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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e Sep 03. 2020

주식 입문기

2주 차 주린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발걸음이 뜸했다. 주말이면 커피를 내리고, 안 쓰던 안경을 콧등에 올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신생 작가가 된 기분을 만끽하는 게 한 주의 힐링이었는데. 요즘은 그 힐링마저 힘들게 하는 주범이 생겼다. 주말뿐이겠는가. 그 범인은 평일과 퇴근 이후의 시간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빨간 선과 파란 선, 수많은 영어와 숫자, 수많은 +와 -들 그리고 내 빨간 토끼 눈. 그렇다, 주식을 시작해버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돈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 용돈을 받으면 재빨리 주머니나 지갑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냥 책상 위에 두는 일이 흔했다. 엄마는 '용돈은 챙기지 않으면 뺏긴다'는 교훈을 알려줘야겠다는 목적으로 내가 방치한 용돈을 가차 없이 도로 가져갔으나, 끝내는 언제나 교훈을 가르치기를 실패했다. 용돈을 도로 가져가면 가져가는 대로, 놔두면 놔두는 대로 나는 악착같기보다 순해빠지기를 선택했다. 그때 빼앗긴 용돈만 모아도 지금 주식을 한 주 더 샀을 텐데 왜 그랬냐 과거의 나 자신!!! 그때는 용돈을 냉큼 주머니에 넣는 행동이 어딘가 경박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순진하고 세상을 몰랐던 내가 사회초년생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돈은 소중한 거구나. 내 시간과 자유가 돈으로 환산된 거구나. 뼈와 살이 갈려 이 종잇조각으로 다시 태어난 거구나. 용돈을 냉큼 주머니에 넣는 게 왜 나빠? 용돈은 뺏기는 게 나쁜 거야! 한 번 들어온 돈은 최대한 나가지 못하도록! 주머니 다 잠가! 하는 강렬한 태세와 함께 재테크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재테크랄 것도 없지만, 처음 입문한 재테크는 적금이었다. 태생이 콩알만 한 심장을 타고난 사회 초년생은 제1금융권 은행의 금리가 가장 높은 적금 상품을 찾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친구가 이율을 더 쳐주는 저축은행의 적금을 가입해 '오직 이자만으로 가방을 산 기적의 실화'를 들려주었고, 그 길로 모든 적금을 저축은행으로 바꾸어 넣었다. 물론 예금자 보호가 되는 금액을 고려하여 분할 적금 실행! 그때만 해도 그렇게 약 6프로의 이율을 굴릴 수 있었고 오직 이자만으로 '유럽행 비행기표'를 구매하면서 '정보와 실천이 곧 돈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음으로 입문한 재테크는 부동산이다. 언젠가 결혼은 할 거고 그러자면 집이 필요할 테니까! 일단 부동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메모했고 요약했고 공부했다. 유망하다는 지역을 골라 그 지역에서 데이트를 했다. 이름하여 임장 데이트. 데이트를 하면서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고, 패기 있게 부동산 상담도 받고, 지역 맛집도 가고 일석 삼조! 지금은 총알이 없지만 이 정보와 지식들이 언젠가 총알이 되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총알을 한껏 모아 꿈의 집을 겨누리라, 탕 탕 탕! 하지만 부동산의 장벽은 20대에게는 참 높고 두터웠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무리 정보를 얻어도. 나의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매일매일 쏟아지는 부동산 억제 정책들. 투기수요뿐 아니라 실수요도 함께 때려잡으시는 통에 부동산은 잠시 보류다.




저축은행에서 6%의 이율을 받던 6년 전의 그때. 그때가 참 좋았다. 지금은 저축은행의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고작 2%의 이율을 받을 뿐이다. 하물며 제1 금융권은 어떻겠는가. 1%라도 챙겨 받으면 다행인 상황이 되었다. 적금도 아니고 부동산도 아니다. 이제는 재테크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그래. 이제 그것밖엔 없는 건가. 주식.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결국 그와 맞닥뜨리게 될 운명이었던 것인가.


주식. 주식은 내 웬수다. 어릴 적, 아빠가 주식으로 큰 돈을 날리고부터 우리 집엔 냉골같이 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아빠는 새벽이고 밤이고 낮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고 온종일 컴퓨터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슬쩍 가보면, 컴퓨터를 뒤덮고 있던 빨갛고 파란 그래프들. 아빠가 점점 말이 없어지는 건 저 그래프 때문이야. 우리들과 점점 단절되는 퀭한 눈. 그게 다 저 숫자들 때문이야. 나는 커서 절대로 주식 같은 건 안 할 거야. 뭔지도 모를 거야. 그렇게 주식은 우리 집에서 유언과도 같은 어둠의 금기어가 되었다.

'주식이 뭔지 궁금해하지도 말라.'




그랬었던 내가 주식에 정신이 팔려있다. 시작은 친구의 한 마디였다. '미국 우량주를 샀고 소소하게 이익을 보고 있고 적금보다는 훨씬 낫다. 한 10만 원 정도 벌었다.' 가소롭게도 내 마음을 움직인 건 '10만 원 정도'의 수익이었다. 친구가 한탕 거하게 먹었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을 거다. 내가 원하는 건 한탕 먹자고 올인하는 도박이 아니니까. 예전의 적금만큼 연간 6~10%의 수익률을 내줄 수 있는 상품. 내가 원한 건 딱 그 정도. 그 10만 원에 솔깃해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해서 내린 결론은 '미국 주식으로 장기 투자하면 이전만큼의 이율은 챙길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포인트는 미국 주식이고, 장기투자다.


그래서 요즘은 주말이고 밤낮이고 할 거 없이 기업을 분석하고 정보를 얻는 중에 있다. 브런치에 할애할 시간들이 온통 주식으로 할애되는 중이다.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안정을 찾으면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믿는다.) 특히 우량주 중에서도 미래가 유망한 기업을 선별하는 작업이 참 흥미롭다. 회계를 공부한 남자 친구로부터 이름만 들었던 재무제표며, 손익계산서를 내가 검색해보는 날이 오다니! 너는 이런 것들을 공부해왔었구나! 내가 애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이런 비전이 있었구나. 이런 회사였다니? 앞으로 미래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하는구나! 나만 여기 머물고 있었네? 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환율이나 금리 등 귀찮아서 모른 채로 놔뒀던 것들을 알면 알수록 역동적인 세상을 경험하는 중이다. 순간순간 꿈틀꿈틀 하는 그 움직임이 아직까지는 신기하고 재밌다. 세상도 나도 살아있었던 거야!!! 우린 생물체였어!!!


벌기만 하는 주식은 없다고 했다. 어제는 주식 입문 2주 만에 수직 낙하하는 경험도 했다. 예상했던 상황임에도 무섭고 두려웠다. '10년을 보유하지 않으려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는 워런 버핏 형님의 속삭임과 장기투자자의 마음으로 어제를 잘 넘기긴 했으나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자금으로, 일확천금을 바라지 않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랜 기간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원칙을 지켜 롱런하는 건강한 투자자로 거듭나고 싶다. 이 글은 주식 입문기일 뿐, 주식 탈출기? 가 어떻게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주식을 통해 모르던 세상을 알아가는 경험이 나는 새롭고 재밌다. 또 이렇게 글감이 되기도 하니 아무쪼록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테크와 투자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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