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나는 내가 아니다

- 16장 자유의지

by 북다이제스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유의지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었을까요? 한 가지 답은 인간의 본성(nature)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그 생각이 느낌을 낳으며, 그 느낌이 정서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느낌이 먼저이고 정서가 뒤따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순서는 정반대입니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정서가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신체적인 느낌이 나타나며, 마지막에야 우리는 그것을 ‘기쁘다’, ‘슬프다’라고 인식합니다. 심장 박동의 변화나 호르몬 분비 같은 ‘정서’ 반응이 선행하고, 이후에야 우리가 그것을 ‘느낌'으로 자각합니다. 이는 무의식적인 반응이 의식적인 인식보다 앞서며, 결국 무의식이 우리의 행동을 이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무의식적인 정서가 먼저 작동하고, 의식적인 느낌과 생각이 뒤를 잇는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생존에는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했기에, 정서가 먼저 발달하고 이후에 느낌과 생각이 나타났습니다. 무의식적인 정서는 생명체가 위험한 상황을 자동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한 생존의 도구인 셈입니다.


흄이 말했듯, “이성은 정서의 노예”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건 정서이며, 이성은 오직 그 정서를 정당화하고 설명하는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그는 “이성이 단지 정서의 노예이며, 정서를 위해 봉사하고 복종할 뿐, 그 이상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먼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다음 이성으로 그 감정을 합리화합니다.


따라서 이성은 정서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내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선택하거나, 낯선 이를 위해 나 자신의 파산을 선택해도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흄의 말처럼, 이성은 정서라는 감정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성은 감정을 실현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그는 이성과 감정이 서로 대립한다는 통념을 거부하며, 실제로 가능한 유일한 갈등은 서로 다른 감정 간의 충돌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흄의 요지는 이성이 감정에 늘 패배한다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성은 감정과 경쟁하지 않으며, 인간 삶을 통제할 힘도 없습니다. 이성은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감정과 다툴 의지조차 없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라 불리지만, 나는 평생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성은 감정을 지배하기보다 감정에 의존합니다. 감정이 제 기능을 해야만 이성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인 활동은 이성과 감정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주도권은 대체로 감정에 있습니다. 니체의 말처럼, 이성은 감정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이성은 이미 형성된 감정을 합리화하고, 자신과 타인 앞에서 그 정당성을 설명하려 애쓸 뿐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의 근원은 대부분 무의식 속에 있습니다. 무의식은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나름의 연상 법칙에 따라 흘러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무의식적인 동기를 알지 못한 채,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그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무의식이 이미 내린 결정을 인식합니다. 마치 인식이라는 ‘법정’에서 이성은 무의식을 대변하는 ‘변호사’처럼 행동하는 셈입니다. 이성은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있는 기억과 신념, 희망, 걱정 등을 탐색해, 감정이 납득할 만한 의미를 찾아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성이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성은 상황에 맞춰 ‘말이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사실을 조금씩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의식하는 자아는 결정을 가장 늦게, 그것도 왜곡된 형태로 알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도, 그럴듯한 설명을 꾸며내는 데 무척 능숙한 존재입니다. 뇌는 단편적인 경험의 조각을 모아 빈틈을 메우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합니다. 심지어 자아를 보호하고자 불편한 생각과 기억을 의식에서 몰아내기도 합니다.


신경과학자 패트릭 해거드는 “우리가 행위의 주체라고 느끼는 경험은, 사실상 모든 일이 끝난 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1971~ ) 역시 우리의 생각 대부분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자체는 과학적으로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기 불편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결정과 선택이 내 것이 아니란 건가요?” 이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결정과 선택은 당신 것이지만, 그건 의식적으로 의도된 게 아니란 뜻이에요.”


우리에겐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지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결정을 내린다고 느끼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랫말처럼,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그건 내가 아닙니다(There's someone in my head but it's not me).”


우리의 행동은 의식적인 사고나 의도보다 먼저 무의식에서 비롯되며, 이 과정은 보통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시작됩니다. 뇌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기 이전에 이미 뇌는 그 결정을 내립니다. 실험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의식하기 최소 0.3초, 길게는 10초 전부터 무의식적인 뇌 활동은 증가합니다. 다시 말해 뇌가 먼저 결정하고, 그 뒤에야 ‘나’는 그것을 인식합니다. 이 발견은 전통적인 자유의지 개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행동이 의식보다 앞서 무의식에서 시작된다면, 자유의지는 그 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의식적인 의지는 결국 환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뇌과학자는 자유의지뿐 아니라, 자아 자체도 뇌신경 작용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말합니다. 인지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1939~ )는 우리가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린다고 믿는 ‘자아’가 사실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뇌과학자들이 도달한 불편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의식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의식에서 ‘드러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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