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 11장 인본주의[휴머니즘]

by 북다이제스터



11장 인본주의[휴머니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이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의 존재이기도 하다.”

- 군나르 시르베크





현대인은 인본주의(휴머니즘)를 너무도 당연한 가치로 여깁니다. 오늘날 철학자나 사회 사상가가 인본주의를 언급할 때면,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문화에 인본주의가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상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그 사상에 깊이 젖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인은 인본주의를 의심 없이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2010)의 저자 존 그레이(1948~ )는 인본주의야말로 ‘악’(惡)이라고 단언합니다.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은 좌파든 우파든, 본질적으로 ‘진보’와 ‘인본주의’ 사상의 결합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인본주의의 다른 이름은 악의 상징, 곧 루시퍼의 속성인 ‘오만’이다. 인간은 자신 분수를 모르고 ‘경계를 넘어’ 버렸다는 의미에서 거의 ‘악’에 가까우며, 그 대표적인 오만한 사상이 인본주의다.”


1954년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박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경계를 넘어선’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호소했습니다. “지금 상황을 똑바로 보세요. 인간은 초인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초인은 초인적인 힘을 지닐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사실은, 초인이 된 우리는 비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경고는 존 그레이의 인본주의 비판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만물의 중심에 두고 자연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순간,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잊고 경계를 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인본주의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상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오만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근대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복잡한 해부 구조와 정교한 신경계, 다양한 행동 양식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분명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쉽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일어난 일이 이전보다 더 완전하다고 여기며, 진화를 곧 ‘진보’로 확신합니다. 찰스 다윈(1809~82)의 『종의 기원』(1859)이 출간되면서 이런 관점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연선택은 오직 각 개체를 위해 작동하므로, 모든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특성은 완성을 향해 ‘진보’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런 통념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진화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진화란 “무엇인가가 어디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연에서 변이가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유전적인 변이는 유리한 방향을 향해 선택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무작위적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굴드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모두 진화론을 오해한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 35억 년 전 지구에는 박테리아와 같은 단세포 생물만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쇠똥구리와 해마, 피튜니아[관상용 식물], 인간처럼 다양한 생물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화가 생명의 역사를 진전시킨 주요 추진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 수십억 년 동안 동물들은 몸집, 먹이 섭취와 방어 기술, 뇌와 복잡한 행동, 사회 조직화, 환경 적응 등 여러 면에서 발전하고 진보해 왔다.

· 생명체의 발달은 복잡화나 조직화, 전문화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다. 인류는 거대한 대뇌 피질과 놀랄 만큼 복잡한 행동 패턴을 지닌, 그 사다리의 정상에 서 있다.

· 지질학 발견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 시간대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다. 진화 방향은 인간을 향한 예정된 진보다.

· 다른 생물은 인간보다 못하다.


진화론은 생물의 복잡성이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자연선택과 유전 변이로 생명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며,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물은 각기 다른 생존 전략과 적응력을 지니며,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을 따름입니다. 인간 역시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지만, 단지 특정 환경에서 적응한 결과일 뿐, 그 자체로 ‘진보’라 할 수 없습니다. 진화는 선택의 산물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애초부터 지금의 모습을 목표로 한 건 아닙니다.


진화는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과정이며, 다양성과 복잡성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더 나은’ 혹은 ‘더 나쁜’ 특성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더 발전’하거나 ‘덜 발전’한 특성도 없으며, 어떤 생물을 ‘더 높다’거나 ‘더 낮다’고 평가할 기준도 없습니다. 진화에서 관찰되는 방향성이나 경향성은 단지 자연계에서 변이가 축소되거나 확장된 ‘부수적인’ 결과일 뿐,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결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화를 진보로 착각하는 이유는, 경향성과 원인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실재하지 않는 방향성을 상상하거나, 입증되지 않은 원인을 추론합니다.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에도 억지로 패턴을 부여하고, 그걸 원인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러한 습성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종합주가지수 방송에서도 드러납니다. 주가지수는 우연성이 지배하는 시스템이지만, 우리는 이를 무시하고 특정 패턴이나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사실 올바른 보도라면, ‘복잡한 상호작용 속 무작위 변동성으로 오늘 종합주가지수가 몇 포인트 올랐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설명을 듣기 어렵습니다. 분석가들은 주식시장의 사소한 변동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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