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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10. 2016

 "피로사회 속 현대인, '흥'의 혁명  필요"

국민훈장 박재희 작가 인터뷰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은 지난 2년간 마음 가는 대로 바람처럼 살았다. 평생 동양학을 공부하며 중국과 한국만을 오가다 난생 처음 2년간 휴식기를 갖고 뉴욕과 런던에 머물렀다. 동경의 대상이자 미지의 세계였던 그곳에서 그가 확인한 것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와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고전의 해석'에서 '영혼'의 문제로 옮겨갔다. '동양 고전을 통해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내 안의 우주를 일깨우자'는 <고전의 대문 – 사서 편>(김영사/ 2016년)의 주제는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규명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됐어요. 사서, 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주저자인 공자와 맹자, 증자, 자사자가 공통으로 꿈꿨던 가장 위대한 인간은 누구인지에 주목했어요. 고전에서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언급되는 '군자'나 '대장부' 등을 통해 이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누구인가 벤치마킹해보고자 했죠. 

인간에 대한 동양적인 가치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위대하다'는 명제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는 어떤가요? 흙수저와 금수저, 1%와 나머지 99%로 갈라진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져 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99%가 비참한 상실감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우리 내면의 우주를 일깨워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무한한 자원인 '흥'이 새로운 세계의 희망" 
  

박재희 원장은 뉴욕에서 머물 때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로저의 집에서 월세를 살았다고 한다. 로저의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자발적으로 24시간 근무를 자처하며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실상은 대학 때 빌린 학자금과 엄청난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얻은 정보로 투자해 한몫 잡아 업계를 뜨겠다는 그의 꿈도 요원해 보였다. 

런던 사람들의 생활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침부터 바쁘게 출근하는 공무원들로 가득한 피카디리서커스 남쪽 버킹검궁 주변. 쌀쌀한 날씨와 오락가락하는 비바람 속에서 옷깃을 세운 채로 어딘가 종종걸음치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자발적 피로'가 언뜻언뜻 보였다. 

"세계의 중심지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죠. 현대사회는 피로사회라고 하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죽도록 일하면서 자신을 학대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더욱 풍요로워지고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데 불안과 소외감이 현대인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흥이 사라진 사회가 됐어요. 동양 고전은 내 안의 위대한 우주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흥(興)의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흥은 하늘이 부여한 덕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성, 즉 인간의 본성을 의미합니다. 이익과 효율만을 추구하다 한계에 부딪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으로 제가 '흥본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자본은 유한하지만, 흥은 무한하기 때문에 누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모자라지 않아요. 쓸데없이 경쟁하며 죽을 만큼 피로하게 살지 않아도 돼요. 요즘 '흥부자'라는 말도 많이 쓰던데, 이제 세상은 스펙이나 라이센스가 아닌 흥을 통해 운명이 결정될 겁니다. 무한 자원인 흥이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하는 거죠."

"공자와 맹자의 직업은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박재희 원장은 <고전의 대문 – 사서 편>에서 사서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과 동서고금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풍부한 논거와 사례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그는 <논어>를 불안과 절박감 속에서 핀 꽃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자를 성인군자를 넘어 신처럼 여기지만, 실상은 지금의 흙수저에 비유할 만큼 빈천하게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세 살 때 죽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으로 무당이라는 설도 있다.

'동네에서 공자 아저씨의 일상' 정도로 해석되는 <논어>의 '향당 편'을 보면 공자는 아주 까탈스러운 면모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또 어떤 때는 나라가 위험에 빠지면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가 어떤 때는 나가지 말라고 하는 등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도 보인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산동성 조그마한 노나라 출신의 불우한 공자가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 대한 해답들을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이야기해준 것이 바로 <논어>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유명한 바이올린을 만드는 전나무는 평소에는 꽃도 안 피우고 열매도 안 맺다가 환경이 나빠지면 그때서야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식물학자들은 이것을 ‘앙스트 블뤼테’, 즉 ‘불안(angst) 속에 피는 꽃(blute)’이라고 하죠. 아픔과 역경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며, 그 역경을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더욱 위대해집니다. <논어>는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어>의 몇 장 몇 번째 구절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한편 박재희 원장은 사서를 철학 책이 아니라 경영학 책이라고 정의한다. 그 어떤 학문보다 철저히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공자와 맹자가 살던 시대는 약육강식의 정복 전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지상 목표였기 때문에 실용주의가 아니면 발을 못 붙였다는 것. 당장 살아남기도 바쁜 시대에 '왜 사는가',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공자와 맹자는 지금으로 따지면 무디스사 같은 세계적인 컨설턴트 회사의 회장들이었어요. 요즘 기업의 오너들이 유명한 컨설턴트를 초빙해서 자문을 구하듯, 정복 전쟁 속에서 늘 생존을 위협받던 제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공자와 맹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겁니다. 이렇듯 철저히 생존이 목표였던 시대에 나온 책들이라 사서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해요. 실제로 덩샤오핑은 70년대 말 개혁개방 정책에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를 재해석한 '백화제방'을 지표로 내걸어 큰 성공을 거두었죠."   

새로운 해석으로 고전 열풍 일으킨 '국민훈장'


박재희 원장은 요즘 '국민훈장'이라고 불린다. 2010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3분 고전>의 모태가 된 KBS 라디오 '시사고전'을 7년간 진행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어려서부터 시골 서당의 훈장이었던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동양철학자가 된 그의 평소 꿈도 훈장이었다니, 꿈을 이룬 셈이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교수, 유명 강연자로 여러 직책을 갖고 있지만 명함에는 오로지 '훈장 박재희'이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는 것만 봐도 그가 이 애칭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박재희 원장은 박물관 속에 박제화된 유물 정도로 치부됐던 동양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요즘 고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기본과 도리가 더욱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베스트셀러는 시간이 지나면 보편성을 잃어버리지만, 고전은 기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속의 솔루션이 있다는 것.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성공 자체보다 성공을 지속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데, 고전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고전이 좋다는 건 알지만, 읽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또 읽는다 해도 감동은 그때뿐, 바쁜 생활 속에서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듯 금세 사라지기 일쑤다. 이에 대한 박재희 원장의 고전 읽기 솔루션은 다음과 같다. 

"인문 고전이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가 그거예요. 콘텐츠를 접했을 때는 가슴이 요동치는데, 책장을 덮고 나면 멍해지죠. 지식과 삶이 괴리돼서 그런 거예요. 이 또한 입시제도의 폐해라고 할 수 있어요. 시험을 위해 지식만 집어넣으면 됐지 이걸 삶에 반영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한마디로 고민 없이 지식만 채우기 위해 책을 읽는 버릇이 생긴 거예요. 하지만 지식은 끊임없이 삶에 반영돼야 하거든요. '학습'에서 학은 지식의 습득이고, 습은 지식의 실천을 의미해요. 실천이 없는 배움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지식과 삶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지식을 내 삶에 어떻게 반영할지 계속 화두로 가져가야 해요. 책 속에 있는 모든 좋은 구절을 기억하고 실천하려고 하면 100% 실패해요.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문장 하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가 이 정도는 실천할 수 있겠다 하는 것 한두 개만 찾아서 내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해요. 부단한 학습과 연습을 통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는 걸 느끼면 지식이 삶에 반영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박재희 원장은 <고전의 대문 – 사서 편>을 '고전의 대궐 짓기 프로젝트' 1탄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준비한 고전의 나무들로 '흥'의 문양이 가득한 동양 고전의 대궐을 지어 '흥'으로 '흥'하는 '인생 르네상스'를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대문은 두 짝이 있어야 완성되는 법. 곧이어 발간될 두 번째 대문은 노자와 장자 편이다. '노장' 편 또한 이번 책처럼 처세나 경구보다는 노장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이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그것이 갖는 패러다임에 주목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솔루션은 사서와는 확연히 달라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곧이어 나올 노장 편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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