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 후 마주한 현실의 무게
퇴사 후 마주한 현실의 무게
나는 회사를 떠나며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침 알람에 쫓기지 않고,
회의에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 글을 쓰며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퇴사 후의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의 얼굴을 드러냈다.
시간은 분명 나의 것이 되었지만,
통장은 점점 텅 비어갔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보내는 하루가 충만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충만함을 지탱할 생활의 기반은 불안정했다.
걱정 대출은 하지 말라는 조언
주변에서는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걱정 대출은 하지 마라. "
"걱정대출이란 건 한 번 시작하면 삶이 빚에 끌려다니게 된다.”
맞는 말이었다.
걱정대출은 분명 정신적으로 부담이된다.
앞날의 수익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일 겅정만 당겨 쓰는 일은,
마치 아직 쓰지도 않은 원고료를 받아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 막상 원고가 채택되지 않으면,
그 공백은 고스란히 걱정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걱정 대출은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고.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말 필요 없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서는 의문이 생겼다.
정말 걱정 대출이 불필요한 걸까.
아무리 글을 쓰고 책을 읽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집세는 내야 하며,
병원에 갈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현실적인 자금이 바닥나면,
나는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면 생계를 위해 급히 다른 일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글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지 않을까.
걱정 대출을 완전히 배제하는 태도는
혹시 지나치게 이상적인 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지켜내기 위한
어떤 ‘보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는다.
자유와 불안 사이의 균형
퇴사 후의 삶은 결국 자유와 불안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자유를 누리려면 불안을 감당해야 했고,
불안을 줄이려 하면 자유가 줄어들었다.
걱정대출 역시 같은 맥락에 있었다.
걱정대출이 주는 불안은,
나로 하여금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체직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걱정이 주는 압박감은,
내 글쓰기마저 시장 논리에 종속시킬 위험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한 채,
매일 통장을 들여다보며 글자를 적어나간다.
어쩌면 이 모순된 상황 자체가
퇴사 후 글쓰기를 선택한 이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걱정 대출은 하지 말라는 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동시에 ‘정말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핵심은 결국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다.
나의 글쓰기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나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만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다시 글 앞에 앉아 마음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용기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혹시 당신도 자유와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균형점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