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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02. 2016

"선거 도둑맞지 않으려면 국정원 알아야"

국정원 저격수 김당 작가 인터뷰

                 

하 수상한 시절이다. 한 민간인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 앞에 극심한 자괴감과 분노에 빠지는 요즘, 국민은 묻는다. 그 많은 국가기관들은 그동안 뭘 했느냐고. 특히 국가안보를 책임진다는 국정원을 향한 질타를, 쏟아져 나오는 최순실 관련 기사 댓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재 국정원이 무력한 까닭을 알 수 있는 있는 책을 지금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실패한 공작의 역사, 그리고 혁신'이란 부제를 단 <시크릿파일 국정원>(메디치미디어)이다. 책을 쓴 김당 작가는 시사저널, 신동아, 오마이뉴스에서 30년 동안 기사를 쓴 기자로, 특히 20여 년을 국가정보기관활동을 추적 취재해온 정보통이다. 

안기부 북풍공작 추적보도, 안기부 조직표 최초 공개, 대북송금 특종 등 베일에 싸인 국정원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힘써온 김당 작가와 함께 국정원의 시크릿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봤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기 전 한 인터뷰이지만 현 시국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대목이 많다. 

그중 하나. 그가 저자 소개에 밝힌 "팩트(fact)의 위대한 힘을 믿는 기자"의 뜻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국정원은 역사의 고비마다 총을 썼다면 기자는 팩트로 중요한 역할을 했죠. 박종철 사건도 첫 시작은 서울대 한 학생이 대공분실에서 죽었다는 2단 기사에서 시작됐거든요. 중앙일보가 쓴 이 기사를 동아일보 기자가 왜 죽었는지 후속 취재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결국 87년 6월항쟁까지 완성된 거죠. 순간순간 팩트를 확인하는 게 기자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그와 나눈 1문 1답이다.        

Q 국정원을 다룬 책은 흔치 않은 데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 시민들이 정보기관에 대해 알아야 하는 까닭부터 짚어주세요. 

지난 대선 때 이른바 댓글공작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지 않았습니까? 실제 그 댓글공작으로 표가 어느 정도 날아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계량이 가능하면 아마 탄핵이 됐겠죠. 다시는 그런 불법공작으로 선거를 도둑맞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국민이 국정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정원을 다룬 책이 거의 없어서 '국정원 사용설명서' 콘셉트로 책을 썼어요. 

Q 프롤로그 제목이 ‘역사의 방아쇠를 자처한 자들에 대하여’입니다. 역사의 방아쇠를 자처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프롤로그에서 국정원의 역사적 순간들을 열거했어요. 그중 상징적인 사건이 10.26이죠.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박정희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요. 그 외에도 많죠. 김대중 납치사건도 그렇고, 87년 6월항쟁을 촉발한 박종철 사건도 고문치사에 이르게 한 건 경찰이지만 그걸 지휘한 건 안기부였으니까요. 이런 것들을 ‘역사의 방아쇠’라고 함축해서 표현했죠.  

Q 책을 읽으면 국정원이 어떤 조직인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규모가 큰 조직인지도 몰랐어요. 

인원이 5천 명이 넘고 예산도 1조 원이 넘어요. 우리는 북과 상대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가 큰 편이죠. 또 국내와 국외를 함께 다루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수사파트까지 같이 있기 때문에 인원이 더 많죠.

인원 5천 명 예산 1조 원 공룡조직... 수사권까지 가진 '역사의 방아쇠'

Q 정보기관에 수사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엄청 차이가 많죠. 순수한 정보기관일 경우 취득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이첩하면 수사기관에서 합법 절차에 따라 인신을 구속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업무를 일체 비밀로 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갖고 있으면 통제가 안 되죠. 의심 가면 바로 붙들어 와서 구속하고 밤샘 수사하고 그러니까요. 과거 80년대 몇 달씩 아무도 모르는 데 갇혀서 간첩이 만들어진 일이 허다했잖아요. 그런 불합리한 점 때문에 어느 정부나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분리하죠. 

Q 최초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는 1961년에 생겼는데 국회 정보위원회는 1994년에 생겼다는 내용을 보고 그럼 30년 동안 정보기관은 누가 견제했나 궁금했어요. 

처음엔 내무위원회에서 하다가 국방위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둘 다 본업은 따로 있고 정보기관 견제를 같이 했던 거예요. 그러다가 국정원만 다루는 상임위인 정보위원회가 생긴 건데 이것도 상설기구라고 말하긴 힘들어요. 한 달에 한 번밖에 회의를 안 하거든요.

게다가 관장할 수 있는 핵심 부분이 조직과 예산, 기능인데 이게 다 비밀이에요. 자료를 받아도 복사도 안 되고 열람만 가능해요. 또 정보위에서 보고받은 비밀은 공표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국민은 알 수가 없죠. 여야 간사 합의하에 할 수 있는데 여당에서 합의를 안 해주면 할 수가 없죠. 다른 상임위와 달리 회의에 보좌관들도 못 들어가서 도움도 못 받아요. 그러니 지금도 심층적이고 상설화된 견제 감독이 안 되고 있는 거죠.    
  
Q 제1장을 권영해와 원세훈 이야기로 시작하셨는데 두 사람이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초대 김종필부터 현재 이병호 원장까지 역대 원장이 33대까지 있어요. 그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사람은 박정희 때 6년 3개월을 한 김형욱이에요.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김형욱 회고록을 쓴 후 파리에서 비명횡사했잖아요. 과거사위에서, 안기부 연수생들을 시켜서 죽였다고 밝혔죠. 

그 다음 오래한 사람이 원세훈 전 원장이고 안기부장 중에서는 권영해입니다. 그런데 그 오래한 사람들의 말로가 결국 둘 다 교도소 갔잖아요. 유이하게 개인비리로 구속된 정보기관장들이죠. 또 두 사람은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어겼어요.

권영해는 97년 대선 때 북풍공작을 했죠. 또 구전홍보단을 운영해 '김대중 후보가 되면 안 되는 이유, 이회창 후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유포했어요. 귀향홍보단까지 꾸려서 안기부 직원들을 지역에 내려보냈어요. 그런데 그와 유사한 일이 원세훈 때 일어난 거죠. 사이버홍보단이라는 이름으로. 정보기관이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일하던 시절로 회귀한 거죠. 

Q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는 말씀이네요. 

책에도 썼지만 제가 아니라 '김대중 저격수'로 불렸던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의 말입니다. YS 때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국내담당 차장까지 했던 그가 2000년 총선이 끝나고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말했어요.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적발하기 위해 사설탐정팀까지 운영했는데 단 한 건도 적발하지 못했다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총선과 대선 각 한 번씩 4번의 큰 선거를 치렀지만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문제 된 적은 없어요. 그랬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간 거죠. 

Q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북한 주민 여러분,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탈북은 먼저 온 통일이며 통일의 시험장" 같은 발언을 했는데요. 국정원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입장에서 이런 발언들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나요? 

4.19 때를 연상시키죠. 당시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는데 지금은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가 되고 있잖아요. 1997년 북한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이 망명했을 때 북한 붕괴론이 많이 전파됐죠. 실제로 당시 국방연구원 같은 국책 기관들에서는 난민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보고서도 냈어요.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었잖아요. 일각에서는 북이 붕괴되면 통일국가의 대통령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얘기도 한다는데 정말 위험한 생각이죠. 그렇게 되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으라는 보장도 없는데 북뿐 아니라 남이 입는 피해도 생각해야죠. 그러다가 정말 대혼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국정원 저격수 김당 "선거 도둑맞지 않으려면 국정원 알야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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