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행복
부처(BC 560?~480?)는 우리 행복이 종종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다른 생명을 착취해 번영합니다. 한 나라의 발전은 다른 나라의 빈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성장은 중소기업의 몰락과 맞물려 있습니다. 과거 대지주가 소작농 위에 군림했듯, 오늘날 사업주는 노동자의 삶을 좌지우지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딛고 일어서는 법, 곧 경쟁에서 이겨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을 배웁니다.
한 사람의 번영은 대개 다른 이의 궁핍이나 배제에 의존합니다. 마르크스는 진보나 발전에 이르는 길에 수많은 이의 고통과 소외가 점철돼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적한 인간 행복의 근본 모순입니다. 국가는 부유해질수록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행은 확산됩니다. 작가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지적했듯, “행복한 사회를 위해선 다수가 가난하고 불행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또 다른 말처럼,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 국가에서 부를 창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지런히 일하는 다수 빈곤층이 존재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수의 빈곤층과 실업자를 통해 유지됩니다. 노동자의 몫을 줄이고 자본의 잉여가치를 늘려야 체제가 존속되기 때문입니다.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실업자]과 소비를 떠받칠 과잉인구 없이 자본주의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특히, 실직으로 인한 빈곤과 굶주림에 대한 공포는 노동자를 직장에서 자본에 순응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입니다. 따라서 완전 고용이 달성되면 자본은 노동 계급을 지배하고 순종을 얻어낼 수단이 사라집니다. 자본은 노동력 전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시장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노동력만 원합니다.
실업자의 존재는 자본가에게 유리합니다. 낮은 임금으로 고용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에 실업률을 낮추라고 호소하는 건 무의미한 말입니다. 자본주의가 실업자를 양산한다고 비난하는 것 또한 적절치 않습니다. 자본의 목적은 성장과 증식이지, 완전고용이나 다수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도 완전고용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실업은 노동자를 길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고자, 맨더빌 같은 사상가는 실업자에게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는 “노동자 간 경쟁에서 패배한 자는 나태와 우둔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빈곤이라는 형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 역시 실업으로 굶주리는 사람을 ‘인격에 결함’이 있는 자로 묘사했습니다. 빈곤은 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인데, 실업자는 그럴 의지가 부족하다고 본 것입니다. 데이비드 캐머런(1966~ ) 총리 시절 영국 정부는 노동 ‘기피자’를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생산적으로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복지 삭감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며, 이를 ‘노동복지’(workfare)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담론은 자본가가 자신의 번영을 정당화하고 노동 빈민층을 지배하며, 자신 지위를 합법화하려는 집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 번영하려면,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바람직한 정부는 헌법을 준수하며, 타인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민 행복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공공 정책의 목표로, ‘발전’과 결합되어 경제 정책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다뤄집니다. 그렇다면 ‘발전’이 행복과 연결된다면, 왜 이토록 많은 한국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까요? 우리나라는 사회 ‘발전’ 지수에서 128개국 중 26위입니다. 반면 자살률은 세계 1위입니다.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 빈곤의 기준 역시 함께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다음 세대가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점점 커집니다. 이에 따라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잘못한 일도 없고 생활방식도 바뀐 게 없는데, 높아진 빈곤 기준에 밀려 의도치 않게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그 자체로 정당한 가치처럼 들리기에, 정치권력은 이를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마치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포장됩니다. 정치인은 국민이 자신들의 체제 안에서 이미 행복하며, 앞으로 더 행복해질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발전’한 국가가 자살률이 가장 높은 현실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