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문어

- 11장 인본주의[휴머니즘]

by 북다이제스터



도시의 까마귀들은 신호등이 있는 도로에 견과류를 떨어뜨려, 자동차 바퀴가 껍데기를 깨뜨릴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 다음 부리로 횡단보도 버튼을 눌러 차량을 멈추고, 깨진 견과류를 안전하게 회수합니다. 이 행동은 여러 도시에서 반복 관찰되었습니다.


게다가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누가 ‘좋은’ 인간이고 ‘나쁜’ 인간인지 구별할 만큼 똑똑합니다. 자신을 잡으려 하거나 괴롭힌 사람을 기억하고, 몇 년이 지나도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먹이를 준 ‘좋은’ 인간도 분명히 알아봅니다.


연구에 따르면 코끼리는 냄새만으로도 덮인 두 개의 양동이 중 어느 쪽에 물이 더 많은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가뭄이 들면 우물을 파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지하수의 냄새를 이용합니다. 또한 아주 멀리 떨어진 땅에 빗방울이 튀면서 나는 흙냄새를 맡아, 다가오는 비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코끼리는 낯선 냄새도 빠르게 학습합니다. 인간은 절대 느낄 수 없는 폭발물의 냄새를 잠시 익힌 뒤, 고도로 훈련된 탐지견보다 능숙하게 폭발물을 식별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앙골라로 돌아온 코끼리들이 여전히 땅속에 흩어져 있던 지뢰 수백만 개를 피해 다니는 것도, 그들의 뛰어난 후각 능력을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문어는 무척추동물이지만, 달팽이나 조개처럼 지능이 없다고 알려진 다른 연체동물과는 다릅니다. 뇌가 있으며, 매우 영리합니다. 어린아이가 열지 못하도록 설계된 약병의 뚜껑도 열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무척추동물치고 문어의 뇌는 거대합니다. 호두만 한 크기로, 아프리카 회색앵무새의 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어떤 회색앵무새는 구어체 영어 단어 수백 개를 의미 있게 사용하고, 형태와 크기, 재료 개념을 이해하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조련사를 속이고 들키면 사과할 줄도 알았습니다. 동물의 지능은 뇌 속 신경세포 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개구리는 약 1,600만 개, 쥐는 약 2억 개, 문어는 약 3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문어는 자신의 몸 어느 부위든 자유롭게 만질 수 있습니다. 아가미를 손질하기 위해 팔을 몸속 깊이 넣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이 목구멍에 손을 넣어 자신 폐를 긁을 수 있다면 그것과 비슷합니다. 문어는 자신 상처를 돌보며, 잘린 팔 끝을 주둥이로 어루만집니다. 최신 연구에서 문어의 다친 팔에 국소마취제를 주사하자 손질하던 행동을 멈췄습니다. 연구 결과는 명백했습니다. “문어는 통증을 느낍니다.” 2019년 유럽연합(EU)은 동물실험 규제 대상을 두족류, 즉 문어와 오징어, 갑오징어까지 확대했습니다. 두족류가 “통증이나 고통, 스트레스, 지속적인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문어는 암수 모두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암컷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수컷은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며, 둘 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코스테론을 분비합니다. 암컷은 산란기나 수컷을 만날 때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고, 수컷 역시 테스토스테론이 늘어납니다. 이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욕망과 공포, 사랑, 즐거움, 슬픔을 만드는 화학물질과 같습니다. 이런 생리적인 메커니즘은 다양한 생물 종에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원숭이, 새, 바다거북이, 문어, 조개에 이르기까지, 감정을 일으키는 내면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뇌 없는 가리비조차 포식자가 다가오면 작은 심장이 한층 빨라집니다.


동물들이 잠자는 방식도 매우 놀랍습니다. 돌고래와 고래는 깊은 잠에 빠질 때, 뇌 한쪽 반구만 잠들 수 있습니다. 어느 한순간엔 뇌 반쪽만 자고, 다른 반쪽은 깨어 있습니다. 한쪽이 충분히 자고 나면, 깨어 있던 반대쪽 반구가 잠드는 식으로 서로 교대합니다. 더 놀라운 건 뇌 반쪽이 잠든 동안에도 헤엄치고, 소리로 의사소통을 계속한다는 점입니다. 돌고래는 뇌 양쪽을 번갈아 ‘켜고 끄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습니다.


돌고래와 고래 같은 수생 포유류를 제외한 모든 육상 포유류와 조류는 꿈을 꿉니다. 조류 역시 뇌 반쪽씩 따로 깊은 잠을 잡니다. 이는 주변을 경계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새가 혼자 있을 땐, 뇌 반쪽과 그 반쪽이 담당하는 한쪽 눈이 깨어 주변에 위협이 없는지 계속 살핍니다. 이때 다른 쪽 눈은 감고, 그 뇌 반구는 잠듭니다.


새들이 무리 지어 잘 때는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새 무리는 나뭇가지 위에 한 줄로 앉습니다. 양쪽 끝의 두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뇌 양쪽을 모두 잠재워 깊이 잠듭니다. 반면 양 끝 두 마리는 서로 반대쪽 뇌의 반쪽만 잠재웁니다. 따라서 한쪽은 오른쪽 눈을, 다른 한쪽은 왼쪽 눈을 뜨고 주변을 감시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양 끝 ‘보초’ 새들은 몸을 180도 돌려 앉고, 이번에는 다른 쪽 뇌를 잠들게 합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야 하는 철새는 한자리에서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철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비행 중 몇 초씩 짧게 잠드는 ‘선잠’으로 수면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짧은 수면만으로도, 수면 부족으로 인한 뇌와 몸의 여러 결핍 증상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흰정수리멧새는 장거리 비행 중 잠을 거의 자지 않습니다. 미군은 이 작은 새를 연구하는 데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 군인을 만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꿀벌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뇌 무게를 줄입니다. 핀란드의 어느 학자가 발견한 사실로, 꿀벌은 겨울에 에너지를 아끼려고 뇌 크기를 줄였다가, 꽃이 피는 봄이 오면 다시 키웁니다. 양봉가들에 따르면, 이렇게 ‘뇌가 줄어들어도’ 꿀벌은 겨울 내내 꽃이 있던 방향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핀 크기만 한 작은 뇌지만, 기억력은 뛰어납니다.


인간에게 근면은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게으름은 지구상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자연스럽고 변별력 있는 행동입니다. 이솝 우화에서 부지런한 곤충으로 묘사되는 일벌과 일개미도, 과즙을 모으거나 집을 청소하는 시간은 낮 시간의 2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게으름뱅이처럼 빈둥거리며 보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개미와 벌 같은 군집 곤충은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 정해진 양의 에너지만 지니며, 일회용 건전지처럼 이를 빨리 쓰거나 천천히 쓸 수 있지만,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한다고 해서 재충전할 수 없습니다. 결국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빨리 죽게 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벌들이 꿀을 모으지 않고 휴식을 취하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존에 충분한 자원을 모아도 더 욕심을 부립니다. 인간의 물욕은 대체로 문화적인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동물은 하루 서너 시간만 사냥하거나 채집하며, 대체로 그날그날 필요한 자원을 소비합니다. 인간 역시 선천적으로 빈둥거리고 싶어 하지만, 사회가 이를 억제합니다. 그래서 게으름을 탐식이나 정욕과 함께 일곱 가지 죄악(seven deadly sins) 중 하나로 규정해 인간 욕구를 통제하려 합니다.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진화론은 인간을 종교의 속박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더 이상 신이 인간을 특별히 존엄한 존재로 창조했다고 믿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진화는 진보’라는 잘못된 생각에 매여, 인본주의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이 진보된 존재가 아닌 우연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인간 존엄성’ 개념과도 결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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