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장 인본주의[휴머니즘]
‘다른 생물은 인간보다 못하다‘는 믿음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사고방식입니다. 원시인들은 자신을 거대한 동물 세계의 일부로 여겼습니다.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동물이나 동물 형상의 신을 숭배하고 토템 조상을 모셨으며, 때로는 동물을 인간처럼 의식이 있는 존재로 간주해 매장하기도 했습니다. 북극 원주민 이누이트족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과 동물들이 모두 땅 위에 살고 있을 때
사람은 원한다면 동물이 될 수 있었고
동물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네.
어떤 때 그들은 사람이었고
어떤 때는 동물이었으며
그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네.
모두 같은 언어를 말했지.
뉴기니섬의 베다무니 사람들은 “우리가 동물들을 볼 때, 그저 동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류와 마찬가지라는 걸 우리는 안다”고 말합니다. 뉴칼레도니아의 카나크족도 비슷한 가치관을 지니며, 이를 동물뿐 아니라 식물 전체로 확장합니다. 그들은 인간과 식물 사이에 물질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과 식물은 같은 종류의 신체를 지녔고, 선조들은 죽은 뒤 나무로 돌아와 산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베나무니족과 카나크족은 서구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과 식물, 동물 사이의 형식적인 구별과 위계를 거부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인간을 우주 속 피조물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물론 인간을 다소 상위에 두긴 했지만, 특별히 독보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위와 땅, 식물과 동물, 인간과 신이 모두 같은 유한한 우주 안에서 함께 공존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기독교 시대가 도래하며 인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물이 열등하다는 생각이 퍼지고, 인간의 독특함과 우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지만, 여타 존재와 달리 특권이 있습니다. 예컨대 <창세기 1:29>에는 ‘하느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듯, 자연은 인간을 위한 ‘먹을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가 신을 신성시한 것만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도 함께 신성시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독특한 인간 중심주의는 이후 근대 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인간 존엄성 개념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인본주의 전통은 중세 기독교 사상으로 이어져, ‘세상은 곧 인간과 같다’는 관념을 낳았습니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세계가 인간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인간은 이성과 자유의지로 자신의 삶과 구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인간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많은 스콜라 신학자는 인간 본성을 신의 영광스러운 피조물로 찬양하며, 인간과 신이 함께 일하는 동역(同役)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전서 3:9>)는 구절은 이러한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단테(1265~1321)는 현세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며,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을 택하고 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신뢰는 중세 전성기를 지배했던 분위기를 대표합니다. 이런 면에서 단테는 인간을 무한이 신뢰한 작가로 꼽힙니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인간은 ‘신이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으며,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여깁니다. 인간은 자신만의 가치를 세계에 투영하여, 좋음과 나쁨, 질서와 무질서,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이항 대립적인 가치 체계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 판단은 사물의 본질이나 참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인본주의 관점에서 내린 해석에 불과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BC 560~478)는 이를 일찍이 비판하며, 인간이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는 오만을 꼬집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이 인간처럼 태어나고, 인간처럼 느끼며, 인간처럼 말한다고 믿는다. 그렇다. 소나 사자가 손을 갖고 사람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소는 신을 소처럼, 사자는 신을 사자처럼 그릴 것이다. 각자는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신을 묘사할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신을 검고 들창코로, 트라키아인들은 신을 붉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존재로 표현한다.”
르네상스에 들어 베이컨과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이 구축한 새로운 과학 세계관은 신의 계시에 의존하던 기존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 철학의 핵심 과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였습니다. 이를 위해 ‘실체와 속성’이나 ‘정신[영혼]과 신체’ 같은 이원론이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신]과 그것을 토대로 변하는 것[물질]으로 세계를 나누는 방식은,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데카르트는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구분하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신이 자연[육체]을 창조하고, 자연은 신의 섭리[정신]에 따라 움직인다’는 기독교 세계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인간은 신에게서 이성을 부여받았기에, 이성이 없는 기계적인 자연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지배하는 걸 정당화합니다. 데카르트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사고는 칸트에게서도 반복됩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의무가 없다. 그들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목적은 인간이다”라고 썼습니다.
결국 무언가를 착취하려면 먼저 그것을 인간보다 열등한 객체로 간주해야 합니다. 인간과 동일한 인격을 지닌 존재라면 ‘천연자원’이나 ‘원재료’로 취급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도 인간보다 열등하지 않고, 모든 존재가 고유한 권리를 지닌 세계에서는 착취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가 무르익자, 당시 새롭게 부상한 상인 계층, 곧 신흥 부르주아는 인본주의 사상을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오랫동안 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근대 이전 영주와 성직자, 기사, 농노로 이루어진 봉건제의 피라미드에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부르주아는, 새로운 시대가 오자 자신들의 사회적인 위상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유럽보다 문화·기술·과학 등 여러 면에서 앞서 있던 이슬람 세계가 그들의 소망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나 스페인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이슬람이 점령했던 이베리아 반도를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다시 되찾은 사건)를 계기로, 유럽의 신흥 부르주아는 이슬람 세계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독교 이전의 고대 그리스-로마 사상을 접하고 매료되었습니다.
신 중심의 중세 세계관과 달리, 이 사상은 인간을 세계의 주체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신이나 자연의 뜻에 휘둘리는 노리개가 아니라, 스스로 자아를 실현할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였다면 인간 오만의 극치로 여겨졌을 이 생각은 르네상스에 들어 널리 퍼졌습니다.
르네상스의 신흥 부르주아는 고대 그리스인을 무역을 통해 모험을 즐기는 자유롭고 지적인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했으며, 신흥 부르주아는 이런 인간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인간상은 바로 자신들처럼 전형적으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신흥 부르주아는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 사상을 자본주의의 토양에 이식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경제 활동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마사초 <성 삼위일체>(1427)
마사초의 그림은 서양 회화에서 원근법을 처음 적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천장과 인물을 원근법에 따라 정교하게 배치해, 평면 위에 입체감을 구현했습니다.
서구의 원근법은 단순한 회화 기법을 넘어, 세상을 자신과 분리해 바라보는 세계관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회화가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묘사했다면, 원근법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사물을 표현했습니다. 이로써 인식의 주관성이 강조되면서, 대상은 인식 주체의 시선에 따라 한정되고 해석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신과 물질, 이성과 감성,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