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문제

- 15장 통제

by 북다이제스터


15장 통제




“신을 웃기고 싶은가?

그럼 신에게 당신 계획을 말해보라.”

- 우디 앨런





소설가 포스터(1879~1970)는 『소설의 이해』(1927)에서 플롯(plot)을 “사건이 전개되거나 반전될 때, 사건 간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연관 관계”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단순히 정보만 나열된 문장과 플롯이 반영된 문장을 대비해 예를 들었습니다.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는 사실만 나열한 문장입니다. 반면 ‘왕이 죽었다. 그러자 왕비가 슬픔에 빠져 죽었다’는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플롯이 반영된 문장입니다.


플롯 문장은 사건 간의 필연적인 연관을 드러내기 위해 ‘그러자’, ‘슬픔에 빠져’ 같은 표현이 추가되면서 내용의 의미 범위가 좁아집니다. 왕비가 죽은 이유가 설명되어, 첫 번째 문장보다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배제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단순히 정보만 나열된 첫 번째 문장을 접하더라도, 종종 다른 가능성이 배제된 두 번째 문장처럼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정보가 플롯으로 통합되어 입체적인 이야기가 되면, 기억하기도 전달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플롯은 내용을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특징이 있어야 기억에 남습니다. 반면 개연성 없는 무질서한 우연은 머릿속에 잘 남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플롯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접한 사람은 ‘왕비가 정말 슬픔 때문에 죽었을까?’ 같은 다른 가능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플롯은 마치 진실인 양 우리 신념과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보가 플롯 형태로 전달되면 우리는 다른 관점이나, 다른 가능성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합니다. 어떤 설명이 더 생생하고 구체적일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개연성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플롯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개연성과 신빙성을 부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자나 변호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야기가 상세할수록 우리는 비판 없이 더 쉽게 믿게 됩니다. 법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까지 상세히 진술할수록 증언은 더 신뢰할 만해 보입니다. 신문 기사 역시 살인사건의 경과뿐 아니라, 희생자가 입은 양복의 색깔까지 상세히 보도합니다. 이런 세부 묘사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입니다.


통계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1960~ )는 플롯으로 구성된 이야기의 힘과 동시에 그 허구성을 경고했습니다. 사건을 플롯으로 구성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변수와 우연을 배제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플롯은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복잡성이나 불확실성을 놓치게 만듭니다.


“인간은 내용의 범위가 좁혀진 이야기를 선호하고, 그 이야기에 취해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이야기는 추상적인 관념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야기는 기억하기 쉽고, 읽는 재미도 있다. 관념은 스쳐 지나가지만,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이야기 짓기로 세상을 단순화하면, 우연보다 필연이 지배하는 듯 보이게 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역시 “인간이 사실(fact)이나 숫자, 방정식보다 이야기 안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추상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구체적인 서사를 통해 이해하기에, 플롯을 본능적으로 선호합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1934~ )은 우리가 사건을 필연적인 연관 관계로 묶어 보려는 습성을 검증하기 위해 ‘린다 문제’라는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린다라는 가상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린다는 31세고 독신 여성입니다. 머리가 좋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합니다. 철학을 전공했고, 사회정의와 인종차별 문제에 깊이 관여했으며,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런 다음 카너먼은 참가자들에게 린다가 (1) ‘페미니스트’일 확률이나 (2) ‘은행원’일 확률, (3)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일 확률을 각각 예측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실험 결과, 응답자의 85퍼센트는 린다의 특징을 (1) ‘페미니스트’ > (3)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 > (2) ‘은행원’일 확률 순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판단입니다. 어떤 조건이 하나 더 붙은 사건의 확률은, 그 조건이 없는 사건보다 클 수 없습니다. ‘은행원이면서 페미니스트’는 ‘은행원’의 부분집합일 뿐입니다.


카너먼은 ‘린다 문제’와 유사한 또 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내년에 일어날 두 가지 재난의 가능성을 예측해 보도록 요청했습니다. 첫째, (1) ‘북미 어딘가에서 큰 홍수가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익사한다.’ 둘째, (2) ‘지진이 빈번한 캘리포니아에서 지진이 일어나 큰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익사한다.’ 실험 결과, 이번에도 대부분 참가자는 (2)가 (1)보다 더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원인이 구체적일수록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린다 문제’와 마찬가지로, (1)은 (2)를 포함하는 더 넓은 사건이므로 실제 가능성은 (1)이 더 큽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실에 이유나 원인이 덧붙여지는 순간, 그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합니다. 플롯 짓기 오류는 날것의 사실보다 맥락이 부여된 이야기를 선호하는 인간의 성향에서 비롯됩니다. 이 오류는 단순한 사실에도 억지로 이유를 끼워 맞추려는 인간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유는 이해를 돕지만, 판단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카너먼의 실험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편견에 빠지고,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내년에 회사 매출이 늘 것이다’라는 단순한 예측보다, ‘경제가 호전되어 내년 회사 매출이 늘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예측이 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낮습니다. 세부 사항이 많아질수록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오히려 낮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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