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가족과 식인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1927~2001)는 “식인이 인간의 본성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쉽게 길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주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원이 고갈되면, 인류가 식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1885~1981)는 이에 반대하며, 식인이 반드시 환경 파괴나 자원 고갈의 결과라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식량 부족 때문에 식인 풍습이 생겼다는 주장은 확실하지 않다. 인육 섭취가 한 번 문화로 자리 잡으면, 식량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열렬히 찾는 대상이 되었다. 원시 부족은 인육을 먹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인육을 먹든, 동물을 먹든 도덕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식인 풍습은 한때 인류 전반에 널리 퍼진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 식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멜라네시아에서는 추장이 친구들에게 구운 인육을 대접하면 명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브라질의 어느 현인 추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인육만큼 맛있는 고기를 알지 못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정말 음식을 너무 가린다.”
아일랜드인이나 이베리아인, 픽트인(로마 제국 시기부터 10세기까지 스코틀랜드 동부와 북부에 거주하던 부족), 11세기 데인족(덴마크계 게르만족) 같은 종족들 역시 식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병사들은 무슬림 포로를 잡아 어른은 끓여 수프로 만들고, 아이는 쇠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었습니다. 어느 십자군 병사는 “우리는 죽은 튀르크인과 사라센인을 거리낌 없이 먹었다. 심지어 개도 먹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십자군은 튀르크인이나 사라센인을 개보다 약간 나은 존재로 여겼던 듯합니다.
일부 부족은 인육을 주요 교역 상품으로 삼았고, 장례식 같은 건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콩고의 우알라바강 지역에선 남성과 여성,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산 채로 식품처럼 사고팔았습니다. 뉴브리튼섬에는 정육점처럼 인육을 파는 가게도 있었습니다. 솔로몬 제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잔치에 쓸 인간 제물, 특히 여성을 돼지처럼 살 찌우기도 했습니다.
한편, 남미 마젤란 해협의 섬 주민 푸에고인은 “개고기에서 수달 맛이 난다”며 여성 인육을 개고기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폴리네시아 타이티섬의 추장은 “백인 고기는 잘 구우면 익은 바나나 맛이 난다”고 했습니다. 반면 피지인은 백인 인육이 너무 짜고 질겨 유럽 선원 인육은 먹을 수 없는 지경이라며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폴리네시아인 인육이 더 맛있다고 여겼습니다.
16세기 철학자 몽테뉴는 죽은 이를 구워 먹는 것보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고문과 처형이 더 야만적이라 보았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그런 일이 흔했습니다. 듀런트는 “우리 인간은 서로의 착각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짠 의미의 거미줄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각 세대 집단은 나름대로 도덕의 거미줄을 짜서 선악에 대한 그들만의 의미를 유지하고 전합니다. 윤리는 ‘기껏해야 많은 경우’에 참일 수 있는, 단지 느슨하고 대체적인 지침 이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도덕에 맞는지를 정확히 정의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합니다. 삶이 지니는 다양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치가 운영한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느 간수가 열여섯 살 된 여성 수감자를 성폭행했습니다. 간수는 이를 숨기려고, 피해자가 아침 점호 때 쓸 모자를 훔쳤습니다. 점호 때 모자를 쓰지 않으면 즉시 총살된다는 규칙을 악용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도 모자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고 있던 동료 수감자의 모자를 훔쳤고, 그 동료는 결국 총살당했습니다. 모자를 훔친 수감자는 얼굴도 모르던 그 동료의 죽음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아침 점호 때 모자가 없어진 걸 안 동료는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죽는 자와 죽이는 자 모두 게임의 규칙을 잘 알았습니다.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경고 없이 총성이 울렸습니다. 총알이 그녀의 뇌에 박혔습니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기뻤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정당할까요? 아니라면, 자신 생명을 포기했어야 했을까요? 성폭행 피해 수감자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수감자는 살아남고자 지독히 고약한 대안 중 나름대로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런 딜레마에 보편적인 정답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두에게 적용될 일반적인 도덕규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은 생존을 위해 ‘도둑질하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배급 식량이 너무 적어 훔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만으로는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생각 끝에 결국 종교를 버렸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1919~87)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은 내가 배운 종교와 도덕 유산을 깡그리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우슈비츠가 있었고, 그곳에는 신이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딜레마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했다.”
인간진화생물학자 조지프 헨릭(1968~ )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에서는 누구나 ‘하나’의 종교나 ‘하나’의 신념 체계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서구 문화는 맥락에 따른 특수성보다는 공정한 원칙을 중시하며, 도덕적인 진실이 수학 법칙처럼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그들은 일관성을 강조하고, 일관성이 없으면 위선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옳다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규정만을 적용하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다른 사회는 도덕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가치관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걸 비도덕적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 같은 규칙을 적용하려는 태도는 둔감하고 경직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잔인할 수 있습니다. 맥락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보면 오히려 서구식 사고가 비윤리적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단순한 ‘예/아니요’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덕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일시적인 유행이나 허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삽니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모두 삶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건 단지 내게 중요하고 가까운 이들의 생각을 반영해 구성된 것일 수 있습니다. 다수가 따른다고 해서 정답일 리 없습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마음 약한 우리가 안정감을 느끼려는 도피처이자, 타인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망명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 생각을 내 것이라 여기지만, 그 대부분은 사회 통념을 따른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역사적인 사건’ 곧 시대적인 경험으로 구성된 나라는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구성된 존재라면, 나는 다시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성하는 생각의 마법에서 벗어나, 자신 삶을 재구성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