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 10장 선거

by 북다이제스터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지금까지 알려진 민주주의는 대중이 아니라 일부 특권층만 자유롭고 평등했을 때 가장 번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제학자 케인스도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험 중이며, 부자들의 힘은 그들이 숫자 면에서 얼마나 대의(代議)하든 상관없이 항상 클 것”이라는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루소는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드는 것과, 대표를 선출해 법을 만드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지적대로 ‘대의정’과 ‘민주정’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날 대의정부는 민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간주되지만,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변질되었습니다. 본래 아테네와 에게해 도시국가들의 직접민주정을 가리키던 용어가, 1세기 무렵에는 로마의 ‘공화국’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티데스(117~181)는 심지어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단 한 사람, 이 보편 제국의 가장 훌륭한 통치자이자 지도자 아래 온 세상에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 민주주의가 한 사람의 통치가 낳은 결과로 찬미되는, 놀라운 왜곡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회에서 ‘뛰어난’ 소수가 지배하는 체제는 민주정이 아닙니다. 지배자들이 선거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그건 민주정이 아니라 귀족과두정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모든 구성원에게 발언권을 보장하고, 그들의 참여를 통해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체제입니다.


선거에 기반한 정부에서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공직에 진출할 기회가 없습니다. 관직 배분의 불균형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컨대 의회에 농부보다 법조인이 더 많은 건 시시한 문제가 아닙니다. 농부들이 그 사실에 관심이 없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법조인은 3만 5,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7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제15대부터 제21대까지 국회의원 중 법조인은 15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법조인이 인구 대비 200배 이상 과대 대표된 셈입니다. 우리 의회는 고학력자가 지나치게 많아 ‘학위 민주주의’라 할 정도입니다.


과거 일부 양심적인 정치인들은 선거에 기초한 대의 민주주의의 결함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거의 한계를 비판하는 일은 자칫 유권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의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인은 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선거로 권력을 얻는 체제에서, 그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일은, 곧 스스로 자신의 정당성을 흔드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몽테스키외, 루소는 모두 선거가 본질적으로 과두정의 제도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선거 과정에서 파생되는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선거 자체에 내재한 속성입니다. 반면 그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추첨’, 즉 제비뽑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으로 집정관을 뽑는 건 민주정이고, 선거로 뽑는 건 과두정”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철학자 몽테스키외(1689~1755) 또한 같은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추첨은 민주정체의 특성이며, 선거는 귀족정체의 특성”이라 하며, 추첨이 시민 모두에게 공직에 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았습니다. 몽테스키외는 민주정이 추첨과, 귀족정이 선거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변치 않는 법칙으로 상정했습니다. 이 법칙은 특정 문화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민주정과 귀족정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1762)에서 이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행정관 선발 방식을 설명할 때 몽테스키외의 견해를 인용해, “추첨은 민주정체의 본질”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추첨은 특정 집단의 의지 개입 없이 행정직을 배정하므로 민주주의에 적합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선거에 기반한 대의 민주주의가 귀족정이나 과두정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원들이 대중교통 요금과 같은 현실 문제를 잘 모를 때 비판하곤 합니다. 그들을 ‘귀족’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 민주주의 자체가 귀족과두정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그들이 대중교통 요금을 모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실제로 정치인의 80퍼센트 이상은 경제적으로 상위 2퍼센트에 속합니다. 정치인은 일반 유권자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다수 시민과 거리가 먼 최상위 계층의 일원입니다. 오늘날 정치권력은 국민의 대표가 아닌 자본 권력이 뽑은 대표입니다. 정치가 최상위 부자들에게 독점되어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이던 어느 국회의원은 2008년 당 대표 경선 토론에서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한 번 탈 때 70원쯤 하나요”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1,000원이었습니다. 이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은 이후에도 반복되었습니다. 2021년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인가?”라는 물음에 “보통 1,200원 정도...”라고 답해 질타를 받았습니다. 질문한 의원은 “교통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이 기본요금도 모르고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2023년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도 “며칠 전 서울 택시비가 올랐는데 얼마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에 국무총리가 “글쎄요, 한 1,000원쯤 되지 않았나요?”라 답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택시 기본요금은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오른 시기였습니다. 철학자 강유원(1962~ )은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자는 경제활동에 묶여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활동에 묶여 있지 않은 가장 완벽한 경우는 금리나 지대 생활이다. 그는 완전히 불로소득 생활자다. 이 불로소득 원천은 지대일 수 있고 유가증권이나 이와 유사한 금리 수입일 수도 있다. 국가나 정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정치에만 전념한다는 건 정치 지도층이 ‘금권 정치적’으로 충원된다는 뜻이다.”


투자와 배당금으로 생활하는 정치인은 일자리에 생계가 달린 일반 시민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의료나 안전, 교통, 위생 같은 서비스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은, 무료 공공 서비스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대다수 시민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복잡하며, 그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합니다. 부와 계급이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를 부정하는 건,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의 이해관계를 억압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오래전에 통찰했습니다. 참된 민주정체의 핵심은 시민이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두 역할을 번갈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구조에 있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민주주의란 다스리고 또한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데 있다. 내일이면 자신이 차지할 그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그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통치와 복종이 교대되는 체제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피통치자의 자리에 설 수 있기에 통치자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민주정의 핵심인, 상호 이해와 책임의 정치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권력을 가진 자에게 통치받는 자의 처지를 상상해 보라고 호소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통치자에게 그렇게 할 제도적인 방법과 동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추첨[제비뽑기]은 합리적이고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추첨은 모든 시민에게 공직 참여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해 권력의 독점과 직업 정치인의 형성을 방지합니다. 또한 통치자가 곧 피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순환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다스리고 또한 다스림을 받는 것을 번갈아 하는” 구조를 실현합니다. 이로써 통치자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공공선을 우선시할 동기를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추첨 제도가 시민 일반의 처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통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정치와 대중의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추첨은 통치자가 타인의 입장을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체험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장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첨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민주주의 설계 원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도 있습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연설가 키케로는 “제비뽑기가 숙고와 판단보다 무모함과 운이 작용하는 주사위 놀이와 같으며, 돈벌이나 미신, 과실을 조장하는 사기”라고 폄하했습니다. 그에게 제비뽑기는 이성적인 숙고가 결여된, 무책임한 방법이었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제비뽑기와 같은 요행이 지식만큼이나 옳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요행이라고 해서 자주 틀리는 건 아니며, 실제로 정답을 아는 것과 같은 빈도로 옳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세 신학자 아퀴나스 역시 『제비뽑기에 관하여』(1271)에서 제비뽑기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는 사안을 판단할 때 제비뽑기가 유용하다고 보았으며, 성경 <열왕기상>에서 사울이 제비뽑기로 왕이 된 사례를 들어 “제비뽑기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확실한 방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오늘날의 통념과 달리, 추첨[제비뽑기]은 과거 정치사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시민 의회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추첨이 쓰였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여러 이탈리아 공화국은 이를 행정관 선발에 적극 도입했습니다. 11세기와 12세기 이탈리아 코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화주의 부흥의 중심지였던 피렌체는 추첨을 핵심 원리로 삼았으며, 베네치아는 1797년 멸망할 때까지 이 제도를 유지했습니다. 피렌체 공화정 시기에도 다양한 행정관과 정무위원이 추첨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오늘날 추첨을 반대하는 논리는, 과거 농부나 노동자,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말자던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도 많은 이들은 그렇게 하면 민주주의가 끝장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 반대를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제비뽑기 같은 ‘우연’에 더 많은 여지를 허락해야 합니다. 우연에 거리를 두려는 태도는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변화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됩니다. 익숙한 것만 선호하는 습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낯선 경험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 주는 의미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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