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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e Aug 06. 2020

아직도 (스물) 아홉 살 꼬마

약 일주일. 지난 일주일 동안 브런치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그 덕분에 이게 공황장애구나 싶은 증상을 동반한 심신의 괴로움이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화살이 박혔다. 도저히 내 손으로 뽑을 수 없어 박힌 화살을 두고 보기만 했다. 많이 아팠다.


내가 브런치를 찾은 이유는 솔직하기 위함이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공개해야만 했다. 우리 집의 실체가 이렇고, 나의 실체가 이렇고, 나는 누굴 원망했고, 내가 죽도록 원망한 그들이 사실은 내가 쓰러지지 않게 받치고 있었고, 이제는 극복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고, 마침내는 예술로 승화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 나의 사정이 있었다. 사연이 사연이니만큼 최선을 다해서 가면을 걷어냈다. 읽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옷을 벗었다. 실은 울지 않고 쓴 글이 없다. 어떤 글은 눈물 콧물 다 빼며 쓰고 나서도 아파서, 너무 아파서 한동안도 추슬러지지가 않았다. 지구를 덮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내려가면 중심에 부글부글 살아서 들끓고 있는 마그마가 있다. 마그마를 한 움큼 떠다가 길게 반죽한다. 그걸로 글자를 빚는다. 피부가 온통 짓눌린다. 살 타는 냄새와 짓이긴 고름 냄새. 내 글은 그렇게 빚어진 글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글을 써야 해?" 엄마는 그런다. 너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써야 하느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그게 은근한 고민이었다. 쓰면서 아프고, 쓰고 나서도 아프고, 읽을 때마다 아픈 글을 나는 계속 써나가야만 할까. 순전히 내 마음에 달린 일이라 어려우면서도 쉽다. 아직은. 계속 쓰고 싶다. 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써나가야만 할 것 같다. 이제야 들춰본 나의 내면. 이제야 마주한 나의 심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구나. 나의 가장 아픈 말들을 이제야 들어보려고 용기를 내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내면을 떼어다가 쓴 글들이 다행히도 읽어주신 분들께 전달이 잘 된 모양이다. 함께 글썽여주신 분도, 솔직한 글이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해주신 분도, 온통 상처 투성이의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분도, 그저 터놓았을 뿐인데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더 감사한 일인데. 그렇게 인정받음으로 내가 나아지고 있는가 싶었다.


그러한 자아도취 속에서 서서히, 무거운 고민들이 나를 엄습해왔다. 솔직함의 양면성. 나에게는 솔직한 토로일 테지만, 타인의 입장에서는 폭로가   있는 가능성. 내 상처를 치유하고자 적는 글이 타인에게 비수가 될 수 있는 경우의 수. 내 글이 누군가를 아프게 한대도 솔직함이 매력이 될 수 있을까. 솔직하지 않다면 내 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 것일까. 솔직함에 상한선을 그어놓는다면 솔직함을 꾸미는 것이 아닐까. 꾸며내서 빈 껍데기 같은 글은 적을 가치가 있을까. 계속 글을 쓰는 것이 맞는 걸까. 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나는 팔딱팔딱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꾸며내지 않은 글을 적고 싶다. 내면과 마주해본 생생한 후기를 전하고 싶다. 그 덕에 내가 치유되고 남을 위로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치유를 위한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지 않으면 좋겠다. 실로 어려운 글쓰기다. 그럼에도 가치 있는 글쓰기다. 이것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 예술일 수 있을까. 내가 감히 하고 싶은 것은 예술이었다.


진정한 예술에 통달하기엔 아직도 어린 (스물) 아홉 살 꼬마. 일단은 그렇게 정체성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홉 살 꼬마는 실수가 잦은 법, 끝없는 자책은 성장을 더디게 할 뿐! 아홉 살 꼬마는 넘어져 까진 다리를 부여잡고 일주일 내내 엉엉 울었지만, 그새 딱지 앉은 자신의 상처를 본다. 그새 근육이 붙어 더욱 단단해진 허벅다리를 본다. 느슨해진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맨다. 뼈아픈 시행착오 끝에는 분명한 성장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글을 그만 써야 하나 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더욱 솔직한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그 속에서 누구도 다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로 다짐한다. 읽고 읽고 또 읽어 모두가 보호되는 그때 발행할 것을 다짐한다. 분명한 절충점을 찾기로 다짐한다. 당장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나의 글이 서서히 예술의 지점에 다다르기를 바란다.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 담담하고 솔직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내가 해나가야 하는 일이 그렇다. 해왔던 대로 또 잘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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