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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26. 2016

박재원 "엄마가 돈을 덜 써야 아이가 행복해져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아이 한 명을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보살핌과 지혜를 필요로 할 만큼 공이 많이 든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마을에서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어른들의 지혜를 빌리고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됐다. 사회적인 합의 또는 표준적인 규범의 보호 속에서 어렵지 않게 엄마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아이의 공동 양육자였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을 어른들도, 공동체도 사라져버렸다. 한 마을이 필요했던 육아와 교육이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된 것이다. 혼자 남겨진 엄마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주변에서 정보를 얻고, 책을 읽으며, 교육과 상담에 쫓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교육에 관해서라면 거의 만능인데도 늘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웬걸? 엄마가 자식 교육에 열성을 가질수록 엄마와 아이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아이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대한민국 엄마 구하기>의 저자 박재원 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은 "엄마의 진심이 욕심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변질시킨 강력한 오염원은 엄마도, 아이도 아닌 "표준적인 규범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학부모 문화”라고 진단한다.  

"이웃은 사랑하되 이웃집 엄마는 조심하라"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로 대변되는 오늘 대한민국의 학부모 문화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때 대치동 입시학원에서 '박보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전설'이 시민단체 소속 '일용직 강의 노동자'가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걸까? "이 책은 엄마가 돈을 덜 쓰고 정보를 덜 찾아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흔치 않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라며, 자식 교육에 열성인 이 시대 엄마들을 도발하는 박재원 소장. 그는 도대체 대한민국 엄마들을 어떻게 구해내겠다는 건지 그 해법을 들어보았다. 

"돈 많고 할 일 없는 소수가 대세 장악... 너도나도 대치동 엄마 코스프레"

Q 대한민국 교육의 비극은 '학부모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하셨어요. 도대체 이 '학부모 문화'의 실체가 뭔가요? 

2007년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사교육 지향성, 엄마 주도성, 성적 지향성, 정보 의존성이라는 네 가지 '학부모 문화'를 찾아냈습니다. 이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요즘 엄마들은 사교육에 관한 온갖 정보를 수집해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다"가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부모들의 삶의 공식이자 문법입니다. 예외는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학부모 문화'의 실체가 돈 많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사교육업자들과 결탁해 만든 소수 상류층의 문화라는 거예요. 예전에는 '극성엄마'다 '치맛바람'이다 해서 비난받았던 이들이 주도권을 쥐면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끌려가는 구조가 된 거죠. 결국 다수 부모는 안 해도 되고, 여유도 없는데 소수가 대세를 장악하니까 거기에 끼어들려고 하고, 너도나도 대치동 엄마 코스프레에 급급한 상황이 된 겁니다. 

Q 소수의 문화였던 '학부모 문화'가 짧은 시간에 대세가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입시 제도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겁니다. 1994년 학력고사 대신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면서 사교육 폭발의 뇌관이 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여전히 학력고사 방식으로 공부하는데, 대학에서는 대학 진학 이후에 필요한 수행 능력을 요구하거든요. 학교 공부를 통해 입시를 준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특목고 선발 시험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출제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이것은 사교육으로 선행 학습을 하라는 말이거든요. 이렇게 대학 입시, 고등학교 입시가 사실상 사교육을 권장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함으로써 '학부모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죠.


Q 그렇다면 현재 '학부모 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을 갖고 있으신가요?

 
현재 문제가 되는 '학부모 문화'를 하나씩 바꿔나가는 게 대안이 되겠죠. 사교육 지향성이 아니라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기르면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충분히 많은 걸 섭취할 수 있어요. 저는 먹거리와 소화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학교는 먹거리고 소화 능력은 자기 주도 학습이거든요. 

두 번째 엄마 주도성은 아이와 소통하는 능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이걸 '엄마력'에서 '관계력'으로의 전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적 지향성은 성적보다는 아이의 진로 의식이나 탐색, 즉 재능을 살리는 방식으로 가야 된다고 보는 것이고요. 정보 의존성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아이가 필요한 정보는 아이가 얻어야죠. 아이가 부모와의 소통이 잘되고 자기 주도성과 진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으면 부모가 찾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정보를 찾으려고 해요. 부모는 그때 필요한 것만 도와주면 됩니다. 

Q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턴트 일인자셨는데요. 부모 교육 전문가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치동에서 학습과 진로, 입시 컨설팅을 하면서 대치동의 실상을 낱낱이 알게 됐어요. 대치동은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희망보다는 절망이,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 곳입니다. 대치동 엄마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저를 움직였어요. 누군가는 엄마 편에 서서 같이 아파하고 위로하며 희망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부모 교육으로 이끌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보통 엄마 구하기"가 더 정확할 거예요. 보통 엄마들이 충분히 잘할 수 있거든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만 갖고도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어요.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대치동에서 이른바 '돈맛'을 본 사람으로서 가난한 시민단체로 이직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많이 가난해졌습니다.(웃음) 사실 많은 걸 포기하고 왔어요. 오로지 부모 교육만 하기 위해서 시민 단체로 왔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부모 교육만 하기는 불가능하니까요. 시민단체로 온 지 이제 4년 됐는데, 짧은 시간 안에 생각의 진전이 많이 이뤄졌어요.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결과물이고요. 시민단체 소속이지만 지금 제 직업은 엄밀히 말하면 ‘일용직 강의 노동자’입니다.(웃음)

"개인적 솔루션만 제공하는 부모 상담, 만족 높아도 ‘약빨’ 그때뿐"

Q 독자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대한민국 엄마들을 구하는 '방법'일 텐데요. 

부모 교육을 해오면서 두 번의 고비를 맞았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 교육에서 상담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문제의 원인은 사회에 있는데 상담은 개인적인 솔루션밖에 제공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감동적이고 만족도 높은 상담을 해도 소위 '약빨'이 오래 가지 않는 거예요. 그때뿐이에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얼 쇼리스라는 미국 인문학자의 클레멘트 코스를 공부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얼 쇼리스는 알코올 중독자, 노숙자, 출소자, 실업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지 정책이나 재활 교육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도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인문학이라고 주장하고 실행했습니다. 

이후 제 부모 교육은 바뀌었습니다. 부모의 욕심을 지적하고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낳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부모가 왜 욕심을 부리게 되는지, 우리나라 엄마들의 진심을 변질시키는 오염 원인을 잘 파악해 학부모들이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요. ‘학부모 문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엄마들 스스로 깨닫고 해결의 실마리까지 얻도록 돕는 ‘엄마 인문학’에서 방법을 찾은 거죠. 

또 하나는 부모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와 잘 지내는 방법을 돕는 것인데, 이 또한 일정 정도는 개선이 되는데 지속 가능하지가 않았어요. '모든 아이가 훌륭하다'고 교육을 하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 생각이 오래 가지가 않아요. 그 이유에 대해 계속 파고들다가 오프라인 엄마 모임에서 해답을 찾았어요. 부모 교육을 안 받아도 훌륭한 부모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이들은 불안과 걱정이 없고, 다른 감정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많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런 엄마들의 행복을 체험하게 했더니 놀랍게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동안의 교육이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머리로만 이해했기 때문이었어요. 학부모로서 욕심을 버리고 부모의 진심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행복이라는 감정임을 알게 됐고, 3년간 엄마들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시도하면서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Q 에필로그를 통해 친절하게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뽑고 답을 하셨더라고요. "엄마들이 달라진다고 교육이 달라질까요? 교육제도 개혁이 먼저 선행돼야 엄마들도 달라지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저도 하고 싶습니다. 

사교육에 우호적인 엄마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교육 개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피하게 사교육 몰락을 동반해야 하는데, 순순히 물러설 사교육은 없습니다. 공교육을 믿고 가는 것이 더 안심되고 행복하며 효과적인 길이라는 사실을 엄마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교육 개혁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학부모 지원에 써야 합니다. 학부모들이 사교육 마케팅 공세로 불안하고 혼란스럽지 않아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엄마들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교육 정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정책의 성패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정말 중요합니다. 

Q 엄마들에게는 정보가 넘쳐납니다.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 책은 엄마가 돈을 덜 쓰고 정보를 덜 찾아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흔치 않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한 엄마는 이런 고백을 했어요. "부모 역할에서 진짜 아이러니는 바로 돈과 시간과 노력은 반비례하고, 사랑과 믿음은 정비례한다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 엄마의 소중한 이야기가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 책에서 입증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불리한 엄마가 맞지만, 돈 많고 똑똑한 엄마보다 아이를 잘 가르치고 키우는 훌륭한 엄마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 책은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는 이야기, 특히 희망과 함께 대안을 주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진 : 신동석

취재 : 이미회(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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