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코미디 정치에 실낱같은 힌트를 주는 책들
"전 요즘 너무 불안해요. 제 직업이 위태위태합니다. 더 이상 웃길 수 있는 게 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풍자할 소재가 넘쳐났어요. 코미디언으로서는 행복한 시대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불행해요. 상대하기가 아주 버겁습니다." – 김제동, 10월 26일 <그럴 때 있으시죠?> 출간 기념 북토크(북DB 11. 1. 김제동 북콘서트 “풍자 개그가 어려운 시대… 불행하다”)
나라 꼴이 엉망이다. 코미디언보다 더 웃긴 정치인들은 과거에도 종종 존재해왔지만, 지금처럼 '종합적인' 코미디를 선보인 적은 없었지 않나 싶다. 오죽하면 김제동까지 ‘더 이상 웃길 수 있는 게 있겠느냐’며 자신감을 잃고 먹고살 길을 걱정하겠는가.
역설적으로, 정치가 점점 더 코미디가 될수록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커진다. 꼴 보기 싫다며 돌아서는 사람만큼, 더 이상 엉망이 돼서는 안 된다며 팔 걷어붙이는 사람도 많아진다. 한국 정치는 왜 이 모양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 할까. 정치 '호갱'(호구+고객)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정치 주권자'로 살려면 그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노답' 한국 정치에 실낱 같은 힌트를 주는 책들을 찾아봤다.
정청래가 제대로 마음먹었다. 17대,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금은 ‘자연인’이 된 정청래. 국민보다 '형님'이 더 중요한 형님동생형, 국회 출입기자도 잘 모르는 직업형, 센 사람만 쫓아다니는 동아줄형 등 '나쁜' 국회의원의 유형을 낱낱이 까발렸다.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푸른숲/ 2016년)에는 국회의원 고르는 법, 부리는 법, 되는 법까지, ‘정치 소비자’인 국민들이 알아야 할 필수교양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정치인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혐오는 악순환을 만들 뿐이라고 강조하며, 국민의 건강한 국회의원 비판과 적극적이고 일상적인 정치 참여에서 해답을 찾았다.
"제발 싸우지 좀 마라." 국회의원이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묻지 않고 그저 싸우지 말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이 많다. 꼭 싸워야 할 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회는 정말 너무 싸워서 문제일까? 아니면 제대로 못 싸워서 문제일까? 국회는 싸우는 장소다. 국정교과서가 옳은지 그른지 싸우고, (줄임) 깎아준 재벌들 법인세를 정상화하여 서민들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논쟁하는 곳이 국회다. -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 77쪽
사람은 계속 바뀌는데, 왜 정치는 늘 이 모양일까. 한국정치학회 회장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다. 그의 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와우/ 2016년)는 그간 정치를 바꾸기 위해 '사람'에게 매달렸던 한계를 지적하며 '권력체제'와 '틀'의 중요성을 역설한 책이다. 저자는 현 대통령제 틀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내각제를 제시한다. 개헌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중임 대통령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독일, 영국,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정치, 권력 체제에 대한 설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를 진단한다.
따라서 정당정치의 경쟁성 회복과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 가능성이 내각제 도입에 앞서 선행돼야 할 정치개혁의 요건이다. 현재의 양당 구도가 유지되고 있는 데는 현행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 중심 선거제도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 선거제도가 지역주의와 결합하면서 두 정당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막고 있다. 따라서 건전한 정당정치의 환경 마련을 위해 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0쪽
방송작가에서 대학교수 그리고 시민운동가로 변신해온 이진순. 그녀는 2015년 정치 스타트업 ‘와글’을 설립하고 "와글와글한 군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녀의 책 <듣도 보도 못한 정치>(문학동네/ 2016년)는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민참여 정치를 실현하는 다양한 해외 사례를 소개한 책이다. '다수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는 그 시효가 다했으며, 시민의 직접참여에 의한 풀뿌리정치 시스템이 그 대안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치는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밥 먹듯이' 하는 일상적 삶의 한 부분임을 보여준다.
"종북좌파가 싫으면 나를 선택하라"와 "독재의 부활이 싫으면 나를 선택하라"의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정치가 강요되는 동안,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공민주주의와 반독재민주주의의 제한된 답안지를 벗어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세우는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mocracy가 필요합니다. - <듣도 보도 못한 정치> 14쪽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한국 사회에 여러 '화두'를 던져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한 '교주'의 딸 때문에 새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제목의 책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인물과사상사/ 2016년)은 정치의 본질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한국정치의 고질적 폐단이자 야당 분당의 주된 원인으로 '정치의 종교화, 인물중심주의, 지도자 숭배'를 거론한다. '정책'과 '이슈'보단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 중심으로 모든 걸 환원하는 행태가 정치를 피폐하게 만들고, 소통과 화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순수주의자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처럼 대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강경파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줄임) 순수는 독선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다. 순수주의자들은 자신의 순수를 무기와 명분으로 삼아 정쟁을 종교전쟁으로 몰고 간다. 정치를 혐오하고 저주하는 유권자들은 그런 명쾌한 접근법에 환호한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등을 돌린 가운데 그런 소수의 전사들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정치권 역시 그런 '시장 논리'에 굴복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10대 0'의 정치다. -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204쪽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국민이 실세다! '정치 호갱'에서 벗어나는 법]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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