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인종차별, 이름의 상실
그리고 페이지는
1979년의 텔레비전 광고로 넘어간다.
올 아메리칸 패밀리,
자동차, 목조 주택, 레트리버.
지침서처럼 반복되는 이미지가
한 가족의 삶을
정해진 자세로 앉힌다.
리모컨을 건네는 아이의 손끝까지.
에인절타운의 첫 기억은
끝없는 옥수수밭이다.
바다처럼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벽이 된다.
감옥이 아닌 곳에서
감옥 같은 답답함이
가장 조용히 자란다.
교회는 더 기이하다.
첨탑도 없이,
쇳덩어리 같은 구조물과
철제 십자가들만 서 있다.
그곳에서 총기는
교회에 보관된다고 한다.
신앙은 피난처가 되면서
동시에 통제의 창고가 된다.
수영장에서는 사고가 난다.
흰 페인트와 피가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경계를 만들며 퍼진다.
하나님께서 내린 벌이야.
어머니의 떨림이
물보다 차갑게
아이의 등에 붙는다.
그리고 방울 소리.
딸랑, 이라는 작은 음이
사방을 찢는 울림이 된다.
그때 동양인 아이가 묻는다.
네 진짜 이름이 뭐야.
이 질문은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존재를 해체하는 칼날이기도 하다.
한은 한이라 불리고,
이름이 쉬워질수록
괴롭힘은 더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대세에 순응하라는
가문의 생존법은
살아남는 동안
죄의식을 축적한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
사과를 받아 들고,
누군가는 현수막을 들고
나는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그 사이에서 한은
부와 권력으로 혐오를 가리고
또 다른 가족은
같은 인종이라는 이유로 더 노출된다.
( ╯□╰ ) 결국 우리라는 말은
연대의 표식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는
얼어붙은 벽이 된다.
여기서 공포는
귀신보다 빠르다.
가장 서늘한 순간은
친근하던 사람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