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Oct 25. 2016

 "한국-케냐 역사 닮아 있어… 문학으로 소통"

응구기 와 티옹오 작가 인터뷰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케냐 출신의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78). 그가 토지문화재단에서 선정한 2016 박경리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9월 21일) 되어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10월 20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응구기 와 티옹오의 '박경리 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아쉽게도 2016 노벨문학상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그는 박경리 문학상이 자신에게 노벨문학상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는 상이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의 역사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 역사와 유사점이 많다. 최근 국내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울지 마, 아이야> <한 톨의 밀알> <피의 꽃잎들> <십자가 위의 악마> 등의 작품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저항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아프리카인의 발자취이자 목소리 그 자체다. 

그는 한국과 자신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소개했고 한국과 케냐의 역사적 유사성, 보편적 식민 지배 방식 중 하나였던 '언어'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등을 강조했다. 기자간담회를 마친 응구기 와 티옹오를 만나 그의 작품과 노벨문학상 등에 대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박경리 문학상, 노벨문학상만큼 의미있다"

Q 한국 방문은 지난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문하신 이후 처음이십니다. 그동안 한국의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시는지요.

2005년에는 주로 서울지역과 남부 경기를 관광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 방문은 공항에서 서울로 온 것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소화하게 될 강원도 원주시에 대해 굉장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도시 지역이 아닌 지방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Q 2016년 박경리문학상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먼 이국 땅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소회가 어떠신가요?

박경리 문학상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상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인터넷에 박경리 작가에 대해 검색해보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토지>의 작품성과 의미를 알게 되었고 박경리 작가의 사위가 김지하 시인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제가 1977년 당시 케냐 정부의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감옥이 투옥되었을 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 시기에 저는 영어가 아닌 케냐의 토속어인 ‘키쿠유어’로 작품을 쓰기로 다짐했었는데요. 김지하 시인의 <오적>이라는 작품이 그 시기의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인연들로 이번 수상은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들은 크게 식민지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 그리고 탈식민주의를 꿈꾸는 독립 이후의 이야기로 구분됩니다. 자유를 위한 투쟁과 저항 정신이 작가님 작품 전반의 공통 화두라면 그 속에서의 미세한 변화들은 어떻게 이루어져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쓰기의 형식을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작가로서 내면적인 투쟁을 항상 이어왔어요. 그것이 단순히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등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력했죠. 매번 다른 시기에 작품을 쓰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나 숙제가 늘 있었습니다.

<울지 마, 아이야>와 같은 초기 작품을 보면 소설 내러티브의 전개가 단순하지만, 세 번째 소설인 <한 톨의 밀알> 같은 경우는 작품 속에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시간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네 번째 소설인 <피의 꽃잎들>에서는 다양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악마> 같은 경우는 전작들이 너무 다양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복잡해진 구성을 탈피하고자 서사의 구조 자체를 단순화시키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추구했습니다. 여전히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가 개선의 주안점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마지막에 나온 소설 <까마귀 마법사> 같은 경우는 작품 속에 판타지가 가미되어 과장된 서사와 인물을 개발했습니다.

Q 앞서 언급하신 <십자가 위의 악마>는 작가님께서 최초로 키쿠유어로 집필한 소설입니다. 활동 초기에는 영어로 작품을 집필하다가 이후 키쿠유어로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키쿠유어로 집필한 최초의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는 투옥 당시 종이를 반입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화장실 휴지 위에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의 작품을 읽고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언어에 대한 고민은 당시 하나의 책으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탈 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이라는 비평서입니다.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식민 지배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란 보편적인 패턴으로 발견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할 때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던 것,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 지배할 때 영어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게 한 것 등 우리는 특정 언어에 깃든 권력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도 그렇죠. 영어를 비롯한 포르투갈어, 불어 모두 식민 지배의 영향 그 자체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언어가 하나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다양한 언어 속에서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이렇게 식민 지배 관계처럼 권력관계를 투영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의 관계 위에 있어야 합니다. 언어는 언제나 다른 언어에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영향을 받기도 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Q <울지 마, 아이야> <피의 꽃잎들> <십자가 위의 악마> 등 많이 알려진 작가님의 작품들은 대부분 1982년 영국으로 망명하기 이전의 작품들입니다. 망명 이후에는 작품 창작 대신 비평 활동에 더 치중되어 있어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유가 있었나요?

영국으로 망명을 했을 당시에는 영문과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영어로는 작품을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던 시기입니다. 물론 키쿠유어로 활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망명 이후의 작품 생활에 대해 물으셨는데 단편과 장편 소설 모두 많이 집필했습니다. 다만 대부분이 키쿠유어로 작성된 것이라 영어권이나 그 밖의 대중들에게는 인지가 덜 됐을 겁니다. 당시 망명 생활을 하던 당시 영어권 교수로 있으면서도 키쿠유어로 작품 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밥 딜런 수상에 대해 긍정적... 문학의 경계를 넓힌 인물"

Q 최근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 <피의 꽃잎들> 등 작가님의 작품이 연달아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작용할 수 있기를 바라시나요?

케냐의 작가와 한국의 독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이 작품들을 하나의 매개로 삼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투옥 당시 써 내려간 <십자가 위의 악마>는 시인 김지하의 <오적>이라는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문학에 깃든 시대정신은 아프리카의 문학과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점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케냐와 한국이 서로 평행 관계에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역사적, 언어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일본이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식민 지배하면서 일본 언어를 강제적으로 쓰게 하고 이름도 바꾸었던 것처럼, 1895년부터 1963년까지 영국이 케냐를 지배했을 때도 동일한 방식으로 식민 지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언어는 지배자의 언어인 영어에 종속되어 있었어요. 언어를 시작으로 영국의 문화권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식민 지배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전쟁 1950년, 당시 제가 열두 살이었을 때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케냐에서 살아왔던 사람으로 낯선 부분이 아니라 서로 간의 유사점이 있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평행 관계를 이루고 있는 국가, 문화, 언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관련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상 불발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또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노벨상의 수상 작가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계의 많은 분들이 제 작품에 대한 진가를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서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곤 해요.

대중 가수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그가 문학의 경계를 확장시켰다고 생각해요. 밥 딜런은 오랫동안 훌륭한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는 분입니다. 이번 수상은 대중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나머지 활동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박경리 문학상의 후보들은 작가의 국적이나 성별, 연령의 폭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가의 신뢰도와 작품만으로 평가하여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박경리 문학상 수상이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시는지요.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고무적이고 격려의 역할을 해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상을 위해서 작품을 쓰진 않아요. 하지만 이미 쓰인 작품을 보고 상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그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생각해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상을 위해서 작품을 쓰는 것도 나쁜 건 아닙니다.(웃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지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프리카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에 있어 작가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작가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언어'에 관련된 것입니다. 특히 저와 동일한 세대의 아프리카 작가들은 모두 영어나 불어, 포르투갈어로 썼는데요. 저 또한 세 번째 작품 <피의 꽃잎들>을 쓸 때까지는 모두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십자가 위의 악마>)에는 모든 시, 드라마, 작품들을 다 키쿠유어로 집필했습니다. 모든 아프리카 언어에는 유럽 강대국들의 언어에 의해서 주변화되어 온 식민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아프리카 언어에 대해 인지하고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에 기여하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기사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보통학생 우은정을 '최고의 영어교사'로 만든 공부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