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라는 상업적인 쇼

- 10장 선거

by 북다이제스터



정치철학자 클로드 르포르(1924~2010)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란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 기존의 ‘정치’(politics) 개념과 구분했습니다. ‘정치’는 현실이 전부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인식에 사로잡히면 이미 주어진 세계를 넘어서는 상상이 어려워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민주주의는 선거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방식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당화해도, 선거는 시민에게 제한된 권리만 부여합니다. 이런 한계가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의 DNA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반면 르포트가 말한 ‘정치적인 것’은, 주어진 세계를 필연이 아니라 우연한 결과로 본다는 점에서 ‘정치’와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한 현실이라 여기는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바뀔 수 있는지 주목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넘어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원리와 규칙을 새롭게 만드는 실천적인 정치이며, 우리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힘입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선출직을 대중의 희망을 담은 새로운 인물로 바꾼다고 해서 정치가 나아질까요? 투표장에 가서 표를 행사하는 일이 과연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치 행위일까요? 우리는 종종 ‘위대한’ 인물이 권력을 쥐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떠난 자리에 더 나은 사람이 들어와도, 우리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감지되는 민주주의의 피로감은 선거 중심 대의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신성시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훌륭한 인물을 뽑아 옳은 일을 하게 맡기는 체제’로 오해하면, 선거는 결국 ‘매번 실망하기 위해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이벤트’가 될 뿐입니다. “선거라는 상업적인 쇼 앞에서 냉소하지 않을 사람을 찾기란 무척 어렵다”는 말이 있듯, 누군가는 “선거는 추한 사람들을 위한 미인대회에 불과”하다고 비꼬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보다 제도가 먼저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잘 뽑는 일보다, 민주주의 제도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성취 중 하나입니다. 생활양식이자 정치 체제로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꾸릴 수 있는 토대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남용하는 정부는 물론, 뿌리 깊은 기득권층이나 부유한 기업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BC 384~322)가 말했듯,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나은 안전장치는 ‘의심’”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그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점검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미국이 발명한 체제입니다. 선거로 대표를 뽑고, 그들이 통치하는 정치 구조입니다. 그 기원을 같은 이름의 고대 그리스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선거로 축소시켰습니다. 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표면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고,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현존하는 틀에만 가두면, 부정투표 방지나 개표 절차 같은 문제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정한 본질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면, 기존 이데올로기만 강화될 뿐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그 희생자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도 만들 수 없습니다.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처럼, 형식적인 절차만을 따르는 민주주의, 숫자와 형식 논리에 갇힌 민주주의는 결국 소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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