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26일차)
오전 9시.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 두 사람. 호텔의 전망은 어제 오후에 이미 만났지만 아침의 풍경은 또 다를 거라는 기대감에 살짝 설레고 있었다. 띵~ 꼭대기 층의 문이 열렸다. 눈앞의 짧은 복도를 지나 뷔페식으로 차려진 조식 코너 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웅성웅성- 어수선한 소리가 귀를 장악했다. 오전 9시의 루프탑은 이미 투숙객들로 붐비고 있었던 것이다. 붐비는 정도가 아니라 어제 오후에는 텅텅 비었던 테이블이 거의 만석이었다.
(2023년 4월 26일 수요일)
“우와~”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한껏 기대했던, 그 이상의 전망 때문이었다. 화창한 아침에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시내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 또렷하게 보여서, 또 너무 아름다워서 벅차올랐다.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아침식사라니. 습관처럼 알던 ‘호사를 누린다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쓰는 단어 임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몇 남지 않은 2인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저 멀리서 우리가 앉는 모습을 확인한 웨이터 한 분이 다가왔다. 하얀색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훤칠한 외모의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었다. “부온 조르노~” 외모와 잘 어울리는 중저음 톤의 목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웨이터의 모습이었다. 친절한 미소로 우리의 방 호수를 확인하고서는 우아한 손동작으로 펜을 들어 명부에 체크를 했다. 질문이 이어졌다. “투(Two) 카푸치노?” 우리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가만 보니 음식은 뷔페식이고 커피는 주문하면 직접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음식을 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두 사람. 조식 뷔페는 기본적으로 꼬르네또와 햄, 치즈 등은 물론이고 파스타와 오믈렛부터 구운 가지와 각종 과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제외한 음료 역시 자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따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탁 트인 루프탑에서 즐기는 식사여서인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맑은 아침 공기가 콧속을 통과해서 폐 속까지 들어가는 경로가 그대로 느껴졌다. 차갑고 상쾌한 공기였다. 일어나자마자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올라온 지라 눈곱도 아직 그대로인 상태인데 벌써부터 기분은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었다. “다 먹었지? 슬슬 준비하러 갈까?” 중년생이 말했고 사회는 대답 대신 재킷을 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사실 사회와 중년생은 오늘 중요한 스케줄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바티칸 박물관 관람이었다. 쓰다 보니 일기와 기행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은 이 글을 처음부터 읽으신 분이 혹시 계시다면 눈치채셨겠지만, 두 사람은 20여 일 전 여행 초반 로마에 있을 때 이미 바티칸 가이드 투어를 했었다(02 Roma: 바티칸 인파 박물관 편 참조). 그런데 왜 다시 바티칸이냐? 묻는다면 제대로 ‘음미’하고 싶어서라고 답을 드리겠다. 마치 뭔지도 모르고 음식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세계 3대 요리(어디까지나 예를 들어서지만)였다면 아쉬워서 다음번엔 제대로 음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랄까? 여튼, 그래도 한 번은 설명을 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전문 가이드 없이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고자 얼마 전에 입장권만 예매했었다. 우리의 선택은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된 줄 설 필요 없는 티켓(Skip The Line with Optional Audio Guide/ 2인 총 58유로)이었는데 정오(12시) 예약이라 시간 여유는 충분했고, 날도 화창해서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지만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 여행의 아쉬움 때문인지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소중했다. 재미있는 영화는 길면 길수록 좋은 것과 같은 이치랄까?
두 사람 모두, 스쳐가는 풍경의 반짝임에 감사했고 주어진 날씨의 아름다움에 한번 더 감사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람들의 행렬이 갑자기 많아지더니 그 흐름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같았다. 바티칸에 거의 다다랐다는 신호였다. 입구로 향하는 코너를 돌자 역시나 오르막길을 따라 어마어마한 양의 사람들이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이 줄을 다 기다려야 하는 줄 알고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한 번 와본 곳이라고 이번엔 달랐다(물론, 현장에서 표를 구입하려면 줄을 서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을 관람하듯 유유히 지나쳐 여유롭게 입구에 당도했다. 입장 순서는 이랬다. 먼저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바우처를 우선 입장 코너에 서 있는 스태프에게 보여준 뒤, QR코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다음, 리셉션이라고 쓰여 있는 부스로 가서 실물 티켓을 받고 개찰구를 통과한다. 통과 후에는 에스컬레이터나 도보를 이용하여(나선형으로 이어진 길이지만 체력 비축을 위해서는 비추)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올라가면 창구가 하나 보인다. 그곳에서 오디오 가이드용 플레이어까지 수령하면 모든 준비는 끝. 이후에는 자유롭게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면 되는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는 작품 앞에 적힌 숫자를 플레이어에 입력하면 해당 작품의 설명이 재생되는 구조인데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지난번엔 일행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느라 거의 스치듯 지나쳐 갔던 유적들을 좀 더 자세하게 봤다. 중년생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조각과 무덤에 관심을 보이다가 벽에 새겨진 문자에 꽂혔는지 한참을 서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회의 관심은 천장 벽화와 옛 지도였다. 자신들의 영토를 중심으로 아는 만큼만 표현된 지도는 마치 보물 지도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지금과 같은 완벽한 사실감은 부족했지만 반대로 당시의 주관적인 세계관을 짐작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거대한 벽면 한쪽을 차지한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과 같은 명작들도 다시 한번 천천히 음미했다. 세세한 표현과 의미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작은 사진으로만 봤을 때와 확연히 다른 점은 작품의 규모와 색감이었다. 음악도 라이브를 경험해 보면 느낌이 전혀 다르듯 명작의 실물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작품이 전혀 아니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웅장함에 압도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생한 색감과 질감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바티칸에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그 파도와 함께 밀려왔다.
걷고 감상하는 내내 고개를 어느 쪽으로 돌려도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예술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두 사람이 봐도 사방이 명작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자세한 작품 설명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짧은 지식의 한계로 대략적인 감상만 전해드려 죄송함을 다시 한번 뻔뻔하게 고지하는 바이다. 콜록콜록.
한참 관람하다 보니 한쪽으로 빈센트 반 고흐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엔 가이드 투어의 시간상 지나쳤던 것 같아 이번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갔다. 거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피에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흐가 죽기 몇 달 전에 그린 작품으로, 다른 설명 없이도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림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슬픈 인상을 남긴 작품 앞에 얼마간 머물다가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이르러 오디오 가이드를 플레이했을 때였다. “어?!” 사회와 중년생이 거의 동시에 놀란 이유는 하나였다. 성우의 목소리에 있었다. 분명 국민배우이신 안성기 님의 음성이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바티칸 박물관에서 바뀐 작품 배치에 따라 오디오 가이드 개선작업을 했는데, 그때 참여하신 모양이었다. 목소리일 뿐이었는데도 이국 땅에서 만나니 반갑고 든든했다.
미켈란젤로 자체가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장과 벽면의 대작을 눈으로 감상하며, 귀로는 친근한 국민배우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설명을 들으니 마치 TV에서 방영하는 세계 미술사 프로그램에라도 들어간 기분이었다. 박물관 초입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사 두었던 생수 한 병(1유로)의 마지막 남은 물을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혹시라도 바티칸 박물관을 갈 예정이 있는 분이라면 반드시 물을 사시길 권하는 바이다.(사탕도 몇 개 챙겨두면 좋다.) 큰 규모와 많은 관람객 때문에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지치고 목이 마르게 되니까.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밖으로 나와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4시 20분이었다. 12시에 입장했으니 무려 4시간 넘게 관람했던 것이었다. 어쩐지 너무 다리가 아프더라니.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피로가 배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남아 있었지만 지난번에 관람하기도 했고 더 이상의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아서 이번엔 생략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어찌어찌 천사의 성까지 걸어 그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한계였다. 다행히 나무들이 만들어 준 그늘 덕분에 꿀 같은 휴식을 얼마간 취할 수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처음엔 고개를 떨군 채 죽은 듯이 체력을 충전하던 중년생이 어느샌가 한쪽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시선이 닿은 곳은 기념품 가판대였다. 어느 여행지를 가나 마그넷 같은 작은 기념품을 항상 사는 중년생다웠다. 결국 병따개 겸용 마그넷을 3개 구매했다. “좀 쉬니까 이제 살만한가 보네?” 구입 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는 중년생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며 말하는 사회였다.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판테온까지 다시 걸었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타도 그만이었지만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두 발로 누비고 싶었다. ‘걸을 수 있을 때 최대한 걸으면서 여행하자.’가 두 사람의 여훈(학급에 급훈이 있다면 여행엔 여훈이 있다)이기도 했다. 여전히 멋진 판테온에게 인사를 건넨 후 다시 걸어서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 우리는 상의할 필요도 없이 루프탑으로 올라가 스프리츠 아페롤을 주문했다. 첫 모금에 손과 발 끝까지 짜릿해질 정도로 상쾌함이 몰려왔다. 하루의 피로가 스프리츠와 함께 녹아 목구멍 속으로 꿀꺽꿀꺽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루프탑의 난간 너머로 펼쳐진 로마의 서쪽으로 빨갛게 노을이 지며 해가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절경이었다.
아페리티보를 충분히 즐기고 났을 때쯤, 이번엔 저녁장을 보러 가자고 중년생이 제안했다. “이탈리아 사람 다 됐네.” 사회가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목적지는 호텔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마트.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한 날이라선지 충분히 쉬긴 했어도 온몸에 피곤함이 가득했기 때문에 멀리 갈 여력은 없었다. 두 사람은 브리치즈와 삶은 야채, 올리브와 토마토, 간단한 곡물 샐러드와 프로슈토, 그리고 저렴한 와인 한 병을 담았는데(총 28.26유로) 계산대의 점원에게서 우리나라의 향기를 느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이탈리아에서 만난 거의 모든 마트 점원은 여유롭게 천천히 계산을 하는 편이었는데 이곳의 그 점원은 미치듯 빠른 속도로 계산을 해치웠기 때문이었다.(해치웠다는 표현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계산을 해내는 것이 마치 게임의 미션이라도 되는 듯 즐기면서 리드미컬하게 제품의 바코드를 빠르게 찍어댔다. “이 정도면 한국보다 빠른 거 아니야?” 감탄한 듯 사회가 말했다.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배는 너무 고프지만 이미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빛의 속도로 씻고 세팅하고. 9시가 넘은 시각에 우리만의 조촐한 만찬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먹다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다가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샌가 점점 그 속도가 느려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한 마디와 함께 사회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중년생은 새빨간 눈을 비비며 더 새빨간 커튼 사이로 보이는 창 밖의 풍경으로 눈길을 던졌다. 오늘도 비현실적인 로마의 밤 얼굴이 불빛에 비쳐 창문 너머로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4월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