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혹은 파벌

- 10장 선거

by 북다이제스터



정치사에서 추첨이 사용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도당(徒黨)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추첨은 행정관 선출의 공정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파당의 형성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사실 ‘정당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에선 결탁이 법으로 금지되어 민회에 붕당(朋黨, 정치사상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당파 집단)이 없었습니다. 근대 여러 나라에서도 대의 정부를 세울 당시에 정당이 없었습니다. 정당이나 ‘파당’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건국 초기에도 정당이 없었을 뿐 아니라, 정치인들은 정당에 속하는 걸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제퍼슨은 “정당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차라리 천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정치인들은 사안마다 토론을 거쳐 한쪽을 지지한 뒤, 다시 중립으로 돌아가 다음 문제를 논의하곤 했습니다. 정당은 요즘 단어고 당시에는 ‘파벌’로 불렸습니다. 조직된 정당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집권당과 야당이 있는 양당제는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정당 중심 민주정치는 매우 좁은 이념 틀 안에서 기존 정치 형태를 유지하며, 사회 기대와 동떨어진 ‘정치 계급’ 간 이익 다툼으로 전락합니다. 정치 계급은 당원이나 지지자를 대변하지 않고, 자신 이익만 좇는 소수 정치 엘리트 집단일 뿐입니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냉소를 넘어 무관심으로 변한 이유도 정당 정치에 있습니다. 정상적인 제도와 절차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정당 정치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당 정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선거 결과가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후보 개인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합니다. 유권자는 특정 정당에 지속적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선호는 세대를 넘어 이어집니다. 자녀는 부모를 따라 특정 정당에 투표하고, 특정 지역 주민들도 오랜 기간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유리한 정당 제도는 의회 정치의 기반을 흔들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는 국민이 잘 알고 신뢰하는 개인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국민과 정치인 사이의 직접적인 연계가 무너지면, 선출된 정치인은 국민의 참된 대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선거로 뽑힌 정당 정치인은 선거에서 도움을 준 정당에 얽매여, 양심과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주로 사회 계급이나 구조를 반영합니다. 정당은 산업화와 그에 따르는 계급 갈등의 산물로, 공익보다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당 정치인들은 서로 충돌하며, 각자 정견만을 공익이라 믿는 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공익을 대표해야 할 대통령이 정당 총재나 제1정당인 지위를 유지하면, 공익은 파당의 이익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자 시몬 베유(1909~43)가 지적했듯, “민주공화국을 위해서는 정당이 폐지되어야 합니다.” 정당 민주주의는 민중 정부의 형태가 아닙니다. 의회 정치에서 정책을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개별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정당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인의 독립성이 사라지고, 정당과 지도부가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권한을 독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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