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선

- 14장 자유

by 북다이제스터



중동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 역시 자유주의 국가가 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의 사회는 공동체주의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창시자의 탄생일이나 깨달음을 얻은 날을 종교 기원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날을 기원으로 삼습니다. 그날은 ‘움마’, 곧 공동체가 탄생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개인의 구원보다 정의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더 중시합니다. 개인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이슬람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하늘나라에서 자리를 얻습니다.


이러한 가치관 때문에 이슬람 세계의 산업화가 늦어졌습니다. 산업화에는 개인주의가 필요합니다. 개인이 자기 이익을 기반으로 핵가족을 책임지고 독자적으로 경제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는 언제나 공동체가 개인보다 우선합니다. 이슬람에서 인간다운 삶은 사회 환경의 뒷받침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조건이 충족된 상태가 아니라, 공동체의 좋음[common good]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삶입니다.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인 측면뿐 아니라 인간 영혼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함께 발전해야 비로소 진정한 삶이 가능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관계가 필수입니다. 윤리적인 기준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엇을 ‘좋음’으로 여기는가에 대한 공감과 합의 속에서 형성됩니다.


일찍이 플라톤도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아테네 말기의 타락을 목격하며, ‘잘 산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주어진 자유(freedom)는 곧 방종으로 흐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확산된 개인주의는 시민사회의 전통을 위협했습니다. 이러한 방종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공동체 생활을 소홀히 하고, 사적인 이익과 안락만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공동체 전체가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활동이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이기심은 억제되어야 했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에 종속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플라톤이 『국가』(BC 380?)에서 제시한 이상 사회였습니다.


현재 이슬람 국가들의 체제는 플라톤이나 루소가 꿈꾼 공동체주의 이상을 이슬람식으로 구현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도 개인의 이해관계에 민감하지만, 특정 이익을 위해 사회 전체가 희생된다면 그 손실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현대 자유주의 국가들은 자유(freedom)를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으로 간주하며, 어디서든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인간과 역사를 무시하는 자유주의자 특유의 독선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를 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정치란 정치인이나 정당의 공약을 선거로 지지하는 일로 좁게 이해합니다. 그 결과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토의하지 않습니다. 내게 이익이면 좋은 정치, 손해가 되면 나쁜 정치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은 어느 한쪽의 이해에 기울지 않고, ‘공동체의 선이 무엇인가’를 열린 마음으로 함께 논의하는 데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장에서 설득과 토론을 통해 공동체의 ‘선’을 함께 모색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정치입니다.


프랑스혁명을 비판한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9)는 혁명 이후 나타난 도덕 위기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그 원인을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치며 확산된 개인주의에서 찾았습니다. 콩트는 이를 ‘서구 세계의 질병’이라 불렀습니다. 이 ‘질병’의 주요 증상은 인본주의나 개인의 자유(freedom) 같은 이념이 공동체 가치를 약화시키는 태도였습니다. 자유는 소중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자유를 사랑하는’ 사회에서조차, 자유에는 반드시 제약이 따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홉스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 전통 속에서 개인주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 전통에서 개인은 사회철학의 출발점이자 기본 단위입니다. 하지만 콩트에 따르면, 사회는 개별적인 개인으로 분해될 수 없습니다. 사회는 오직 집단과 공동체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핵심 문제, 즉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그의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도덕이나 정치, 나아가 우리의 사고방식 전반에 깊은 스며 있습니다. 칸트를 이해한다는 건, 곧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핵심 사고방식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일입니다.


칸트가 말한 자유는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수많은 요소와 힘이 나를 구속하고,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내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믿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는 자유가 실재한다고 직관적으로 믿고, 이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직관이 확실한지 반드시 다시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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