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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Feb 07. 202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유홍준


제주도를 1번 이상 다녀온
여행자에게 추천!




여행 전엔 역사 교과서

여행 후엔 에세이 같은 책

나는 이 책을 제주도 여행 전에 한 번, 여행 후에 한 번 총 2번 읽었다. 처음엔 막연히 제주도가 궁금해서 읽었었는데 작년 가을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읽으니 같은 글인데도 무척 새롭고 흥미로웠다.

문화재청장을 맡기도 했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를 이 책에 담았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수업 시간에 졸듯 졸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참 뒤 제주도에 다녀온 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금 이 책을 펼쳐 목차를 훑어봤는데 우연히 다녀왔던 제주도의 낯익은 위치들이 담겨 있어 반가움에 다시 읽게 됐다.

분명 지루한 역사 교과서 같던 책이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보는 것처럼 느낌이 너무 달랐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하지만 순서는 달라도 될 것 같다. 먼저 알고 가서 느끼는 것도 좋지만, 먼저 느끼고 와서 알게 되는 맛도 꽤 재미있다.





인스타와 여행 책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주관적인 제주도 책갈피


#제주도에 사람이 적은 이유는?

일단 비행기와 여객선이 만석이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으니 자동으로 출입인원이 통제되는 셈이다. 연간 약 1천만 명의 관광객이 들어와 평균 3일을 묵어간다고 가정해도 하루 제주에 머무는 숫자는 10만 명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제주도민 합쳐봐야 70만 명이니 서울의 세 배 크기면서 사람 수는 20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다.



#순이삼춘의 성별은?

현기영 소설 <순이삼춘>은 1949년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이 학살당한 사건 때 기적적으로 살아난 순이 삼춘이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는 비극적으로 자살하고 마는 이야기다. 여기서 순이삼춘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제주도에선 형님, 누님,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은 엄격하게 진짜 가족에게만 쓰고 남을 부를 때는 모두 삼춘(삼촌)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소설 순이삼춘은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를 말한다. (난 당연히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삼촌인 줄...)



#조천

제주도 첫 여행을 이 근처에서 시작했었는데 알고 보니 조천은 3.1운동 당시 맨 처음 제주도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온 곳이다.



#이름만 기억했던, 제주도 4.3 사건

제주도를 가면 4.3 사건의 흔적을 종종 마주한다. 이름만 익숙하지 정확히 언제 어떻게 벌어진 사건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남로당(공산주의 정당)을 색출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조금 더 쉽게 풀이해 주었다.

이 사건은 1948년 4월 3일, 12개 경찰지서를 공격하는 남로당의 무장봉기에서 시작됐다. 남로당이 경찰서를 공격한 이유는 1947년 3.1절 기념식 때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해 주민 6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군 하지 중장은 '제주도민을 죽인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경찰 공격'에 비중을 두어 남로당 색출에 집중했다. 또한 제주 사태는 단순한 지역문제를 넘어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도 죽임을 당했고,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되면 그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대살'도 감행했다. 1949년 6월 무장대 총책 이덕구가 사살되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또 비극적인 사태가 이어졌고 1954년 9월 21일에야 가라앉았다.

나는 4.3사건이라고 해서 4월 3일 하루에 벌어진 일인줄 알았는데, 자그마치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린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탑에 대한 유감

4.3 유적지에는 위령탑과 기념탑이 있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한국의 기념관에 문제가 많다고 전했다. 아픈 역사를 진정으로 위로하기 위함이 아닌 허위 허식으로 세워져 진정성을 해친다는 의견이다. 전반적으로 심도 깊은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지어진 기념탑들을 비판했다.

제주4.3평화공원 건축 당시 공모전을 진행했었는데, 학살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위령탑을 높게 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엄숙하게 디자인을 했지만 단지 '뽈대'를 세우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예심에서 탈락했다. 역사의 이해 없이 공식처럼 뽈대만 세워진 기념관들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건축 디자이너들이 있다는 사실도.



#귀여운 이름, 다랑쉬오름

제주도에 갔을 때 이름이 예뻐 올랐던 곳이다. 다랑쉬오름은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어 보인다 하여 '다랑쉬'라고 지어졌을 거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로 월랑봉(月郞峰)이라고 표기한다.



#제주의 산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산 중간 중간에 묘지가 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무덤 주변에 돌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돌들을 '산담'이라고 부른다. 제주도만의 독특한 장례 풍습이다.

출처: 한국일보(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709280743835608)


#오름 지식 대백과

제주도는 오름이 참 아름답다. 이 오름의 아름다움에 빠진 산악인이자 언론인인 김종철(1927-95) 선생은 330여 오름을 일일이 답사하며 오름의 이름, 생태, 지질, 전설 등을 최초로 밝힌 분이다. 그 내용이 모두 담긴 책이 바로 <오름나그네>이다. 하지만 암에 걸려 책이 나온 지 20여 일 만에 눈을 감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의 숨은 사연

2007년 제주도(정확히는 화산섬 용암동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첫 번째 사연, 유네스코 반대파와의 갈등

사실 문화재청에서는 1995년에 제주도보다 먼저 설악산 등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개발에 제약이 많아 재산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의회 및 주민 대표들이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여 데모를 벌였다. 그렇게 설악산은 심의조차 받지 못하고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길을 영원히 박탈당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지역주민의 반대가 있으면 절대로 지정되지 않는다. 제주도도 한림공원 내 협재 용암동굴은 소유주가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하지 않아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제주도는 도민들의 동참을 얻고자 설명회를 갖고 서명운동을 벌여, 150만 명의 명의 서명을 받아 유네스코에 제출했고 일단 유네스코가 이에 감동했다고 한다.


두 번째 사연, 빼박 근거를 찾아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화산지형이었다. 따라서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이미 등재된 다른 화산섬과 상대평가를 해서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해야 했다. '성산일출봉'은 파도에 의해 외부 구조가 대부분 침식되어 지층이 절벽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타 화산지형과 다른 보편적 가치임을 증명했다.

지층을 보여주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만한 성산일출봉


또한 용암동굴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한몫을 했는데, 이미 용암동굴도 너무 많이 등재되어 있어 <인간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은 용암동굴> 정도는 있어야 가능했다. 그러던 2005년 어느 날 새 동굴이 발견되었다. 전신주 교체 작업을 하다 우연히 전신주가 쑥 빠져 뚫린 구멍으로 가보니 정말로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천연 동굴이 발견되었다. 무려 1,200년 이상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동굴. 용천 동굴을 찾아냈다.

1200년 넘게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용천 동굴. 진짜 멋있다.


아쉽게도 용천동굴은 일반인 출입이 불가하다. 대신 온라인 전시관이 있다.

http://storage.net-fs.com/hosting/6718810/42



#해녀

언제 해녀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7세기에 남자 해녀가 존재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해녀 불터는 물질을 하고 나와 잠시 쉬는 곳이다.



#제주어

2010년 12월 제주어를 소멸 위기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세 명의 신이 솟아 나온 바로 그 곳, 삼성혈

우연히 호텔 주변을 돌다 ‘삼성혈’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유적지였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 책에서도 삼성혈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굉장히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삼성혈은 제주도를 개국한 3명의 신이 처음 태어난 장소로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3명의 용사가 솟아난 곳이다. 이후 바다 건너 배를 타고  3명의 처녀를 아내 삼아 탐라국을 세우게 된다.  건국신화는 삼성혈에 가면 무료 애니메이션으로도   있다. 은근 재미있다. 세명의 신이 굉장히 몸짱 훈남으로 나온다. 여튼 굉장히 인상 깊은   하나다.

직접 찍은 삼성혈 터. 신이 솟나 나온 세 개의 웅덩이는 비나 눈이 와도 절대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하멜에게 이런 사연이..

어릴적 교과서에서 '하멜표류기'라는 말만 언듯 들어본 것 같다. 그냥 역사적 기록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알게된 하멜의 사연도 흥미로웠다.

1630년 생 네덜란드인 하멜은 63명의 선원들과 함께 나가사끼로 향했다. 하지만 가던 중 태풍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다 1653년 8월 16일 제주도에 도착해 억류되었다. 64명 중 36명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10개월 만에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이런저런 사연으로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하멜 일행은 온갖 고된 노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13년 동안 억류생활을 하다 배 한 척을 구입해, 1666년 9월 4일 밤 8명이 탈출에 성공했다. 하멜은 나가사끼에 체류한 1년 동안 13년간의 일을 상세하게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이유는 회사에 13년간의 임금을 요구하기 위한 증빙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배의 난파 책임을 물어 결국 소액의 보상비만 하멜에게 지급했다. (배는 회사 재산인데 왜 직장인인 하멜이 지불하나.. 산재 처리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1600년대를 살았던 하멜을 보며 직장인인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하멜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은 고달프구나.

참고로 하멜 보고서에 조선왕조실록 고증을 거친 후 출간된 책이 <하멜표류기>다.





제주도 너무 좋다.

조만간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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