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장 길들이기
내 몸이 5년마다 거의 새로 바뀌고, 몸속 유전자의 99퍼센트가 내 것이 아님에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기억 때문입니다. 기억이 곧 삶이며, 망각은 죽음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나의 삶입니다. 기억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자아가 지속된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연속성’ 이론은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예컨대 카프카(1883~1924)의 소설 『변신』(1915)에서 주인공이 딱정벌레로 변해도 우리는 그를 여전히 같은 인물로 여깁니다. 그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를 ‘나’로 만드는 핵심은 육체가 아니라 기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주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은 경험한 모든 순간을 그대로 저장한 결과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입니다. 기억은 사건을 기록해 나중에 재생하는 영상기록 장치가 아닙니다. 언제든 나와 타인이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위키피디아에 가깝습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특정 순간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객관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명확해 보이는 어떤 현실도 뇌를 거치는 순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편집된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세상을 스냅사진처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건 관심사에 따라 선택되고 해석됩니다.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거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사에 따라 인식됩니다.
문제는 관심사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요? 욕구와 믿음, 성격은 시간이 지나며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같은 존재로 여길까요? 왜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할까요? 우리는 미래의 ‘나’도 여전히 ‘나’라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 착각은 두 경우 모두 ‘나’라는 용어를 쓰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이는 ‘문법적인 착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을 ‘나’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하지만, 이는 언어가 만든 허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정체성은 매순간 변하며, ‘나’는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작가 미상 <테세우스의 배>(시기 미상)
크레타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아테네로 돌아온 테세우스의 배는, 여러 차례 수리되며 낡은 부품이 새 부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렇게 바뀐 배가 여전히 같은 배인지 질문했습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개인이 시간이 지나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기억’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집단 기억, 즉 역사도 개인 기억처럼 선택적으로 ‘저장’됩니다. 과거는 가만히 앉아 발견되길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두고 끊임없이 싸웁니다. 가령 어떤 사람에겐 범죄자로 보이는 인물이, 다른 사람에겐 혁명의 영웅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심사’에 따라 과거를 끊임없이 세우고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은 주로 정치적으로 선택된 집단 기억입니다. 집단은 의미 있다고 믿는 ‘관심사’에 따라 무엇을 기억할지 선택합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관심사에 따른 선택의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뿐 아니라, 사건의 원인을 무엇으로 볼지도 ‘선택하는 체계’(selective system)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사가가 사실들과 상호작용하며,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다.”
역사는 집단의 관심사에 따라 기존 의미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역사학을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과학”이라 한 것도, 역사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각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모습으로 남기려 했는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인간은 집단 기억에 지배됩니다. 최근 수많은 연구가 보여주듯, ‘가짜’ 기억도 반복되면 결국 진짜 기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거듭나려면, 과거에 주입된 집단 기억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긍정할 새로운 기억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을 호국영령으로 기립니다. ‘무명용사의 탑’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상징물에서 알 수 있듯,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만이 집단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에서도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가미카제 비행사들은 거의 예수와 같은 존재로 여겨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반면 전장에서 도망친 탈영병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도덕 교과서 역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인물만을 도덕적인 모범으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3·1 운동 당시 독립 선언서 인쇄 현장을 보고도 모른 척해 체포된 조선인 형사나, 6·25 전쟁 중 전사한 장병들이 본받을 인물로 기억됩니다.
반면 독일은 탈영병을 ‘조국을 배신한 범죄자’가 아닌, ‘반인도적인 전쟁 범죄에 저항한 휴머니스트’로 기억하고자 곳곳에 탈영병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물론 탈영병을 인정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 통념상 탈영병은 ‘전우를 배반하고 조국을 등진 배신자’로 여겨졌고, 이를 바꾸면 군 사기가 떨어질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2002년 독일 의회는 나치 시절 탈영병에게 내린 유죄 판결을 무효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따라 탈영병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임지현(1959~ )은 “당신 사회가 기억하는 역사가 과연 진실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는 역사가 현재의 관심사에 따라 과거를 해석하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정치적인 행위임을 강조했습니다.
집단 기억이 ‘관심사’에 따라 편향되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1939년 이전 서유럽에서 점령군에 협력한 부역은 범죄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치 점령기에도 대다수 서유럽인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레지스탕스 역시 후대에 부풀려진 신화에 가깝습니다. 당시 점령군에 협력하는 건 전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졌습니다. 부역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한 사례도 드물었습니다.
소설가 카뮈(1913~60)는 부역자를 비난하거나 처형하는 행위를 부당하고 경솔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동포를 부역 문제로 비난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령에 저항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관심사’ 때문에, 일부 부역 처벌 사례만이 부풀려져 집단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기억을 ‘나의 뇌를 활용한’ 독립적인 활동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개인의 기억은 집단 기억에 크게 의존합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기억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자신의 기억을 조정합니다. 결국 집단이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기억과 미래도 달라집니다.
미래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과거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면 다른 미래가 열립니다. 재해석된 과거는 새로운 ‘자유의지’의 기반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은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좌우합니다.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말처럼 “과거는 죽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습니다.”
피터르 브뤼헐 <사울의 개종>(1567)
사울은 기독교인을 체포하러 가던 중 번쩍이는 빛에 말에서 떨어져 신의 계시를 받고 개종해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의 회심과 활동은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에서 세계적인 보편 종교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사울을 알아보긴 쉽지 않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푸른 옷의 남자만 어렴풋 보일 뿐, 위대한 성인의 위엄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그날은 한 병사가 말에서 떨어진, 그저 평범한 날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건에 의미가 부여되고 ‘집단 기억’으로 자리 잡을 때, 그건 비로소 역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