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장 독단
‘오컴의 면도날’(사실을 설명하는 이론이 여럿이라면, 가정이 가장 적은 이론이 가장 타당할 수 있다는 주장)로 유명한 중세 신학자 윌리엄 오컴(1287~1347)은 개념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돕는 추상적인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개념이 실체가 아니라면 인식은 단순히 개념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이 됩니다. 개념이나 이론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인식은 이를 시용해 경험을 조직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인식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간이 현상에 적극 개입해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제시하기 전까지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인 실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심장 박동이나 행성의 자전과 공전, 시계의 움직임 같은 반복된 경험에서 추상된 개념임을 깨닫고, 시간에 상대성을 부여했습니다.
시간이 이처럼 실체가 아니라 인식을 위한 개념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간 개념 역시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력을 항성이나 행성 주변 공간의 휘어짐으로 설명한 그의 이론도 훗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상대성>(1953)
이 판화에서 에셔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서로 다른 세 개의 중력 세계가 단 하나의 공간에 동시에 작용하는 불가능한 건축물을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은 관찰자의 위치, 곧 관점에 따라 현실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건축물에서 무엇이 바닥이고, 무엇이 천장인지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아래쪽이 바닥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오른쪽이나 왼쪽이 바닥이 됩니다. 진짜 바닥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관점이 ‘정답’이며, 누가 자신의 논리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리학자이자 심리학자, 생리학자, 역사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흐(1838~1916)는 모든 형태의 절대주의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이론과 법칙이 단지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계산 도구에 불과하다는 철학자 조지 버클리(1685~1753)의 견해에 동의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1922~96)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더욱 발전했습니다. 쿤은 과학 이론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할 틀을 제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기존 이론 없이는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질문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과학에서 질문, 곧 가설은 언제나 기존 이론을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부 세계에 대한 관찰은 필연적으로 기존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이론 의존적’(theory-burdened)인 행위가 됩니다.
이론이란 대상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theory는 ‘보다’(look at) 또는 ‘관찰하다’(view)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창문의 위치나 크기, 모양, 투명도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듯, 이론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규정합니다.
이론은 시대적인 배경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은 단순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각에서 만들어진 ‘발명’입니다. 특정 시각이 없으면 인식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것만 알 수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현상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이미 아는 범위 안에서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다윈의 진화론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설명이 아닙니다. 당시 애덤 스미스의 이기주의 경제 이론을 반영한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스미스가 개인의 이익 추구와 경쟁 속에서 사회 질서가 형성된다고 보았듯, 다윈도 개체 간 경쟁과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학적인 질서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당시 영국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원리를 반영한다고 지적하며, 과학 이론도 사회적인 맥락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다윈이 동물과 식물 속에서 노동, 경쟁, 새로운 시장 개척, 게다가 맬서스주의의 ‘생존 투쟁’ 등의 요소로 이루어진 영국 사회를 인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입니다.”
실제로 다윈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준 건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나온 ‘생존 투쟁’ 개념이었습니다. 맬서스는 인구가 식량 공급보다 빠르게 증가해 경쟁과 도태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다윈은 이 원리를 자연에 적용해,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 속에서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홉스가 자연 상태의 인간을 끊임없이 충돌하고 경쟁하는 존재로 본 점도 이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이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발견이 아니라,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사회의 사상적·경제적 맥락을 반영한 ‘발명’이었습니다. 연구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관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치관이나 시대적인 분위기, 정치적인 입장이 분석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사회적·문화적인 가정이나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관점에 따라 가설과 모델을 만들고, 실험 결과를 해석합니다. 그래서 과학사에는 새로운 이론보다는 기존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초 천문학자들이 천왕성 궤도의 이상한 움직임을 관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뉴턴 역학을 의심하지 않고, 미지의 행성이 천왕성에 영향을 준다고 가정했습니다. 이후 고성능 망원경으로 예측된 위치에서 해왕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쿤의 논지를 잘 보여줍니다. 기존 이론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천왕성 궤도에 무슨 문제가 있나?’),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어떤 가설을 세울지(‘천왕성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뉴턴 법칙에 따르면, 그 거대한 물체는 저쪽에 있을 거야.’)를 알려줍니다. 나아가 무엇을 찾으면 안 되는지, 어떤 질문은 해서는 안 되는지도 결정합니다.
연구자들은 증거를 수집할 때 기존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어떤 증거를 받아들이고 어떤 걸 거부할지 결정합니다. 사건과 무관하다고 판단된 데이터는 애초에 고려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결국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은 기대한 범위 안에서만 인식되며, 그 밖의 것은 무의미하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사실’은 만들어집니다. 정보는 문화나 희망, 기대라는 필터를 거쳐야 비로소 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과학은 객관적인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과학은 기존 관점의 영향을 받으며,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과학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객관적인 기계가 절대 아니라는 관점을 강력히 지지한다. 과학은 열정과 갈망, 문화적인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화에 얽매인 사고방식이 과학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기존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탐구가 가능하다고 반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우리는 예측과 해석을 위해 기존 이론이라는 체계적인 도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틀 없이는 심지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조차 답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미지의 세계는 기존 관점이 정의한 틀 안에서만 탐구됩니다. 과학은 동시대의 언어로 정의되고, 동시대의 도구로 연구한, 동시대의 문제에 답할 뿐입니다.
감각을 통한 인식 역시 기존 관점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인식 주체나 시대가 바뀌면 관점도 달라집니다. 진리는 인위적입니다. 기존 관점이 바뀌면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쿤 이후 과학 지식은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잠정적인 해석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과학자는 자신이 연구하는 현상이 특정 관점의 산물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과학이 자연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반영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표현된 세계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애초에 자연을 수학적인 구조로 구성해 왔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본질적으로 객관적이며, 과학자가 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실재를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신화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활동인 이상 사회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과학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이유도 진리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문화적인 맥락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를 규정합니다. 이론은 사실에서 자동으로 도출되는 냉정한 귀납이 아니라, 사실 위에 상상이 더해진 산물이며 그 상상의 근원 역시 문화입니다. 따라서 문화적인 가정이 없는 진리란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며, 과학은 불변의 답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가 상상하지 못했듯, 세계와 나는 명확히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과학 신봉자들은 과학만이 세계의 본모습을 객관적으로 드러낸다고 주장하며, 문학이나 철학, 역사, 예술을 비과학적이라 배척합니다. 과학은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고 전제했지만, 그 전제는 과학의 역사 속에서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물리학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이나 화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진리도 결국 인간이 구성한 관점에서 해석된 것일 뿐, 자연 그 자체의 진리는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걸 ‘혜해탈’(慧解脫)이라 합니다.
불교는 해탈을 마음의 해탈인 심해탈(心解脫)과 지혜의 해탈인 혜해탈로 나눕니다. 심해탈이 ‘무아’(無我)를 깨달아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혜해탈은 세상이 마음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인식하는 세계는 언제나 마음을 통해 구성된 세계일뿐입니다. 그 바깥의 ‘객관적인 실재’는 끝내 파악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