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라망(因陀羅網)

- 14장 자유

by 북다이제스터




보통 이광수(1892~1950)의 근대소설 『무정』(1917) 이전에 발표된 소설을 ‘신소설’이라 부릅니다. 대표작으로 이인직(1862~1916)의 『혈의 누』(1906), 이해조(1869~1927)의 『자유종』(1910) 등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기존의 구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당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신소설은 오늘날 읽기에 낯설 만큼 사건 전개가 자의적이고, 우연에 크게 의존합니다.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등장인물의 삶은 ‘우여곡절’이나 ‘기구한 운명’이라는 표현 이외에는 다른 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플롯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신소설은 흔히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낮은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을 단순히 근대 이전 문학의 미성숙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소설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이광수의 근대소설에는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으며, 더 이전의 구소설에서도 플롯의 문제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인직과 이해조가 소설가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대중은 왜 그들의 작품에 열광했을까요?


신소설은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개인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다투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합니다. 모두가 욕망을 좇아 서로 경쟁하고, 사회는 아귀다툼의 장으로 그려집니다. 소설 속 조선 말기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사회적인 유대가 존재하지 않고, 개인들은 흩어진 채 생존과 욕망 충족에만 몰두합니다. 당대 독자들은 자신이 겪는 고독과 불안을 신소설 속 인물들에게 발견하고, 그 낯선 자유주의 사회의 초상에 깊이 공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동구권 사회에서 나타난 공동체 붕괴 현상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어느 프랑스 가톨릭 신부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에서, 경건하고 건강한 삶의 마지막 모델이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기록했습니다.


“동구권 노동자들의 집에서 흔히 보이던 발자크와 도스코옙스키, 체호프의 소설과 보들레르와 투르게네프, 마야콥스키의 시집을 포함한 백 권 남짓한 책이 잘 정리되어 꽂힌 서가는 이젠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달력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성인(聖人)의 초상화나 쿠르베와 르누아르 그림을 집주인이 손수 만든 액자에 끼워 식탁 옆 아름다운 벽에 걸어둔 모습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일상 대화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던 끝까지 집중해 듣고, 사소한 화제에도 진지하게 응답하던 사람들 역시 이제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될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연극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예견은 정확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급격히 전환한 러시아인들은 자유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 자유는 기대했던 것과 크게 달랐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48~ )는 『세컨드핸드 타임』(2013)에서,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인들이 자유를 어떻게 체험하고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어느 노파의 목소리를 통해 전합니다.


“소련 시절,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월급 120루블(1,700원 정도)로 충분히 살 수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진짜 돈이 찾아온 거예요. 이제 여행도 하고, 파리에 가고, 스페인의 축제와 투우도 볼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엔 헤밍웨이 책 속에서만 보던 것들이었죠. 그땐 그런 걸 직접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책은 인생을 대신하는 것이었죠.

어쨌든 밤새 수다를 떨던 시절은 끝나고, 우리는 월급과 일당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어요. 돈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 되었죠. 사람들은 서재의 책들을 내다 팔았어요. 책에 실망했거든요. 이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어?’라는 질문은 실례가 되었죠. 러시아 소설은 성공하는 법이나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아요.

사회주의 시절에는 함께 나누고, 약자를 불쌍히 여기며, 고통을 함께 견디는 삶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제게 말했죠. ‘차도 못 샀잖아!’ 하지만 모두가 차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누구도 베르사체 양복을 입지 않았고, 마이애미에 별장도 없었어요. 당시 지도자들조차 중소기업 사장 수준으로 살았지, 지금 러시아 신흥재벌처럼 살지 않았어요!

텔레비전에서는 연신 ‘구리 욕조를 사세요’라고 광고하는데, 그 욕조 하나 값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요. 그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런 게 자유인가요? 평범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無) 존재라고요, 삶의 바닥에 있는...

러시아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대체 뭔가요? 소비가 우상시되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제 뭔가 숭고한 걸 생각하며 잠드는 대신, 오늘 사지 못한 물건을 떠올려요. 삶은 돈으로 쌓은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고 말들을 하지요. 아무튼 제 손주들이 불쌍해요. 가여워요. 매일 텔레비전으로 이런 걸 세뇌당하고 있으니까요. 전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사회주의 시절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떠들어대는 걸 듣는 것도 이젠 지쳤어요. 물론 화려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인 삶이었어요. 사랑과 우정이 있고, 원피스와 구두도 있었어요. 그땐 작가와 배우들의 목소리를 갈급한 마음으로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죠.”


오늘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자유의 핵심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소수의 탐욕스러운 사업가들이 막대한 부를 독점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 그 자체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과, 그것이 초래한 사회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한 경제 체제의 변화가 아닙니다. 권력이 정부에서 자본을 소유한 기업가 계급으로 이동하는 정치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결국 경제 문제는 곧 정치 문제입니다. 오늘날 러시아 사회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련 붕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는 분명 소중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불평등이나 빈곤, 냉소를 낳는다면, 단지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겼다는 승리의 수사로 자유주의의 허물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배우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공산화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마을 재산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서로 돕고, 수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가 삶의 토대였기 때문입니다. 상업과 사유재산을 경시하며, 혼자만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임무에서 벗어나거나, 자기 뜻을 펼치려 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사람은 공동체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모두가 토지를 공유하고 함께 농사를 지었습니다. 세금도 마을 단위로 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어 가난한 집이 조금 덜 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미르’(mir)라 불린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 생활을 고려하면, 소련 붕괴 이후 서방에서 유입된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낯설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습니다.


러시아어 ‘소보르노스쯔’(sobornost)는 이러한 유대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입니다. 흔히 ‘공동체 정신’이나 ‘연대 의식’으로 번역되지만, 이는 단순한 협동심을 넘어 개인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 방식을 뜻합니다. 소보르노스쯔는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과 민족 성향에 뿌리를 둔 개념으로, 문학과 예술, 사상 전반에 깊이 스며 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인에게 정체성과 자긍심의 원천이자, 삶을 지탱하는 도덕적·종교적인 토대였습니다.


루소 역시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공동체 정신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공공 모두의 노력으로 실현됩니다. 우리 각자는 미약하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울 힘이 있습니다.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1897~1980)와 피터 모린(1877~1949)은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눔을 통한 사회 연대를 제안했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 가난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제 어머니는 ‘모두가 조금씩만 덜 가지면 한 사람 몫이 나온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우리 식탁에는 항상 한 사람 몫의 자리가 더 있습니다. 모두가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해 나서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어려움에 처한 이는 아직 완전히 어려운 게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들이 서로 친밀하게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달리 자원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음식이나 의복, 의료 서비스 같은 기본 자원은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충분합니다. 훗날 우리 후손들은 분명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억만장자 2천 명의 재산이면 전 세계 극빈층의 가난을 한 번도 아닌 일곱 번이나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대체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누군가 극심한 곤경에 빠진다면, 그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며, 그 구성원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라캉이 지적했듯,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나는 오직 ‘우리’ 안에서만 ‘나’가 됩니다. 인간의 진정한 완성은 자기실현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만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자기실현이란 결국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그 관계를 통해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라캉의 지적은 『화엄경』의 ‘인다라망’(因陀羅網) 사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엮인 그물이 걸려 있는데, 그물의 모든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있어 하나가 소리를 내면 그 울림이 그물 전체에 연달아 퍼져 나간다.” 구슬 하나의 움직임이 전체의 울림이 되는 이 비유는, 화엄종의 핵심 사상인 ‘일즉일체다득일(一卽一切多卽一), 즉 개별자는 곧 전체이며 전체는 곧 개별자라는 관념을 보여줍니다. 이 단순하고도 자명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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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1962)



이 작품은 가난 속에서도 서로 기대며 살아가던 공동체의 마지막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두 여인은 말없이 나란히 서 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보는 연대가 흐릅니다.


인물들은 작고 소박하지만, 서로를 묵묵히 지지합니다. 작가는 그들을 따뜻하고 두툼하며, 돌처럼 단단하게 연속된 질감으로 그렸습니다. 서로 다른 개인이지만,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디는 이들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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