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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19. 2016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 갖는 건 대통령 덕분"

심쿵샘 심용환 작가 인터뷰

                  

"사람은 어디에 이름을 올릴지 결정해야 할 때가 옵니다.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영화 '밀정'을 보면서 이 대사에 '심쿵'(심장이 쿵)했다면 당신은 이미 "역사를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역사가 머나먼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오늘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요즘, 문화계에서 역사물이 흥행몰이 중이다. 출판계도 마찬가지. 역사 교양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흔치 않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 흐름에 빼꼼 고개 내미는 책이 있으니 바로 <단박에 한국사-근대편>(위즈덤하우스/ 2016년)이다. 

얼마 전 열린 북토크 행사에서 사회자가 "진중권에게 영화 '디 워'가 있다면 이분에겐 국정화가 있다"고 소개한 심용환이 저자다. 그는 지난해 보수단체들이 SNS로 퍼뜨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리를 '국정화 찌라시 대청소' 시리즈로 통쾌하게 반박해 일약 온라인 스타가 됐다. 그 덕에 사교육계에서 잘나가던 학원 강사는 상당수 학원에서 잘린 채 작가로 먹고살 궁리를 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중 한 코너인 '진짜 역사 가짜 역사'에서 '심쿵샘'으로 출연해 전 국민 역사 웨이트트레이닝에 힘쓰고 있기도 하다.

"역사는 암기가 아니라 해석"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심쿵샘, 심용환과 함께 100년 전 근대사에서 오늘의 역사를 읽고 해석했다. 

Q 요즘 '밀정', '암살' 등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역사 전공자로서 기분이 남다르겠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사학과라고 하면 "너 뭐 먹고 살래?" 하고 걱정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역사가 심각한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의 공이 크다. 한국사 국정화, 위안부 합의, 건국절 논란, 박정희 기념사업까지 두어 달에 한 번씩 큰 이슈들이 뻥뻥 터지니까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또 하나는 결국 정치 문제인데 보수정권이 집권한 지난 9년 동안 국민들 살림살이가 힘들어지지 않았나. 반면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않은 일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지고. 국제관계에서도 일본, 중국에 밀리는 외교를 하고 있으니 그때 그 시절과 비슷하다는 거다. 근대사여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와 똑같으니까 관심을 갖는 거다. 

Q 시대 흐름에 맞게 <단박에 한국사-근대편>을 냈다. 이 책이 다른 역사서와 다른 점은 무언가? 

처음에 생각한 책 제목은 '생각하는 역사'였다. 사람들은 역사를 암기로 대하고 공교육은 시험용으로만 취급한다. 이 책으로 그런 편견을 깨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당시 시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사 책이지만 중국, 일본, 필리핀까지 동아시아의 상황을 꽤 비중 있게 다루었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엄청 앞서나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입장이었고, 실제 우리는 필리핀이나 하와이 수준이었다. 그걸 인정하는 객관화 작업과 함께,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글을 최대한 쉽고 자세히 썼다. 역사 사진은 다 똑같고 밋밋해서 킬링 포인트로 만화도 집어넣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 스케치북 들고 카페에 가서 두 달 동안 내가 직접 콘티 작업을 해서 나온 만화다.

"우리 스스로 작은 유시민, 작은 전원책 되는 게 진짜 역사"

Q 책에서 우당 이회영을 소개하면서 "역사를 살아낸다"는 표현을 했다. 그 말이 역사를 배우는 까닭과 연결이 될 듯하다. 

'밀정'과 비슷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시대 그 공간을 느끼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 힘들어지는 걸로 성찰의 열매가 생긴다. 이회영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렇게 버티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기 때문에 그 무관학교 출신들이 임시정부도 만들 수 있던 거다. 그게 바로 역사를 살아가는 건데, 책이든 영화에서든 그걸 느끼면 자연스럽게 역사의식이 생겨날 거라고 본다. 

Q 책이 500쪽이 넘는데 독자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다면?

다 좋은데 어딜 얘기하지? 제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라고 전해달라.(웃음) 화제가 많이 되는 부분은 앞쪽일 텐데 내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독립운동사를 다룬 20강, 21강이다. 편집하면서 바뀌긴 했지만 내가 썼던 21강 제목이 '그때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였다. 독립운동이라는 게 희망이 없는 데서 희망을 믿고 싸운 거다. 결국은 다 죽고…. 우리는 승리의 순간을 기억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아픔이 있었다. 그 부분을 쓸 때 힘들었고, 그만큼 그 사실을 꼭 알리고 싶었다. 

또 하나는 관동대학살을 쓴 24강이다. 그걸 쓴 날이 세월호 2주기 행사 날이었다. 비가 억수로 왔는데 거기에 갈까 고민하다가 지금은 글을 쓰는 게 내가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일이라는 생각에 커피숍에 갔다. 그런데 마음이 괴로우니까 자꾸 페이스북을 보는데 사람들이 그 비 오는 데서 앉아 있고 울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나는 또 관동대학살을 쓰고 있고. 그때 한민족이 걸은 질곡의 과정이 너무 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꼭 증언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Q 관동대학살 같은 경우는 교과서에 한 줄 나올까 말까 한 얘기 아닌가. 오랫동안 학원 강사를 해오면서 역사교육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교과서가 너무 팩트 위주다. 누가 뭘 했다, 뭘 했다, 그러다가 죽었다, 그러고서는 '생각해 봅시다'가 나온다. 그런 교과서로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아이들이 사고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교사는 밑줄 긋고 체크하고 시험에 안 나오면 안 가르친다. 10대가 얼마나 감수성이 촉촉한가. 수업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아이들은 열려 있다. 그 열린 마음을 닫히게 만드는 게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교과서를 더 두껍게 만들어서 내용이 충분히 들어가면 좋겠다. 

Q 요즘 팟캐스트 '진짜 역사 가짜 역사'(진가역)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진짜 역사는 뭐고, 가짜 역사는 뭔가? 

가짜 역사는 뉴라이트, 음모론자, 박유하처럼 역사를 이상하게 해석하는 거다. 한마디로 자기 생각만 옳다는 독선주의가 가짜 역사다. 진가역은 우리만 옳다는 게 아니라 학계 연구 성과들을 시민의 교양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날 유시민 아저씨가 어디서 멋있는 말 하면 박수만 치고 있을 필요는 없잖은가. 언젠가부터 우리가 관객이 된 것 같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작은 유시민, 작은 전원책이 돼서 '썰'을 풀고 또 다른 이철희, 또 다른 진중권이 되는 게 진짜 역사가 아닐까? 

Q 그렇게 우리가 자기 삶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뭘 해야 할까? 

다들 말하는 것처럼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밖에 없다. 여전히 우리는 정치사회에 대한 종합적 사고보다는 대통령 욕하기 바쁘다. 욕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욕만 하니까 문제다. 지금 우리나라에 회원이 1만 명 넘는 시민단체가 얼마나 되나? 역사를 암기하지만 말고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냉정히 따져서 책을 읽는 문화, 책을 읽고 대화하는 문화, 책을 읽고 느낀 바를 글로 남기는 문화가 안 되면 힘들다. 그걸 해야 한다.

"풍성한 독서가가 10만 명만 돼도 뉴라이트가 어떻게 먹히겠나"

Q 심쿵샘만의 독서법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첫째, 무조건 책을 사라. 둘째, 읽다가 좋은 부분은 꼭 형광펜으로 줄을 쳐라. 셋째, 감동받은 부분이 있으면 책에 바로 메모를 하라. 마지막으로, 책을 다 읽으면 그와 관련된 글을 써라.'다. 책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보다 책을 읽고 내가 무슨 성찰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성찰이 쌓이면 훌륭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된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책 읽기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쉬운 책 1000권을 읽어도 어려운 책 못 읽는다. 졸리기도 하고 읽기 힘든 책을 도전하다보면 난이도 있는 책을 읽게 된다. 그런 풍성한 독서가가 10만 명만 돼도 우리 사회 품격이 바뀔 거다. 그런 오피니언 리더들이 사회를 차지하고 있는데 음모론자들이 생겨나겠나, 독선주의자들이 판을 치겠나, 건국절이니 뉴라이트들이 어떻게 먹히겠나. 

Q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심쿵샘이 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형 학원의 강사가 됐다는 얘기를 봤다. 정글자본주의의 축소판인 사교육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본 사회의 이면이 있을 텐데….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 그대로다. 나를 비롯해 모든 강사들이 돈을 벌려고 학원에 갔는데 가보니 강사도 서열이 있고 학원도 레벨이 있더라. 강북보다는 강남, 대치동, 재수종합반 식으로. 아래에 있으면 좀 더 위로 올라가고 싶고, 거길 가면 더 위로 가고 싶다. 나도 맨 꼭대기까지는 아니지만 꽤 위까지 올라가봤다. 그런데 동화처럼 아무 것도 없다. 돈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빼곤. 그냥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버리는 거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더 높은 데로 가라고 채찍질을 하는데, 그 결론이 뭐냐고 묻고 싶다. 

Q 그 강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그게 작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 활약한 바탕이다. 모든 교과서를 다 보고, 모든 문제집, 기출문제 다 풀어보고. 수업 재미있게 하는 노하우 연구하고. 큰 학원은 1년에 두 번씩 강의평가를 해서 그중 몇 퍼센트를 무조건 자른다. 작년에 안 걸렸다고 올해 안 되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학생들한테 좋은 평가를 받을 노하우를 깨쳐야 한다. 나는 꽤 잘 적응한 편이었지만 만족을 못 느끼고 권태감에 쌓여 있었다. 그런 찰나에 ‘국정화 찌라시’가 돌아다녔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여기 써먹으려고 그렇게 훈련을 시키셨나 싶어서 SNS에 열심히 썼다. 

Q 진가역에서 '보수진영은 집요하다'는 말씀 많이 하던데 현재 국정화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고, 예상대로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어떤 점이 가장 우려되나? 

국정교과서는 나온다. 바로 다음달에 PDF판이 나오고 내년 2월에 인쇄가 된다. 그 과정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정권 교체를 전제로 하더라도 법에 따라 그 교과서를 2019년에서 2022년까지는 무조건 써야 한다. 만약 정권 교체를 못하면 10년, 20년 더 오래 갈 거다. 올해 나온 초등학교 국정교과서를 보면 이승만은 독재정권이라고 돼 있지만 박정희는 장기집권이라고만 쓰여 있다. 그걸 보면서 '그들이 정말 원하는 건 박정희 찬양이구나' 싶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아마 건국절, 이승만 미화도 들어갈 거다. 왜냐, 논쟁이 그쪽으로 가는 게 서로 편하다. 건국절과 이승만으로 붙으면 우리가 유리하다. 독립운동과 김구 선생님을 얘기하면 되니까. 그런데 박정희를 건드리면 서로 갈린다. '어쨌든 살기 편해지지 않았느냐' 대 ‘어쨌든 독재를 하지 않았느냐’로. 선이 너무 명확해서 서로 안 건드리면 저들은 손해 보는 게 없다. 본의 아니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는 건데 그 까닭이 뭘까? 민주주의의 가치와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우리 자부심이 독립운동사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Q 그에 맞설 <단박에 한국사-현대편>은 언제 나오나? 

내년 여름쯤으로 생각 중이다. 내년이 윤동주 탄신 100주년, 박정희 탄신 100주년이다. 너무 대조적이지 않나? 한 분은 진실하게 고뇌하고 방황했고, 그 가운데 최소한 행동을 시도하다 돌아가셨다. 또 다른 한 분도 고뇌했겠지만 기회와 출세를 택했고, 방황했겠지만 불법을 선택해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 두 분이 내년에 탄신 100주년을 맞고 대선까지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근대적 질문은 결국 현대적 질문으로 올 수밖에 없다. <단박에 한국사-현대편>을 기대해달라.

사진 : 신동석

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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