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이 만든 균열 1/3

- 결혼 전후, 완벽한 관계의 붕괴

by 북돌이

[도서 줄거리 요약]

뉴욕에서 살아가는 민경은

완벽해 보이는 한과의 결혼을

앞두고도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떨치지 못한다.


한은 민경의 부모님 한국 집이

경매로 넘어갈까 두려워하던 때를

기억하며 그 집을 자신이

먼저 사두었다고 고백한다.


브로드웨이 레스토랑에서

월가 동료들은 한국의 부채와

정치 스캔들을 빌미로 한을

교묘하게 떠보며 조롱한다.


한은 발작과 기도 속에서

자신이 떠난 적 없다고 말하며

준이라는 이름을 되뇌고,

그 이름은 민경에게도 낯설다.


식탁 위 봉투는 가볍고,

민경의 목은 무겁게 잠긴다.

와인을 삼키는 소리마저

어딘가에 걸려 버린 듯하다.


넌 안 먹어,라는 말과

괜찮아,라는 대답 사이에서

민경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린다.


불편한 미소는 늘 그렇듯

기분을 좋게 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표정이다.


봉투 안의 서류는 더 조용하다.

익숙한 주소와 이름이

한글로 눌러 적혀 있고,

소유자는 앤드루 박 주니어.


부모님 집인데, 왜 네 이름이야.

민경의 질문은 얇은 종이처럼

쉽게 접히지 않으려 하다가

끝내 손끝에서 구겨진다.


내가 샀어,라는 한마디가

바깥의 뉴욕을 잠깐 멈추게 한다.

민경은 놀랐지만,

환하게 웃지는 못한다.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아도

그 말의 무게는 결국

민경의 안쪽으로 떨어진다.


한은 손을 잡고 말한다.

내가 가지겠다는 게 아니야.

결혼식만 끝나면

아버님께 돌려드릴게.


이 말이 다정함인지,

상환인지, 계약인지

민경은 아직 분간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늦게 깜빡인다.



그들의 침실은 단정하고,

천장은 까맣게 닫혀 있다.

필연적으로 행복할 거라

스스로 주문을 걸지만,


미소는 오지 않고,

불안만 촉감으로 남는다.

민경은 한의 등 중앙

흉터를 어루만지며 멈칫한다.


한은 천장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기도 같기도 하고,

변명 같기도 한 소리.


그 얼굴의 창백함이

고향 호수 위로 떠오른

시체의 인상과 닮았다고

민경은 생각해 버린다.


사랑은 시작되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데를 본다.

가까움이 깊어질수록

멀어지는 것이 있다.


ㅗㅅㄱㄷㅇ놋곣ㄷ녻ㄴㄷㅇ

브로드웨이 196번가 레스토랑,

사람들은 배부르게 웃고

술을 비우고,

다음 날 교회로 갈 준비를 한다.


순결 반지는 서랍에 묻히고

식욕과 물욕과 색욕이

식탁 위에서 서로를 밀친다.

지옥 같은 장면이 기도문으로 덮인다.


그 한가운데, 한은 곧다.

칼질은 정확하고,

씹는 소리도 없다.

누군가는 그를 완벽이라 부른다.


그러나 완벽은 늘

타인의 믿음으로만 유지된다.

동료들은 그 믿음을

포크 끝에 끼워 흔든다.


자네는 자네 나라의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네.

핏물이 떨어지는 포크가

한을 겨누는 광경은,


축하처럼 보이지만

사냥의 예고처럼도 보인다.

그는 감사하다고 웃고,

웃음은 어딘가 비어 있다.


한국 기업 부채를 왜 찾았나,

부도난 주식을 왜 쓸어 담았나.

신의 전사들은 뭐 하는 곳인가.

질문들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은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이

레스토랑의 소음과 섞이지 않고

따로 떠 있는 듯하다.


그때 그가 말한다.

애초에 전 제 나라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문장은 짧은데

테이블 위 공기는 길게 눌린다.

데이브는 의자를

조금 옆으로 옮긴다.


완벽한 직원의 데이터 뒤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발작 같은 문장.

그는 불편함을

피부색만큼 거슬려한다.


그리고 와인이 튄다.

웨이터의 손에서 병이 깨지고

붉은 액체가

한의 셔츠를 적신다.


이름표에는 진수 김.

한은 웨이터의 귀에

한국어로 무언가를 속삭인다.

눈물과 현금이 동시에 흔들린다.


동방의 저주.

농담으로 던진 말 뒤에서

한은 웃지 않는다.

대신, 어떤 시선과 눈을 맞춘다.


가게 밖으로 튀어나온 웨이터는

현금을 던지지 못한다.


( ╯□╰ ) 너무 큰 액수는

분노의 방향까지 바꿔 버린다.


천한 것,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가 욕먹는 거야.

웃어, 나까지 쪽팔리게 하지 말고.

속삭임은 끝까지 남는다.



민경은 한의 집 앞에서

오래도록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거대한 건물도,

경비의 눈빛도 이유가 되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자신 안에서 자라난

확신과 혐오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감각이다.


프러포즈는 화려했고

케이크 위 한글은 바르고,

반지는 반짝였다.

그런데 민경은 뒤로 물러섰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줘.

그 말은 거절이 아니라

살기 위한

작은 후퇴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말한다.

한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병 때문이라며,

의사들도 문제없다 했다고.


민경은 사랑을 부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평범하길 바란다.

너무 반듯한 사람이

가끔 인간을 가장 깊이 찌르니까.


그리고 그날, 문이 열린다.

집 안은 조용하고

민경의 목소리만

방마다 흔들린다.


드레스 룸의 셔츠는

먼지 하나 없이 정렬되어 있고,

예술품들 사이에는

검은 돌이 유리 안에 숨겨져 있다.


끝부분에 미완의 그림이 있다.

지옥을 그린 패널,

그 안의 고통받는 얼굴들이

더 다양한 피부로 바뀌어 있다.


특히 수염 긴 동양 노인은

가장 심한 고문 속에서도

웃고 있다.

웃음은 구원의 모양을 가장한 폭력이다.


그림 아래엔 낯선 아이가 있다.

십자가를 붙잡고

악마와 줄다리기하는 아이.

원작엔 없던 인물.


그리고 어디선가

미안, 이 들린다.

민경은 문을 열어젖히고

침실 바닥에서 한을 만난다.


머리를 박으며 발작하는 몸,

하얀 거품,

알 수 없는 중얼거림.

죄가 많아,라는 단어가 흔들린다.


민경은 약을 먹이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 ╯□╰ )이 순간, 그녀는

그의 세계에서 유일한 해독제가 된다.


그 우월감이

그녀를 더 붙잡는다.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사랑만이 아니라 필요가 된다.


한은 풀린 눈으로

벽의 십자가를 응시한다.

수십 개 작은 십자가가 모여

하나의 십자가가 된 모양.


의식이 흐려질수록

만화경처럼 돌고,

그 틈에서 이름이 나온다.

준.


민경은 들어 본 적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름은 보통

가까움의 증거여야 하니까.



다음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월, 목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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