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장 통제
인간은 플롯 짓기로 문제를 인과관계로 축소시켜, 마치 세상이 우연에 지배받지 않는 것처럼 만듭니다. 이는 사실에 질서를 부여해 환경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1970~ )은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 대부분은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통제 욕구가 커질수록 우리는 실제보다 더 많이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기분을 좋게 하고, 주변 환경을 명확히 파악하며 그 안에서 안전하다는 환상을 줍니다. 나아가 스스로가 의식 있고 지적이며 강한 존재라는 자기 확신도 제공합니다.
우리는 믿음조차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스칼도 신의 존재 여부를 합리적으로 따져 믿음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신이 없다면, 믿든 말든 손해도 이득도 없습니다. 반면 신이 있다면 믿을 때는 구원을, 믿지 않을 때는 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파스칼은 신을 믿는 쪽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보상을 노린 믿음은 진정한 신앙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은 그런 믿음에 지옥 형벌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또한 파스칼은 수많은 종교가 있고, 어떤 신은 다른 신을 믿는 자를 벌한다는 사실도 간과했습니다. 그는 유일신을 전제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신을 믿는 건 그 존재를 느끼고, 가슴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종교를 비교한 뒤 가장 합리적인 결론으로 신앙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믿음이 형성되고, 그 이후에야 믿음의 이유가 또렷해집니다. 믿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미 믿고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160~220)가 말했듯,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습니다”는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신앙의 믿음과 사유의 진리는 애초에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까요?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1954~ )는 그것이 자아상과 자존심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은 안정감과 자신감을 줍니다.
“사람들은 스카치위스키 반 병을 마시고도 자동차를 운전하려 들지만, 남이 조종하는 비행기는 조금만 흔들려도 공포에 질린다.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자아와 자존심에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통제력을 잃으면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실험용 쥐에게 통제권을 완전히 빼앗으면 곧 발버둥을 포기하고 죽는다. 병원 환자에게 검사 순서를 정할 사소한 권한만 주어도 불안은 줄어든다.”
업무 스트레스 역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매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CEO보다, 지시만 따르며 착실히 전화 응대를 하는 비서가 더 큰 스트레스로 사망할 위험이 더 높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스트레스는 과중한 책임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제할 결정권이 없을 때 발생합니다. 실제로 의사 결정권이 적은 사람의 사망률은 권한 있는 사람보다 높습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건 막중한 책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지시만 받고, 언제 어떻게 일을 끝낼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위험합니다. 업무 부담이 크지 않더라도 통제권이 없으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심장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동물 실험에서도 서열이 낮은 원숭이가 높은 원숭이보다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자신이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느끼는 가장 극단적인 경험은,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陶片追放)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거부되거나 소외될 때입니다. 영어 ‘ostracize’(추방하다)는 그리스어 ‘ostracon’(도편추방)에서 유래했습니다. 도편추방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나 문제 인물을 투표로 쫓아내던 제도였습니다. 매년 시민들은 깨진 도자기 조각[도편 ostraca]에 원치 않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는 10년간 아테네를 떠나야 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추방되거나 무시당한 사람은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갑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상 무시, 즉 사이버 도편추방이 직접 만나 무시당하는 일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나지만, 정서적인 상처는 비슷합니다. 우리는 ‘좋아요’ 같은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환경에서, 가상의 ‘친구’ 수천 명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무시당하는 기분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반응을 기다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이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 도편추방을 경험한 사람은 소속감이나 자기 통제감,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