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자란 곳이 어디인데요?

- 13장 진보나 발전

by 북다이제스터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일부 ‘진보된’ 지역조차,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몸을 유지하고 가족과 함께 살며, 지붕 있는 집과 적당히 걸칠 옷을 마련할 정도로만 벌기를 원했습니다. 그 시절엔 역사가 진보한다는 주장은 ‘발전된’ 나라에서조차 그다지 동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낙후된 지역에서는 진보가 더더욱 환영받지 못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진보란 침략이나 착취, 억압을 의미했고, 기껏해야 고향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물건이나 관습은 대부분 도시나 외국에서 들여왔기에, 개선보다는 전통을 해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새로운 것이 삶을 나아지게 한다는 증거도 없었습니다. 세계는 진보하지 않았고, 사람들 역시 진보를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옛 지혜와 전통적인 방식을 최선으로 여겼습니다. 당시 진보란 고작해야 젊은이가 늙은이를 가르칠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에 불과했습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미래에 희망을 거는 어떤 믿음도 거부했습니다. 그는 절대적인 진보라는 관념, 즉 역사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계획이나 목적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니체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념은 경험적인 사실들에 비추어 보아도 오류”라며, “인류의 최종 목표는 인류 최고의 바람직한 모습에 있을 뿐,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 역시 인류 진보를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역사가 방향도 목적도 법칙도 없이 전개되며, 인류라는 종(種)이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지닐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과학 지식의 발전도 이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진보를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과학기술을 믿는 실증주의자는 윤리와 정치를 과학과 동일시하고,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미래의 진보로 이어져 사회 발전은 누적된다고 믿는다. 즉 악을 하나 제거하면 다음 악을 제거할 수 있고, 이 과정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누적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인류의 집단적인 야수성을 보았고, 지금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심한 폭력이나 잔혹함이 벌어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류가 도덕적으로 나아질지 의문입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우리의 문화와 문명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얇은 표피층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문명 수준이 높아졌다고 믿지만, 윤리 면에서 원시인보다 낫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가 전하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어느 영국인이 사모아 원주민에게 런던 빈민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 ‘야만인’은 놀라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죠? 음식이 없다고요? 친구도 없어요? 살 집도 없다고요? 그가 자란 곳이 어디죠? 그의 친구들도 집이 없나요?”


‘야만인’에게는 마을 어딘가에 옥수수가 자라는 한, 굶주리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원시인’ 호텐토트족(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인근 종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 더 가지면, 모두가 같아질 때까지 잉여분을 나눴습니다. 배고픈 자를 돌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느니, 차라리 스스로 굶는 쪽을 택했습니다. 공동체는 곧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전부가 궁핍하지 않는 이상, 개인만 굶주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원리는 16세기 초 이후 유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통용되었습니다.


원시 사회에도 흉년이 들면 식량이 부족했지만, 공동체가 멀쩡한데 일부만 생필품이 없는 일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굶주림의 공포’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 자체가 19세기 초에야 등장한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인간을 노동하게 만드는 동기가 ‘경제적인’ 이유 하나뿐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동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 명예와 자존심, 시민으로서 책무, 도덕적인 의무, 심지어 자존심과 체면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일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이론 속에서 가정한 ‘이기적인 인간’을 인간 본성으로 여깁니다. 지금의 인간관은 사실상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일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지는 경제학의 가정이 아니라 도덕과 철학의 토론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뤼네발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1515)



그뤼네발트는 자신이 살던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던 비율과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인물 크기를 과감히 변형해 그렸습니다.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중세와 원시 예술의 원리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그의 작업은 예술의 위대함이 반드시 ‘진보’나 새로운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새로운 규칙이나 기법이 아니라, 예술적인 표현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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