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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17. 2016

 "백남기 죽음, 현대사 속 무수히 반복돼왔다"

[함세웅·주진우 인터뷰 1]

            



한국 민주화의 산증인 함세웅 신부, 권력층의 비리를 촘촘하게 캐내어 각종 소송 폭격을 맞기도 한 주진우 시사인 기자. 이 두 남자가 뭉쳤다. 지상보다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신부와 속세의 어두운 곳을 들추는 기자의 만남.


이들을 뭉치게 한 건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과 '현대사'라는 연결고리였다. 메르스, 역사왜곡, 세월호, 민주주의의 침몰…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낀 두 남자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은 심정이 들었단다. 그래서 201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현대사 콘서트를 열었다. <악마 기자 정의 사제>는 열정적인 대화, 안타까운 한숨, 둘 사이에 작렬하는 유머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두 남자, 의외로 합이 잘 맞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주진우 기자가 현대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하면, 함세웅 신부는 본인이 직접 몸담았던 시대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굴절된 현대사의 장면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도 하지만, 이 두 남자의 유머가 자아내는 통쾌함으로 숨통이 트인다. 


두 사람을 서울 충정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책 머리말에 쓰인대로 이들 사이에 '설렘'이란 감정이 맴돌았다. 세대와 분야를 넘어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이들 간의 우정이며 사랑이었다. 주 기자가 묻고 함 신부가 답한 책 <악마 기자 정의 사제>에 대해, 이번엔 북DB가 묻고 두 남자가 답했다. 


Q <악마 기자 정의 사제>는 두 분이 전국 5개 지역에서 연 현대사 콘서트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책의 시발점이 된 콘서트는 어떻게 열게 된 건가요? 


함세웅 신부(이하 함) : 2013년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원이 구속됐을 때 마음이 아팠어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졌을 때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었고, 그때 저는 전국 50여 곳을 돌며 시민 상대로 강연을 했어요. 많이 올 땐 한 지역에서 몇백 분도 오시지만, 어떤 지역은 몇십 명밖에 안 오세요. 젊은 층도 있지만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었어요. 


주변 분들이 젊은이와의 만남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주진우 기자와 한 짝이 된다면 주 기자를 따르는 젊은 세대들이 올 거라고 조언해 준 분이 계셨어요. 주진우 기자는 '쪽말(쪽팔리게 살지 말자, 주진우 기자 팬클럽)' 모임 회원이 20여 만 명이 될 정도로 젊은 층에 인기가 있잖아요. 기존의 체험과 그 가치를 젊은 세대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계기가 되었지요. 


주진우 기자(이하 주) : 신부님, 있는 걸 그렇게 다 이야기하시면 안 되고요. 


 : 그럼 안 되는 거야?(일동 웃음) 


 : 일단 신부님이랑 저랑 무척 좋아하고 아끼는 사이이고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서 시대가 역행하는 것이 보여요. 통합진보당이나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자는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무시되고 역사마저 왜곡하는 상황이 박정희 시대와 너무 비슷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 뭘 비슷해, 똑같지. 


 : 역사의 고비마다 신부님이 서 계셨잖습니까. 저는 이제 역사를 공부하며 현실을 사는 청년이고요. 신부님의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시민과 청년들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투합했죠. 
 



"박정희 전두환 때도 있었던 일... 예상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아" 


Q 책에서 두 분의 입담을 통해 현대사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반면 현대사를 접하며 안타까운 대목도 많았어요. 가장 안타까웠던 현대사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 누구나 외국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유학시절에 우리나라에서 5.16 군사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가 가장 부끄러웠어요. 군사반란은 대부분 후진국이거나 야만국, 제3세계에서만 일어나거든요. 8년의 외국 생활 동안 쿠데타의 나라, 군사반란의 나라, 군인이 지배하는 나라의 국민이란 사실이 가슴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 백남기 어르신 문제만 해도 공권력이 집회에 참가한 사람을 때려죽인 것이지 않습니까. 처음 어르신이 사고당해서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 병원에서는 칠십 노인이지만 간과 신장과 심장 등 장기 상태가 좋아서 기증할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 이미 신부님은 부검으로 이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을 예상하고 계셨어요. 공권력에서 시신을 탈취해 갈 수 있고 부검을 해서 사인을 흩트리고 결국 나중엔 '전문 시위꾼들이 시체 장사를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요. 결국, 그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졌습니다. 


박정희 때 있었고, 전두환 때 있었던 일인데, 이번에도 예상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았잖아요. 집회하다가 중정(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조사받다가 돌아가신 분들…. YH사건도 그렇고, 노수석 열사가 집회 중에 전경들한테 맞아 죽었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진 적도 있었어요.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들의 악랄한 로드맵대로 움직이고 저항해도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게 가슴 아파요. 


          


Q 함 신부님께서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진 후 숨을 거두기까지의 경과를 어떻게 지켜보셨는지요? 


 : 1974년 명동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유신체제 반대하는 시국기도회를 열었는데 백남기 농민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천주교정의구현학생총연맹'이라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따라서 만든 학생 모임의 일원이었죠. 그로 인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는데 그때 백남기 농민도 같이 조사받았어요. 직접 주도하지는 않아서 감옥살이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늘 부담감이 있었어요. 그 때문에 갈메 수도원에서도 1년 계시다가 80년 광주항쟁 때도 함께 싸우셨고, 다시 주체성을 지키겠다는 사명으로 농촌에 가셔서 농민운동 하신 분이에요. 백남기 농민 세례명이 '임마누엘(immanuel)'인데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거든요. 백남기씨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흔적을 당신 삶으로 보여주신 거예요. 


 : 지금까지 유족과 가까이 있었는데 무척 고통스러웠어요. (국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도 슬퍼하고 아파할 수도 없게 만들잖아요.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족으로부터 "기자님, 큰 일 났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은데요."라고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게 큰 일인데, 의사가 검찰과 부검을 얘기하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란 거예요. 자식 잃은 걸 슬퍼하는 세월호 가족들도 종북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고소까지 당하고 있잖습니까. 그런 길을 똑같이 걷는 걸 보면 안타깝고 아프죠. 당사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옆에서 그런 일을 지켜보면 저도 함께 피폐해지고 상처받는 걸 느껴요. 


Q 지금 이 정권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저는 박정희 정권이라고 하고 싶어요. 박정희 정권과 똑같이 하고 싶어하는 세력들의 몸부림이라고 봐요. 


 : 박정희가 화낼 것 같은데? 나를 왜 거기에 비교하느냐고 하면서.(웃음)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함세웅·주진우 인터뷰 2] “2017년은 현대사 가장 중요한 갈림길”)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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