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경험과 느낌
3장 경험과 느낌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내린 판단이다.
- 니체
인류 역사를 보면 시대마다 문화가 달랐습니다. 이런 문화 차이는 개인의 관심사와 행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정 시대의 문화가 개인감정을 중시하고 감정 표현에 필요한 어휘를 풍부하게 제공하면, 사람들은 자신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심리학자 리사 펠드만 바렛(1963~ )은 감정이 보편적이거나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를 얼마나 배웠는지에 따라, 머릿속에서 이름 붙인 감정만을 경험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감정과 사유를 펼치고 확장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언어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과 생각, 언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언어학자 빌헬름 훔볼트(1767~1845)도 “우리는 언어가 보여 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 그 자체보다, 그 감각이 불러오는 단어의 의미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합니다. 같은 감각도 어떤 단어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동물은 자극에 직접 반응하지만, 인간은 떠오른 의미에 반응합니다. 객관적인 자극이 마음속에서 주관적인 자극을 일으키고, 우리는 그 주관적인 자극에 반응합니다.
언어가 현실을 규정합니다. 언어가 우리 생각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영향을 줍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말처럼, “우리가 언어를 가진 게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갖고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집”이며, 인간 본질의 거처입니다. 언어가 감정과 생각을 만들고 행동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다양한 어휘를 제공할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거기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합니다. 사실상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란, 상당 부분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무의식적으로 쌓인 결과입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책이 이런 새로운 문화 창조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책이 흔한 현재든 책이 귀한 과거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옛사람들도 우리처럼 책을 읽었다고 상상해선 안 됩니다. 독서는 단순히 숙련된 읽기 기술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작가와 소통하며 주관적이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옛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살펴보면,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르게 느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모두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중세 유럽은 그 차이가 훨씬 컸습니다. 귀족은 글을 읽을 줄 아는 하인과 쓸 줄 아는 하인을 따로 두었습니다. 귀족이 글을 알아도 편지를 직접 읽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하인이 대신 읽어주었습니다. 더욱이 읽을 줄 아는 하인이라도 반드시 쓸 줄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문자 지식 이상을 요구하는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언어학자들은 말하기와 쓰기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3~1917)는 “쓰기란 말하기를 단지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구술하는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는 완전히 인위적인 행위입니다. 누구도 ‘자연스럽게’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말을 글로 옮기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글에는 몸짓이나 표정, 억양이 없고 실제 청자도 없는 탓에, 글 쓰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지 미리 치밀하게 예측해야 합니다. 배경이나 맥락 없이 오직 글만으로 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하려면, 말을 세심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이런 세밀한 배려가 글쓰기를 종종 고통스러운 일로 만듭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모든 문서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계산서조차 큰 소리로 낭독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auditing’(회계 감사)의 어근 ‘aud-’[audio와 같은 어근]에도 이런 듣기 관습이 남아있습니다. 교황은 매주 계산서 내용을 들었습니다. 교황은 스스로 읽을 수 있었지만, 늘 자신에게 큰 소리로 계산서를 읽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낭독자는 목소리뿐 아니라 손짓과 눈빛까지 동원해 내용을 전했습니다. 듣는 이는 그 모든 것을 통해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우리는 상대의 음색이나 억양, 표정으로 애정이나 분노, 열망, 외로움, 감사 같은 마음을 읽어냅니다.
이런 관습을 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마치 비밀을 감추듯 글을 속으로 읽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있었던 듯합니다. 당시에는 책을 속으로 읽으면 이단처럼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소리 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40?~397)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놀라운 일이다. 암브로시우스가 눈으로 책 위를 미끄러지듯 훑으며 읽을 때면, 그의 심장은 의미를 알아차렸지만 목청과 혀는 움직이지 않았다.”
19세기까지도 많은 사람이 조용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소리 내어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낭독은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기도문은 낭독될 때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성스러운 글을 읽는 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신의 지혜를 음미하는 행위였습니다. 낭독은 곧 명상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읽기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닌 듯 느껴졌으며, 성스러운 글일수록 더욱 그랬습니다. 문자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마치 하느님의 빛이 비치는 듯했고, 실제로 영적인 활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4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단어와 문장, 문단의 구분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단어 띄어쓰기조차 없어, 독서는 어렵고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야 했습니다. 14세기 초 주어-동사-목적어 어순이 고정되고, 필기체가 개발되면서 단어가 분리되고 구두점과 장(章), 제목, 전후 참조 같은 장치가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변화로 문맹률이 줄고, 낭독 중심의 독서 방식이 점차 묵독으로 바뀌었습니다.
16세기에는 묵독이라는 독서 혁명이 상당히 확산되었지만, 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19세기까지도 여전히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일본 전차에는 ‘음독 금지’ 포스터가 붙었고, 숙박 시설에서는 음독 소리가 주된 벽간 소음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지금도 남아, 일부 사람은 묵독 중에도 입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묵독이 확산되면서 전례 없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글을 은밀히 읽을 수 있게 되자, 중세 말에는 이교도 문헌이 유통되고 비판적인 사상이 표현되며, 적당히 꾸민 외설서도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점차 개인적이고 내밀한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성찰이 가능해지면서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집단적인 사고 통제에서 벗어난 전복과 이단, 독창성, 개성 같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심리 변화는 개성의 탄생입니다. 자의식과 경쟁심, 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 시기 자화상과 자서전, 일기가 많아진 것도 이를 반영하며,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1513) 같은 처세술이 늘어났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1500)
이 작품은 아직 ‘자화상’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에 그려진 자화상입니다. 근대 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개인의 등장이며, 그 핵심은 ‘자의식’입니다.
자화상 같은 초상화는 전설 속 인물이나 영웅이 아니라, 아직 역사적인 평가가 끝나지 않은 인물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자신이 남과 다르고 유일하다는 자의식입니다.
읽기 방식이 바뀌고 개성이 강조되면서, 사람들의 내면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보다 개인 감성이 풍부해졌습니다. 성인 남녀 모두 분위기에 쉽게 젖고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몸짓도 과장이 심해졌습니다. 신부가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최후의 심판을 설교할 때면 설교를 여러 차례 중단해야 했습니다. 설교자와 청중 모두 감정에 북받쳐, 너무나 격하게 목메어 울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찾아오는 탁발 수도회의 설교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습니다. 인기 있는 설교자는 열흘간 매일 새벽 5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야외에서 설교했습니다. 마지막 날, 설교자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더 이상 설교할 수 없다고 알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부터 어른까지 진심 어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를 땅에 묻은 듯 슬퍼했습니다. 설교자도 함께 울었습니다. 설교자가 마침내 파리를 떠나자, 다음 주 일요일 생드니에서 다시 설교할 걸 들은 파리 시민 6천 명은 토요일 저녁 생드니 들판으로 떠나 밤을 새웠습니다. 다음날 설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소는 이성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더 완전해진다는 계몽주의 믿음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이성보다 감정(sentiments)을 중시했고, 그의 사상은 훗날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여섯 권짜리 소설 『신 엘로이즈』(1761)는 화끈한 폭력이나 성적인 내용, 심지어 뚜렷한 줄거리조차 없지만, 18세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그저 인위적이고 퇴폐적인 문명을 비판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찬미하는 ‘심심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당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루소가 받은 애독자들의 편지는 온통 울음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신부님은 같은 구절을 친구들에게 열 번 넘게 읽어주며 매번 눈물을 쏟았고, “감정과 울음으로 숨이 막힌다”고 쓴 편지를 루소에게 보냈습니다. 어느 남작은 하인의 방해를 피하려 문을 잠그고 책을 읽으며 마음껏 울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건강이 너무 약해져 감정을 견디지 못해 한 번에 몇 페이지씩밖에 잃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독자들은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감정의 세계에 빠져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