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장 자유의지
흄과 스피노자가 이미 주장했듯, 현대 뇌신경과학의 첨단 기술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에서 여러 뇌신경과학 실험을 근거로 이렇게 말합니다.
“최신 과학 이론과 기술에 따르면, 우리 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외부 세계는 물론, 심지어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자아’는 허구적인 이야기다."
우리는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미 수많은 요인에 의해 좌우됩니다. 식욕은 상당 부분 유전적으로 타고나며, 뇌 회로 역시 그에 맞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체중과 체형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150개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는 배고픔을 감지해 식사를 지시하는 유전자와 쾌락 회로를 조절하는 유전자(수용체 민감도가 낮은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이 먹어야 만족감을 느낌), 필수 영양소 부족을 감지해 더 먹도록 지시하는 유전자 등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먹고 싶어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욕구 자체가 이미 생물학적으로 조율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음식 선호는 후생유전학적인 영향도 받습니다. DNA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환경과 경험은 유전자 발현을 바꾸고, 그 결과 우리 입맛과 선택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기근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영양 상태가 극도로 나빴던 시기에 수정된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 비만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환경에서 잉태된 아이는 태어난 뒤 풍족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태내 환경이 신진대사 관련 유전자 발현을 바꾸었고, 그 영향은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당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 할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가 오늘날 당신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장내 미생물이라는 변수도 더해집니다. 1년 이상 꾸준히 먹은 음식은 장내 미생물 구성을 크게 바꾸고, 그렇게 형성된 미생물은 다시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믿는 식습관조차, 실은 미생물이 좌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내 미생물은 면역계와 상호작용하며,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우울증은 염증 반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정 장내 세균이 염증을 줄이는 장 점막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면, 뇌 신경 활동이 억제되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과민대장증후군이나 소아지방변증(설사와 영양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 같은 장 질환이 우울증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장내 미생물과 뇌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생충이 숙주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톡소포자층이라는 기생충은 인간 숙주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기생충에 감염된 남성은 도덕규범을 지키려는 의지가 약해지고, 사회규범을 어겨도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아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이 기생충에 감염된 여성은 밖으로 나다니기를 즐기고, 인정이 넘치는 성향을 보입니다. 이처럼 기생충은 인간의 행동까지 바꿀 수 있지만, 정작 우리는 이런 변화의 원인을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행동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고칼로리나 고당도, 고염도 음식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음식 선택에는 식습관이나 기호는 물론, 그날의 호르몬 수치, 피로도, 바이러스나 기생충 감염 여부, 장내 미생물 상태 등 수많은 요인이 얽혀있습니다.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는 사소한 결정조차, 우리가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무수한 요인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내 생각이 내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생각이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쉽게 반발합니다. 가령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나면, 우리는 그 성취를 전적으로 의식의 노력 덕분이라 말합니다. 마치 문제 해결의 전 과정을 의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생각’에는 무의식의 작용이 깊이 개입합니다. 우리는 해답에 다가간다고 느끼지만, 많은 경우 해답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답을 찾은 듯 기뻐하며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라고 공치사를 합니다. 하지만 그 발상이 떠오르기 전, 무의식은 이미 방대한 작업을 끝낸 상태입니다. 아이디어가 번뜩인다는 건 무의식이 몇 시간이나 며칠, 몇 년에 걸쳐 정보를 통합하고, 새롭게 조합한 결과입니다. 이를 인큐베이팅(incubating)이라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일수록 억지로 머리를 싸매기보다, 긴장을 풀고 손에 든 볼펜을 이리저리 돌리며 감이 무르익기를 기다립니다. ‘생각한다’는 경험을 곱씹어 보면, 그것이 의식하지 못한 작용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은 의식적인 통제가 아니라, 무의식 수준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습니다. 무의식을 철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처음 조명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식된 사유는 깊은 물 위의 얇은 수면과 같다. 우리의 판단은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판단은 불투명한 심층에서 생성되어, 소화 작용처럼 의식되지 않은 채 형성된다. 착상이나 결단은 우리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채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는 가장 내밀한 사유의 생성을 예측할 수 없다. 우리 내면에서 지성을 종처럼 부리는 주체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알폰스 무하 <욥사의 담배 권련 용지 광고>(1896)
욥(Job) 회사의 담배용지 광고는 담배 연기와 여성의 출렁이는 머리카락이 어우러져 매혹적으로 보입니다. 무하의 이 광고 포스터는 담배 연기로 가득한 선술집이나 여인숙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광고는 개인을 중요한 존재로 보이게 아첨하고, 마치 개인의 판단력과 안목에 호소하는 듯 가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식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자신이 내린 선택이 자율적인 결정이라 착각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행동 동기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