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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Oct 31. 2016

"정의는 즐거울 수 밖에 없다" 목수정과 세상의 연대

                     



목수정의 새 에세이집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이 나왔다. 진보정당이 해산되고 노동자가 끌려가고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지는, 한국사회를 어떤 눈으로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안 그래도 SNS를 종종 드나들며 작가의 시선을 엿보던 차였다. 진실은 조각나고 정의는 폐기됐다는 날선 비판에 가슴이 휑해지다가도, 언제나 기쁨을 주는 타자가 있었다는 말에 책을 들여다보는 눈이 초롱해졌다.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작가를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느꼈다고 말할 때 유난히 눈동자가 반짝거렸고, 그 진지한 눈에 어쩔 도리 없이 빨려들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할 때도 웃음이 그치질 않았고, 포장 없는 소탈한 표정에 긴장이 풀렸다. 또 '기쁨을 주는 타자와 연대하자'며 손을 내밀 때, 정직하고 정겨워 보이는 그 손을 닮고 싶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나 역시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누구에게나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도, 그 누구도 무릎 꿇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Q 프랑스에서 1년 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매일 바쁘게 지내고 계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떠신가요?


프랑스에 있으면서 연대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들을 했어요. 총선도 있었고, 세월호 유족분들도 만났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분들과 손잡는 계기가 됐어요. 한국에 와서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서 기쁨이 샘솟아요. 악조건 속에서 살더라도 내가 발 딛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상황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둠의 시대지만, 살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희망을 느꼈어요. 


Q 한국에 오자마자 한상균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고 들었어요. 책에서도 한상균 위원장을 녹두장군이라고도 표현하시고 무한한 애정을 보이셨는데요.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한상균 위원장은 저와 아이 아빠에게 영웅이에요. 저런 표정을 가진 사람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해고 노동자의 피곤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늘의 비극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구치소에서 한상균을 만났을 때 모두가 유쾌했어요. 어떤 시공간이나 주어진 조건이 그 사람의 멘탈리티를 지배하지 않는… 거인인 거죠.



"한국인, 예기치 않은 무질서가 주는 해방감을 너무 두려워해"


Q 한상균 위원장을 보고 그런 표정을 오랜만에 봤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연대활동을 하면서 어떤 피로감이나 아쉬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분법 때문에 서로를 갉아먹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진보진영 안에서도 계파가 다르면 무시하고, 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어느 쪽인가 판별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너무 숨이 막혀서 그런 걸 뛰어넘고 싶더라고요. 한상균 위원장의 말은 어떤 집단의 어휘를 비껴나 있어요. 일상의 어휘로 마음을 사로잡아요.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었고, 그 사람이 한 모든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싶더라고요. 손잡고 싶은 기쁨을 주는 사람이에요. 


Q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 비교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만큼 한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처음 프랑스 왔을 때 그런 걸 느꼈어요. 애들도 어른이랑 얘기를 할 때 애기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해요. 애들이라고 재롱을 떨지 않아요. 자기 존재 자체로 키 큰 인간을 만나는 거예요. 권위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풍길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보게 됐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뭔가 부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그냥 순응하는 게 아니라 저항을 하거든요. 


그게 파업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져요. 파업을 마치 비가 오는 자연현상처럼 생각해요. 비가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않잖아요. 판사도 파업하고 경찰도 파업하는데요, 뭐. 세상이 한 달 정도 멈춰도 망하지 않아요. 예기치 않은 무질서가 주는 해방감을 경험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하죠. 


무엇보다도 저는 파업은 노동자들이 해주는 것이라도 생각해요. 파업은 욕 먹을 걸,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걸 각오하고 하는 거고요. 그렇게 파업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1mm씩 쟁취해 나가는 걸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끝없이 밀리는 거예요. 프랑스는 19세기 말부터 싸워서 얻어냈잖아요. 1936년에 노동자들이 어마어마한 파업을 했고, 그때 2주 유급휴가가 결정됐어요. 그게 교과서에 두 페이지에 걸쳐 나와요. 하나하나의 싸움이 삶의 질을 만들어준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파업을 해도 군소리 못하는 거죠. 


우리는 연결 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싸워서 얻은 게 아니잖아요. 사회적 가치들이 체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져버린 거죠. 어찌 보면 그 과정을 우리는 지금 밟아가는 중일 수 있어요. 우리만의 리듬에서 민주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겠죠. 


Q 최근 테러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 인기가 높아지고 난민이나 이민자 문제도 갈등이 심해지고 있잖아요. 일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헬게이트 열린 것처럼 테러가 계속 일어나는데,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올랑드는 IS에 포격을 했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요. 일상적으로 무장 군인이 시내를 활보하고, 처음에는 모든 집회를 제한했어요. 경찰국가같이 만들기 좋은 시스템으로 갔죠. 실제로 올랑드 인기가 치솟았거든요. 그런 효과를 누리면서 상황을 계속 그렇게 몰고 가요. 그걸 보면 이슬람은 프랑스의 '종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종북이란 말로 떠넘기잖아요. '종북몰이' 하듯이 여기선 '이슬람몰이' 하는 거예요.


주류언론은 권력의 목소리를 답습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목소리만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테러의 근본 원인을 사회 불평등이라고 느껴요. 테러를 했던 주최는 우리 이웃이었던 사람들이거든요. 프랑스 안에서 소외계층으로 내몰리고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에 손을 댄 거라는 이성적인 목소리도 있어요.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목수정 "프랑스 이슬람몰이, 한국의 종북몰이와 같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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