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처럼 흩어지던 마음이 한 장의 세계로 모일 때

- 근미래의 외로움이 말해 준 것들

by 북돌이

책을 덮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 작은 진동이 울렸다.

초능력이 축복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버린 시대라니.

그 안에서 흔들리던 인물들의 마음이

어쩐지 내 안에서도 오래전부터 곤두서 있던 감정들을 건드렸다.


능력이라는 화려한 껍질 아래 숨어 있던 건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능력이 커질수록 외로움도 더 커지는 역설,

그 모순을 이열 작가는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들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


14편의 단편이 하나의 세계로 모인다는 말이

처음엔 조금 과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읽을수록 퍼즐 조각이 맞물리듯

살짝 삐뚤어진 결이 어느 순간 정확한 자리에 닿는 순간들이 있었다.


재이가 처음엔 집착의 인물처럼 보였는데

후반부엔 가장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았던 순간.

불을 제어하지 못하던 겐지가

누군가의 상처를 끌어안을 줄 아는 청년이 되어 돌아왔던 순간.

그 모든 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고 있었다.


이 연작이 특별한 이유는,

독자가 ‘읽는 사람’에서 ‘조립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경험을 준다는 것.

한 편의 선택이 다른 편의 균열이 되고,

작은 장면들이 다음 이야기의 그림자를 만든다.

이런 연결성은 마치 한 세계를 함께 구축해 나가는 기분이었다.



-능력이 아닌 마음이 더 아픈 세계


책 속에 등장하는 능력들은 사실 모두 ‘불편한 선물’처럼 보였다.

30초 되돌아갈 수 있는 남자,

죽은 연인을 AI로 불러내 살아가는 남자,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소녀.


그 어떤 능력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뼈아픈 진실이었다.


오히려 능력은 그들의 상실을 더 선명하게 비추고,

관계의 경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초능력’이 아닌 ‘감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상실 앞에서 흔들리던 마음,

사랑 앞에서 비겁해지던 마음,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돌아서지 못하던 마음.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건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인간의 결이었다.

이건 SF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였다.



-세계의 끝에서 비로소 닿는 연대


마지막 에피소드 공전의 궤적을 읽을 때

나는 처음 단편 침묵하는 사랑을 떠올렸다.

서사와 구조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세계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미래를 두려워하는 자와 받아들이려는 자,

세상에 상처 받은 자와 세상을 믿고 싶은 자.


이 파편들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

비로소 공동체라는 단어가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건 ‘크고 영웅적인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들이 이어져 만든 결이었다.

책은 그 결을 따라가며,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조용히 묻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내 마음 한 조각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조금 더 사람을 믿게 된 것 같다.


상처가 능력을 만들고,

능력이 또 다른 상처를 남겨도,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마음을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붙잡은 사람은

어떤 미래에서도 완전히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믿음.


픽셀처럼 흩어지던 감정이

한 장의 세계로 모여드는 듯한 독서였다.


당신은 어떨까.

이런 근미래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마음을 흔든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혹시 나에게도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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