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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28. 2016

정과리,한국문학 여전히 변방… 베트남보다 인지도 낮다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정과리의 말, 말, 말


- "한국문학의 대종을 이루는 몇 개의 경향이 동시에 있어야 해요. 중요한 경향들이 상호경쟁하는 구도가 깨져버린 거예요. 그러면 한국문학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담당해야 할 출판사들이 그걸 깨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거예요. 그 마지막 결과가 작년의 표절 사태예요. 


-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에서 개인으로 선회가 이루어지고 개인 중심 문학이 득세하게 됐어요. 그걸 25년간 했거든요. 그 다음의 성과가 뭔지 보니 착잡했어요."


- "추리나 SF가 한국에서 빨리 정착해서 대중문학이 자기 세계를 만들고, 소위 본격문학과 경쟁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해요. 그런면에서 저는 정유정씨, 장강명씨, 배명훈씨가 그런 작업을 하는 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문학작품의 수준으로 봐서는 동의를 못하겠어요." 


[프리즘②] 문지 2세대 동인의 90년대 이후 한국문학 향한 쓴 소리


▷ 정과리는 누구? 문학과지성(문지) 2세대 문학평론가. 본명은 정명교. 프랑스 문학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국문학을 연구해왔다. 그의 비평활동은 '시대적 징후에 천착하여 언어와 현실과의 변증법적 관계를 심층적으로 해명하며, 작품의 실제를 섬세하게 분석하였다.'(권영빈)고 이야기 된다.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소설가 이인성과 함께 상업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문학실험을 지원하고 실천하는 문학공동체 '문학실험실'도 운영하고 있다. 


▷ 어떤 책을 냈나 : 저자가 20년 간 발표한 각종 평론과 문예지에 발표한 글을 모은 <뫼비우스 분면을 떠도는 한국문학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더글라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영향을 받아 지은 제목이라고 밝혔다. 안과 밖이 뒤섞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돈의 국면을 겪는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짚어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가 등단 이후 이어온 ‘존재의 변증법’이라는 주제로 출간된 다섯 번째 책이다. 


▷ 인터뷰 뒷이야기 : 한시간 반 동안 연세대학교 그의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그는 시종일관 빠른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특정 사안이나 작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치의 상하를 두거나 호오를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돌직구'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체로 90년 이후 진행된 한국문학의 국면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뫼비우스 분면을 떠도는 한국문학을 위한 안내서>는 지난 20년간 선생님의 관심사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지금 현재 선생님께서 관심 갖는 주제가 궁금합니다.


결국 독자들의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뛰어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국민 전체 수준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게 저의 숙제예요. 옛날에는 첨단만 간다고 독자들을 우습게 알았는데 지금은 방향을 완전히 바꿨어요. 


Q 책의 초반부에서 실린 글들에 '비판적 감정들이 먹구름처럼 깔려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한국문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관적인 시선을 드러내셨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이뤄낸 민주화인데, 민주화가 이뤄지자 마자 문학에서는 사회에 대한 성찰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욕구가 분출했어요. 전부 그쪽으로 갔어요. '큰 이야기가 아닌 작은 이야기가 중요하다' 좋은 얘기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사회적 성찰 부분이 완전히 몰락해 버렸어요. 


처음으로 몰락을 하나의 징후로 던진 사람들이 후일담 문학을 하던 사람들이에요. 거기에 헌신한 사람들이 눈 뜨고 봤더니 자기가 설 자리가 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차지를 해버린 거죠. 사회에서 개인으로 선회가 이루어지고 개인 중심 문학이 득세하게 됐어요. 그걸 25년간 했거든요. 그 다음의 성과가 뭔지 보니 착잡했어요. 소위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빠진 거죠. 이 때 문학을 하던 세대들이 한국문학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된 바로 그 시기에 데뷔한 사람들이었어요. 


Q 개인 중심의 문학의 득세와 우리문학의 세계화 시기가 겹쳐지네요. 


한국문학이 세계에 자기 얼굴을 알리게 된 게 1990년이 처음이거든요. 이문열 선생의 <금시조>가 프랑스 '르몽드'지에 소개되면서 그때부터 한국문학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이 번역되면서 고급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호평 받으며 한국문학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한국문학번역원이라고 하는 국가 기구와 대산문화재단이라는 사설 기구가 세계화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게 됐고요. 그리고 25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뭘 했나? 여전히 한국문학은 세계에서 변방에 위치해 있고, 우리 문학은 베트남문학, 말리문학보다 인지도가 없어요. 


Q 각종 지원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인지도는 부족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가장 큰 원인은 번역을 통한 세계 교류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번역이라는 중개를 거치면 문학작품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번역가가 받쳐주지 못한 경우에는 좋은 작품도 전혀 이해가 안 되잖아요. 최악의 번역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토지>거든요. 박경리 선생님은 당신 작품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은 줄 알고 갔는데, 출판사 사장도 아니고 편집장이 나와서 자기를 맞이한 걸 보고 절망을 하셨어요. 좋은 번역가들이 나와야 하는데 충분히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번역가들은 일단 돈이 중요하니 자꾸 쉬운 번역물만 선택하게 되고요. 


번역만이 문제는 아니고, 지난 25년간 나온 작품 가운데 소위 플롯이 제대로 짜여 있는 게 거의 없어요. 플롯에 관해 얘길 하자면 4.19 세대들, 즉 최인훈, 이청준 같은 양반들이 제대로 된 플롯을 만들었지 그 이후에는 쓰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한국문학 작품이 재미가 없는 거죠. 특히 서양 사람들은 장편밖에 안 읽거든요. 한국은 단편은 짜임새 있게 잘 쓰는데, 장편이 안 돼요. 플롯이 받쳐주지 못하는 거죠. 한국문학이 아직 외국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문학적 밀도를 얻지 못했다고밖엔 달리 판단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Q 작년에 한강씨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번역의 중요성이 공론장에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한강씨의 맨부커 수상은 어떻게 보셨나요? 


10년 동안 아무도 안 읽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거든요. 주변 몇몇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바람직하지가 않아요. 상을 받았다니까 책을 샀는데 읽어 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죠.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되었어도 한국문학의 전반적인 수용의 수준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문학이 계속 침체해 왔다고밖엔 달리 판단할 수가 없었던 거죠. 


Q 그 와중에도 희망적 징후로 볼 수 있는 일들은 없었나요? 


현재로서는 새로운 세대들에게서 자기 식의 뚜렷한 문학적인 비전을 볼 수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다만 구성적으로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많이 들어요. 일단은 개인중심의 문학에서 탈피하고자 하면서 주제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어요. 이를테면 최재훈씨가 일종의 추리적인 것을 들여온다든가, 윤이형씨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 SF를 집어 넣는다든가 하는 것들처럼요. 


다른 한편으로는 재래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 같은데 구조적으로 정교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 몇 있어요. 정용준씨라든지, 백가흠씨라든지. 그리고 김경욱씨의 최근 소설은 상당히 과감한 사회성을 지향하는데, 김경욱씨는 생각이 유연하고 문체가 그것을 받쳐주고 사회적 성찰로 끌고 가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는 합니다만 아직까지 전폭적인 기대나 확신을 갖고 있는 바는 없습니다. 


Q 책에서는 정유정씨나 장강명씨, 배명훈씨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던데요. 


대중문학이 지배적인 문학장에 진입하게 된 면에서는 긍정적이에요. 추리나 SF가 한국에서 빨리 정착해서 대중문학이 자기 세계를 만들고, 소위 본격문학과 경쟁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해요. 그런면에서 저는 정유정씨, 장강명씨, 배명훈씨가 그런 작업을 하는 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문학작품의 수준으로 봐서는 동의를 못하겠어요. 


아쉽게도 아직 한국문학 평론가 중에 SF나 판타지, 추리 장르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하더라도 본격 문학의 틀 안에서 적당히 얘길 할 뿐, 대중적 장르의 문학작품이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나아가고, 이것이 본격문학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선 거의 이해 못해요. 그런데 작가들은 나오고 있으니 언젠가는 거기에 걸맞은 평론가들이 나오겠지요. 



Q 작년 있었던 신경숙씨 표절 사태 이후, 문학지들의 대대적인 쇄신이 있었습니다. ‘문지’ 2세대 동인이셨던 입장에서 그간의 변화를 어떻게 지켜보셨나요? 


정말 새롭게 바뀐 것인지에 대해선 판단을 못하겠어요. 창비도 주간이 바뀌긴 했지만, 창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창비류의 작품을 25년 동안 못 냈다는 거거든요. 남들이 다 키워놓은 작품 가져다가 썼잖아요. 원래 신경숙씨가 창비 작가 아니었어요. 전체적인 구도에서 한국문학의 대종을 이루는 몇 개의 경향이 동시에 있어야 해요. 정치권에서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듯, 한국문학도 마찬가지거든요. 서로 비슷한 문학을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런데 그 경계가 25년 동안 와해가 됐거든요. 


1970~1980년대 한국문학의 힘이 그토록 좋았던 것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라고 하는 두 개의 일종의 세상 변화와 문학 혁신을 같이 끌고 갔던 그룹이 있었고 이 둘이 뚜렷이 변별되면서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문학을 지속하는 ‘현대문학’으로 대표되는 그룹이 있어서, 이 셋이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로 길항을 했거든요. 그런데 90년대 들어오면 출판사들은 상업적인 방향으로 선회했어요. 작가들은 돈 준다니까 다 가버렸고요. 중요한 경향들이 상호경쟁하는 구도가 깨져버린 거예요. 그걸 담당할 출판사들이 그걸 깨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거예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한다고 해서. 그 마지막 결과가 작년의 표절 사태예요. 


Q '상업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로운 문학실험을 지원하고 실천하는 문학공동체 '문학실험실'을 이인성 작가와 설립하셨습니다. '쓺'이란 문학지도 발간하고 계시고요. ‘문학실험실’이 문을 연 지 2주년이 되었는데요. 그간의 경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조금 더 있어봐야 알겠지만 아주 활발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이인성씨나 저나 유일한 장점이 버티기니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다 이거거든요. 남들 잘나가나 마나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다. 버티기가 우리의 최고 장점이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는 거죠. 


Q 현재 계획중인 일이 있으신가요? 


김인환 교수, 홍종선 교수와 함께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사에 대한 세 권 짜리 책을 낼 계획이에요. 한국문학 작품들이 외국에 소개되고 있긴 하지만 전부 단품 위주예요. 아직 외국엔 한국문학이란 컨셉이 없어요. 서점 진열하는 사람과 얘기하면 일본문학, 중국문학에 대해선 개념이 딱 들어와서 뭐든 해볼 수 있는데 한국문학은 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결국은 한국문학을 일관되게 묶어서 소개하는 책이 없다는 얘기죠. 기존 나와 있는 것들은 너무 관념적이란 한계도 있었고요. 실제 작품 얘기를 하면서 이 작품이 한국문학 네트워크의 어떤 위치에 있고, 이것이 다른 작품들과 어떤 식으로 얘기가 되고, 한국문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어야 해요. 문학평론가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준비 중입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스튜디오)

취재 : 주혜진(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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