.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예선전에서 비실비실 하다가 본선 무대에서 펄펄 나는 아이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평소에는 제법 성적을 내다가 입시 때마다 우박 맞은 배추 포기처럼, 그렇게 오그라드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승자에게는 성공의 무용담이 있고, 패자에게는 실패에 대한 변호가 있게 마련인데, 나는 언제까지나 변명만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과연 나는 언제쯤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나의 몸속에 과연 심 선생님의 꿈, 그의 염원이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을까? 이 치욕 속에서 과연 나는 영광의 월계관을 향해 다시 뛰어야 하는가? 이 절망 가운데에서 나는 또다시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고향'을 대하기가 겁났다. 실망한 얼굴, 분노한 표정, 비웃는 미소.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140여 명의 졸업생 가운데 광주에 '유학' 온 경우는 서너 명에 불과했고, 서촌에서는 태민이 유일무이했다. 비록 삼류였음에도 교복과 교모로 무장하여 고향에 내려가면 모두가 부러워하곤 했었다. 더욱이 전교에서 1, 2등을 다툴 때도 있었으니, 그때쯤 이씨의 자랑이 오죽했을까.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이런 몰골로 ‘팬’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 더 이상 돌아다닐 무라리 땅도, 나다니고 싶은 서촌 동네 골목도 없어 마냥 죽치고 누워 있었다.
그러나 계속 걸려오는 전화, 빗발치는 이씨의 독촉을 견뎌내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사흘도 못 되어 무라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오갔던 이 길을, 패배자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포부도 컸다. 꿈도 야무졌다. 하지만.
'나는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이몽룡이 아니다.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도 아니다. 큰 바위 얼굴2)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패배자일 뿐이다!'
어디에선가 심영진 선생님의 눈초리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가히 금메달감인 김씨마저 이번 사태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가 보았다.
"이참에는 점도 밸라 안 보고 그랬다마는... 니 올해 사주가 그리 사납든 않다고 했그든?”
"여러 소리 헐 것 웂이, 니가 나를 타갰씨야. 내가 실은 미런허그든. 그러고 우리 집안 식구들이 모다 다 미런허다. 필체 존 사람도 웂고..."
".........."
자학성(自虐性) 발언을 쏟아내던 이씨는 자신의 발언이 좀 거칠다 느꼈든지, 바로 말머리를 돌린다.
"근디 사람이 너머 영리허먼 못쓰는 법이다. 밤나 다른 사람 둘레 먹을 궁리만 허고 그러먼 쓰겄냐? 몸 건강허고, 성실허게, 우직허게 살먼 다 살아지는 것이여어."
하지만 아무리 위장을 해도 본심이 감추어지진 않았다. 당신 본인과 집안 내력까지 들먹여야 하는 상황 자체가 벌써 책망이 아니던가? 위로가 되었건 책망이 되었건, 두 사람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기분은 아니었다.
'죄송해요. 미안해요. 모든 것이 제 잘못이어요.'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이 말이 되뇌어지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가진 않았다. 본래 속내를 표현하는 일에 서툰 태민이 잘못했다고 빌거나 용서를 구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태민은 죽음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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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덕산(鳳德山):전라남도 영광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염산면의 평야부 중앙에 북서, 남동으로 길게 뻗은 산지. 고도는 296m. 염산면의 여러 물줄기가 발원하는 수원지. 태민은 이곳으로 늘 봄 소풍을 갔었다.
2) 큰 바위 얼굴: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1804년∼1864년)의 작품. 위대한 인간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의 세속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얻어진 말과 사상과 생활의 일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
by 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