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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Jan 04. 2021

죽은 자의 집 청소

누군가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부 이야기



죽음의 사각지대를 둘러보며
삶을 두드려보게 하는 에세이







생각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

주말에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니 유재석, 조세호가 출연하는 유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이 보였다. 그 날의 인터뷰는 '특수청소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태어나서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내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았다. 특수청소부로 일하는 그분의 이야기는 참 씁쓸했다. 전문 청소부가 필요할 정도의 죽음이란 살인 사건이나 자살한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다. 죽은 사람의 흔적을 매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얼마나 치우기가 힘들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공교롭게도 친구가 한 특수청소부 에세이 한 편을 추천하여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특수청소부'의 일과 일상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총 2장으로 나뉜다.

1장은 본인이 청소했던 죽은 자의 사례, 2장은 특수청소부라는 직업으로 인한 본인의 이야기다.




떠난 이의 사연들

특수 청소부인 그는 누군가의 집을 깨끗이 청소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 하지만 떠난 자의 집을 청소하며 남긴 흔적들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살기 너무나 팍팍해 원룸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여성, 죽기 전에도 타인을 위해 분리수거를 한 공중도덕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여인을 위해 밤마다 집 문 앞에 꽃을 두고 가는 사람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난한 이의 고독사를 유독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고양이들이 떼로 죽은 공간까지 청소한다. 장마 동안 비를 맞은 고양이가 구석진 곳으로 피해 추위를 견디다 저체온증으로 죽고, 그 썩어가는 냄새로 인해 의뢰가 들어온다. '부패한 고양이 전문' 청소부는 없으니 특수청소부에게 의뢰를 한다. 고양이 사체 주변에 파리가 들끓고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모습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죽은 자의 집을 치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한다.)

떠난 이의 공간이 얼마나 치우기가 힘든지를 느끼게 하는 구절도 곳곳에 있다. 일단 죽은 자의 집은 전기세가 몇 달씩 밀려 전기가 끊긴 집이 많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청소를 시작할 수 조차 없기에 끊긴 전기를 들어오게 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집에 있는 이불은 잔뜩 젖어 무겁다. 사람의 65%가 수분이기 때문에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을 온통 머금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형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2-3일만 두어도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놓는다. 창문과 벽을 넘어 비극적인 냄새를 뿜어댄다.




특수청소부가 겪는 일들

직업이 특수한 만큼 그의 일상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를 보는 시선과 직업을 보고 접근하는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까지 말이다. 직업을 듣자마자 사람들은 묻는다. 힘들지 않은가요? 안 힘든 건 아니다. 하지만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을 요령껏 없애고, 세월에 잠들어있는 것들을 집에서 탈출시키는 것들이 즐겁고 매력적이라고 한다. 귀신을 본 적이 있나요? 한 번도 초자연적인 일을 체험해 본 적은 없다. 이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받는 질문으로 보인다.

특수한 직업이기에 황당한 문의도 받는다. 자살 직전에 전화를 걸어 착화탄으로 죽으면 아프냐고 질문하는 여성. 119, 112에 신고하여 자살을 막은 적도 있다.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성이 청소 가격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죽음의 흔적을 매주 마주하다 보니, 옆집에 인기척이 며칠째 없으면 죽은 걸로 성급히 추측해버리는 일도 있다.

그는 자신이 '수도꼭지'같다고 한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누구든, 어디든 군말 없이 찾아가 깨끗하게 치우지만 정작 자신이 죽었을 때 그 자리를 스스로 치울 도리가 없는 점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이러니한 직업이다. 하지만 죽음을 돌아보고 죽은 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생의 흔적을 통해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데 참고하게 된다고 말한다. 생각이 참 긍정적이고 성숙한 분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씁쓸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덧없기도 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사체의 상태나 잔뜩 젖은 이불 등)의 이야기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며 깊어진 성숙한 마음과 직업을 대하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졌다. 책장을 넘기면서 보였던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와 비유, 에피소드 구성은 살짝 아쉬웠다. 좀 더 쉽고 담백한 문장으로 구성되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특수청소부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생각하지 못한 죽음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며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두드려보게 해 준 인상 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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