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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12. 2016

"농담이 가진 전복의 힘" 김중혁표 스탠드업 코미디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를 발표한 김중혁 작가를 서울 연남동 책방 '사이에'에서 만났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후 1년 만이었다. 낮고 느린 음성, 큰 변화가 없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말이든 글이든 그의 이야기에는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작가인데, 말을 정말 맛있게 한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다.


신작 <나는 농담이다>는 김중혁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일단은 우주비행과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소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학의 신'으로부터 매일 밤 특이한 소재를 버무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라는 미션이라도 받는 것일까?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마션' 같은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말발'이 뛰어난 소설가 김중혁이 손가락으로 펼치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또 하나의 재미 요소다.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시니컬함은 더욱 짙어졌다. 유쾌함과 쓸쓸함, 우주와 지구, 죽음과 농담을 병렬 배치한 그의 작품 앞에서 독자들은 책장을 덮었을 때 "웃거나 울기엔 좀 애매한"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인터뷰 도중 작가는 ‘낙차’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나는 농담이다>는 인생에 대한 훌륭한 한편의 김중혁표 스탠드업 코미디다.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능숙하게 줄을 타는 김중혁을 만나 신작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나는 농담이다> 쓰는 과정... 손가락으로 스탠드업 코미디 하는 기분"


Q 시작부터 '죽음'이란 묵직한 주제가 던져진다. '죽음'을 이야기 하게 된 개인적 이유가 있었나? 


개인 경험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죽음’이 다루고 싶은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계속 변주를 해가며 이야기 하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 사춘기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 않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완전 사라지는 건가? 환생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죽음에 대해 가장 처음 실감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Q 전작처럼 이번에도 주인공 직업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송우영의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이다. 덕분에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상상하느라 약간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게 더 좋다. 만약 '개그콘서트'를 소재로 했다면 너무 쉽게 상상이 되었을 거다. 혼자 마이크 하나를 놓고 서서 코미디를 하는 것 자체가 압도적으로 쓸쓸해 보였다. 엄청나게 많은 농담을 하고 웃고 떠들지만 정말 쓸쓸한 상황을 언젠가 한번은 그리고 싶었다. 


Q 스탠드업 코미디를 어디서 접했나? 


처음엔 유튜브를 통해 자막도 없이 봤다. 지금은 어느새 많은 분이 작업을 해줘서 자막도 많이 생겼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전세계 영화, 드라마, 예능쇼 등을 볼 수 있다-기자 주)를 통해 많이 봤다. 루이스 C.K.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만든 '루이'라는 시트콤의 주인공 직업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쇼도 많이 봤다. 


Q 관객을 말로 홀리는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독자를 향해 끝없는 말의 향연을 펼치는 소설가의 모습이 겹쳐보이더라. 


스탭드업 코미디언은 글쓰는 사람과도 비슷하다. 루이스 C.K.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하철 타고 갈 때도 옆에서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가, 그걸 발전시켜서 10분 내의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만든다고 하더라. 이런 과정이 소설가와 비슷하다. 


Q 소설 속에 송우영이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이 실려 있다. 소설과는 다른 장르인데 쓰기에 어렵진 않았나. 


오히려 즐거웠다.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일단 표정과 동작과 함께 말도 하는데, 나는 그 무게 없이 언어로만 해야 했다. 그게 한계지만, 반대로 관객이 없기 때문에 웃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분위기만 내면 되니까 웃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오히려 쓸 때 무대에 선 느낌도 들고 기분이 좋고 재미있었다. 손가락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느낌이었달까. 


Q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하는 농담은 재밌기도 하지만 한켠에 쓸쓸한 느낌도 있다. 


여러 명이 서서 슬랩스틱을 한다던가 하면 그런 느낌이 없을텐데, 스탠드업 코미디는 혼자 나와서 자기 얘길 하는 거다. 사람을 웃기려고 스스로 비하도 하고, 자신을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되게 쓸쓸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 분야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거다. 


Q 아버지가 다른 형제 송우영과 이일영의 성격이 정반대다. 송우영은 "아무리 간절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반면, 이일영은 평생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었고, 또 그 꿈을 이룬 사람이다. 본인 성격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둘 다 내 안에서 나온 거라서 당연히 두 모습 다 있다. 굳이 어느 한쪽을 택하자면 송우영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일을 하거나 할 땐 이일영의 태도를 취하고픈 맘이 있다. 둘은 형제이기 때문에 다른 듯 하지만 닮은 점도 분명히 있다. 



"농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Q 세상에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농담도 있는 반면에 기분을 상하게 하는 농담도 있다. 좋은 농담의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농담 자체에 좋고 안 좋고는 없다. 다만 농담을 언제 할지 시기를 아는 건 중요하다. 정말 좋은 농담이라도 다들 웃고 싶지 않을 때 하는 건 타이밍을 모르는 거다. 농담은 결국 타이밍인 것 같다. 진지한 얘길 길게 한 다음에 "아냐. 농담이야."라고 하면서 그 앞에 있던 말을 일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지 않나. 조금 허무하고 시니컬한 측면도 있지만 농담이 가진 전복의 힘을 좋아한다.


Q 소위 '19금'이라는 성적인 코드가 들어간다. 송우영이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성적인 장면을 군데군데 묘사했다. 


기본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에 성적인 것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송우영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섹스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테고 그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몰라' 그런 시니컬한 인식 때문에 그런 농담을 더 많이 하지 않나 싶다.


Q 근 몇 년 새에 우주에 관한 영화가 많이 개봉했고, 히트도 쳤다. 그래선지 소설을 읽으며 '인터스텔라', '마션', '그래비티' 같은 영화도 떠올랐다.


4년 전부터 쓰던 거라 중간중간에 영화 '인터스텔라'가 개봉했을 때 절망하고 그랬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웜홀 개념이나,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았으니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그래비티'다. 그래비티에서 마지막으로 조지 클루니가 우주를 떠돌면서 농담을 하는 걸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다.


Q 이일영이 우주 미아가 되어 고독함을 느끼는 모습은 영화 '마션'을 강하게 연상시켰다.


'마션'은 소설 다 쓰고 난 후에 봤다. '마션'은 우주영화라기보다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느낌의 영화라 톤 자체가 다르다. 내가 결국 그리고 싶었던 세계는 '그래비티'와 가장 비슷한 것 같다.


Q 코미디언 송우영 캐릭터가 먼저 나왔나? 우주비행사 이일영 캐릭터가 먼저 나왔나? 


처음 만든 건 이일영과 그의 여자친구 강차연 캐릭터였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우주 얘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낙차가 큰 얘길 하고 싶었고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밑바닥에서 더러운 저질 농담을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 캐릭터가 나왔다. 원래 더 더럽게 하고 싶었는데, 한국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조절한 면은 있다.


Q 우주 관련 책을 많이 읽었나?


우주 과학에 대한 책, 우주선의 역사에 대한 책, 우주 실험에 대한 책 등 워낙 많이 읽어서 뒤죽박죽이다. 소설 쓸 때 참고를 위해 책을 본다기 보다는 그 세계에 빠져 있으려고 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배우가 역할을 맡았을 때 직접 체험해 보듯이 작가가 어떤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그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체험하는 방식 중 책을 보는 것이 가장 깊이 들어가는 방법이다.


Q 소설 속에서 '남자는 공감을 못하니까 자꾸 남을 웃기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공감이 갔다. 농담에도 성차가 있다고 믿나?


일단 기본적인 태도가 그랬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잘 못하는 두 남자를 세 명의 여자가 성장시키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농담이다>가 어떻게 보면 이일영과 송우영의 소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둘을 둘러 싼 세 명의 여자 어머니, 강차연, 세미가 더 중요한 캐릭터다. 



"김중혁 시즌2 종료… 차기작은 난민에 관한 얘기"


Q 예전에는 포털에 김중혁이라는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김연수 작가가 먼저 떴다. 요새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더 앞에 뜬다. '빨간책방' 책 전문 팟캐스트에서 시작해, 최근엔 다시 이동진씨와 합을 맞춰 iptv 회사에서 만드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 '영화당'도 진행하고 있다.


예전부터 어떤 기회가 오면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일을 하다보면 거기서 얻어지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일단 제의가 들어오면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닌 이상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영화는 워낙 예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하니까 재미있더라.


Q '영화당'의 애청자로서 책 팟캐스트와는 다른 즐거움을 받았다.


21번 채널(김중혁이 출연하는 '영화당'이 방송되는 채널)을 블록하고 싶다...(웃음)


Q 방송 출연뿐아니라 작년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후에도 엄청난 속도로 <바디무빙> <탐방 서점> 같은 책도 냈다. 


내년에는 책을 내지 않는 것이 목표다. <나는 농담이다>를 다 쓰고 난 후, 작품 길이가 짧은 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엔 길게 쓰겠다고 작정하고 다른 글을 줄이고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Q 차기작의 주제도 정해졌나? 


대충은 정해졌다. 난민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그쪽 관련된 자료를 보고 있다. 정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나는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는 국경에 대한 얘길 해보고 싶어서 난민 얘길 써보고 싶더라.


Q 우주보다는 공간적으로 그래도 좁아졌다. 


비슷한 주제일 텐데 좀 더 진지한 얘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농담이다> 보다는 진지해 질꺼다.


Q 성공한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대중에게는 재미있게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 매력적인 문화매개자로서 자리매김했다. 지난 시간을 자평한다면?


약간 재미삼아 이제 '김중혁 시즌 2'가 지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시즌 1'이 데뷔하고 나서 사물과 수집, 발명 같은 소재에 집중한 초창기라면, <가짜 팔로 하는 포옹> <1층 지하 1층> 하면서는 달라진 것 같다. <나는 농담이다>가 시즌 2를 마무리 짓는 느낌이다. 여기서 가볍게 끝내고 다음에 뛰어들 세계를 구상하고 있다. 예전엔 좀 더 떠있었다면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현실적인 걸 다루진 않겠지만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스튜디오)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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