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마음이 적히는 순간

- 손글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by 북돌이

짧은 메모를 적을 때면

종이 위를 스치는 사각사각한 소리가

은근히 마음을 가라앉혀 줄 때가 있어요.

현진의 책을 펼쳤을 때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했죠.


키보드로 빠르게 글자를 쏟아내던 손끝이

오랜만에 속도를 늦추고

한 획 한 획 머무르는 자리마다

생각의 온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글씨를 예쁘게 쓰는 기술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먼저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죠.


책 속에 담긴 연습 페이지와 어린 시절의 일기,

그리고 지금의 다이어리까지.

변해온 글씨만큼이나

변해온 마음을 따라가 보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글씨에도 분위기가 있다는 말이

왜 이렇게 오래 머물렀는지

종종 손을 멈추고 생각했답니다.


네모 상자를 그려 글자를 맞추고

높이를 지켜 쓰는 단정함 속에서도

나만의 삐침과 여백이 자연스레 자리 잡는 걸 보며

처음으로 ‘내 글씨가 조금은 좋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기기도 했어요.


단자음에서 쌍자음으로,

짧은 단어에서 긴 문장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감정도, 내일의 다짐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글씨가 그냥 글씨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표정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해 가는 중입니다.


사물 이모티콘을 따라 그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손글씨를 배우는 일은

예쁜 글씨를 갖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머무는 방식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는 걸요.

정리되지 않은 하루도

작게 적어 두면

이상하게 덜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죠.


요즘은 하루의 끝에

짧은 문장을 한 줄 적어 보곤 해요.

그 문장이 나를 꾸짖을 때도 있고

사소한 기쁨을 다시 불러올 때도 있어요.

손글씨는 내가 잊고 있던 감정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 주는 것 같아요.


오늘 당신의 글씨는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나요?

혹시, 그 글씨를 따라가다 보면

당신의 마음도 조금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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