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발

- 1장 여성과 편견

by 북다이제스터




유럽의 코르셋 유행이 400년이나 이어진 것도 놀랍지만, 중국의 전족은 무려 천 년 가까이 지속됐습니다. 전족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 발이 자라지 못하게 삼베로 단단히 묶어, 7~10센티미터 정도로 작게 만드는 풍습이었습니다. 뼈는 자라지 못하게 비틀고, 살은 고름으로 녹였습니다. 세간에는 ‘발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으면 작고 예쁜 발이 되지 않는다’는 비법이 전해졌습니다. 실제로 발가락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전족은 여성이 평생 뼈가 부러진 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전족한 여성은 제대로 일할 수도, 멀리 걷지도 못했습니다. 사회활동은커녕 집 밖 출입조차 어려웠습니다. 생계를 꾸릴 능력을 잃은 여성은 점점 더 의존적이고 나약해졌으며, 자괴감과 함께 사회적인 지위도 떨어졌습니다.


전족은 10세기경 송나라 궁중 무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희들은 발을 비단으로 묶고 발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연꽃 위에서 춤을 췄습니다. 그래서 전족을 ‘금련’(金蓮)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2세기 금나라 시기, 이런 발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자 귀족들은 신분 과시용으로 이를 모방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도시화가 진행 중이었고, 전족 확산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원래도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었지만,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이 덜 필요해지면서 그 지위는 더욱 낮아졌습니다. 이 시기 첩을 두는 관행과 과부의 재가 금지, 전족이 상류층 사회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후 원나라를 거쳐 명·청 시대에 이르자, 전족은 지배층뿐 아니라 평민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청대 인물 전영은 “사대부 가문부터 편호소민(編戶小民, 호적에 들어 있던 평민)에 이르기까지 전족하지 않은 이가 없으며, 전족은 용모 단장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명·청 시대 전족이 사회 전반에 퍼졌음을 보여줍니다.


전족은 여성 순결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발을 묶은 소녀는 밖을 쏘다니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며 훌륭한 가문에서 잘 자란 ‘좋은 여성’이라는 증표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아내를 한가롭게 집에만 머물게 할 만큼 남편이 재력이 있다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산층도 가문과 재력을 과시하고 정조를 찬양하며 전족을 받아들였습니다. 전족의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는 소녀는 칭찬받았고, 절에서는 축제 때 전족 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전족이 유행하던 시기,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연히 발이었습니다. 미인이라도 발이 ‘뚱뚱’하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소각(小脚, 전족한 발)에 비해 대각(大脚, 전족하지 않은 발)은 천하게 여겨졌습니다. 전족은 수백 년 동안 성적인 욕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부자연스럽게 절뚝이는 걸음걸이는 남성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여성들은 화려하게 수놓은 헝겊신으로 전족을 감싸기도 했는데, 이 또한 남성을 자극했습니다. 고소설 『금병매』(1610)에는 전족을 활용한 체위가 열여덟 가지나 등장합니다. 결국 전족은 단순한 미의 기준을 넘어, 부와 여가, 교양, 예술적인 감각, 여성의 미덕, 성적 매력, 심지어 남녀 간의 결합까지 상징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17세기 만주족이 한족을 정복하고 청나라를 세웠을 때, 만주족은 한족의 전족 풍습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만주족은 자신들의 큰 발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선전했지만, 한족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전족 풍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족 남성들은 전족한 여성의 발에서 연민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1895년에 이르러서도, 어느 프랑스 의사는 중국 기독교인들이 고해성사 중에도 여성 발을 음란하게 상상한다고 기록했습니다.


20세기 초 전족 반대 운동이 본격화됐지만,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혼인 문제였습니다. 전족이 오랜 전통이 되면서, 남성들은 전족한 여성과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방족(放足), 곧 전족을 그만둬야 한다고 느꼈지만, 혼인 문제에 직면하면 다시 전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의식 전환이 필요했고, 5.4 운동(1919년 5월 4일 일어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 운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모든 전통이 재평가되면서 전족의 폐해도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5.4 운동 이후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전족한 여성과의 결혼을 오히려 수치로 여기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결국 여성들 스스로 자유롭게 걷고 싶다는 열망이 퍼지면서 전족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전족이나 코르셋 같은 전근대적인 상호 주관은 단지 과거의 기이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할례’라 불리는 여성 성기 절제 풍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이 관습은 면도날로 여자아이나 청소년의 음핵이나 포피, 음순 같은 성기 일부나 전부를 도려내는 행위입니다. 극단적인 경우 외과수술로 질 입구를 좁히거나 아예 봉합하기도 합니다.


이 관습은 여성의 순결을 보장해 혼인에 적합한 상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여아와 청소년은 매력적인 결혼 상대될 수 없으며, 부도덕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심지어 해당 소녀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명예까지 위협하는 일로 간주됩니다. 이집트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할례에 반대하는 엄마들조차 딸이 결혼하지 못할까 봐 어쩔 수 없이 이를 강행합니다. 결국 엄마들은 딸의 건강과 생명을 걸고서라도, 딸의 미래를 지키고자 할례를 시킵니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에서 할례는 순결의 상징이지만, 원시 사회에서는 순결이 오히려 악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순결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사회적인 구성물일 뿐입니다. 원시 사회에서 처녀는 순결을 잃는 것보다,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는 소문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오히려 혼전 임신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어, 남편감을 찾는데 유리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 처녀는 인기가 없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동부 캄차카 반도의 캄차달족은 신부가 처녀일 경우, 신랑은 장모에게 ‘딸을 막 키웠다’고 호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순결이 결혼에 걸림돌로 여겨진 곳은 상당수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들은 결혼에 방해가 되는 이 금기를 깨고자 낯선 이방인에게 스스로 몸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엄마들이 먼저 나서 딸을 처녀에서 벗어나게 해 줄 남자를 찾았고, 인도 남부 말라바르 지역에서는 아가씨들이 스스로 행인에게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혼전 관계가 흔했습니다. 그래서 성적 욕망이 쌓이지 않았기에, 아내를 선택할 때 욕망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욕구는 바로 충족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미의식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은 상당 부분 상상력에서 비롯되는데, 원시 사회에서는 성적 대상을 미화할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노래나 남편과 아내 사이의 애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할례나 순결 같은 관습은 사회적인 성(性)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은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성(sex)이 있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성(gender)은 문화 속에서 ‘구현’되거나 ‘강요’됩니다. 정치철학자 아리스 마리온 영(1949~2006)은 『계집애같이 던지기』(1980)에서 남녀의 몸동작이 왜 서로 다른지 설명합니다. 여성이 공이나 돌을 던질 때 흔히 보이는 ‘마지못해 던지는 듯한 몸동작’은 생물학적인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 신체를 ‘미래의 아기를 위한 몸’으로 여기도록 사회적으로 길들여집니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몸가짐은 활동을 제한합니다. 여아는 남아보다 곱게 자라야 한다며 야외 활동이나 여행, 운전을 통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제한이 바람직한 여성성으로 부각되는 문화에서는 여성의 신체 자체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성의 낮은 성과를 흔히 개인 탓으로 돌립니다. 어떤 여성이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면, 지능이나 자신감 부족, 자포자기 같은 개인 결함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인 힘’의 결과입니다. 예컨대 ‘여자는 지도를 못 본다’는 고정관념은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여학생은 물리학에 약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으면, 그 부정적인 낙인(stigma)이 여성의 무의식에 내면화됩니다. 자존감과 기대치가 낮아지고, 의욕은 떨어져 소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 실제 성적도 낮아집니다.


젠더 학습은 신생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시작됩니다. 아이가 자신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기 전부터,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젠더에 대한 암시를 받습니다. 가령 신생아는 남녀 성인을 서로 다르게 인식합니다. 아기는 여성과 상호작용할 때 맡는 화장품 향기를 남성의 냄새와 다르게 연상합니다. 부모나 의사의 머리 모양 차이도 젠더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두 살 무렵부터 아이는 젠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장난감이나 그림책,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모든 것을 통해 남녀 차이를 배우며 성별 고정관념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아이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식하고, 주변 사람도 성별에 따라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젠더 사회화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일단 젠더가 ‘주어지면’, 사회는 그에 걸맞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 행동하길 기대합니다. 이 기대에 맞서려는 시도는 현실을 완전히 뒤엎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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