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25일차)
진짜 마지막 조식이었다. 피렌체에서의. 언제나 똑같은 꼬르네또, 똑같은 햄과 치즈, 똑같은 레드오렌지 주스, 똑같은 요거트, 똑같은 머신에서 내린 똑같은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였지만, 그 위에 ‘마지막’이라는 비법 소스가 뿌려지니 전혀 다른 식사로 다가왔다. 자그마한 호텔의 조촐한 조식이 오늘 우리에게는 성대한 이별 만찬으로 느껴졌다. 식당에는 오늘도 여전히 나이 지긋하신 조식 담당 매니저 아주머니께서 분주하게 살피고 계셨다. 처음에는 깐깐해서 무서워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눈에 익어 나중에는 친근감까지 느껴버린 아주머니와도 마지막 식사였다. 그분은 모르고 계시겠지만.
(2023년 4월 25일 화요일)
“매니저님께 감사하다고 얘기라도 하고 싶은데.”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중년생이 사회에게 운을 띄웠다. 그라치에라는 일반적인 짧은 감사말로는 뭔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길게 말할 이탈리아어 실력은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두 사람은 잠시 회의를 했고, 결론에 도달했다. 그 방법은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돌려서 읽으실 수 있도록 직접 화면을 보여드린다.’였다. 중년생이 스마트폰 번역기 어플을 켜고 마이크 부분에 입을 대고 중얼거렸다. “지난 9일 동안 최고의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곧이어 번역된 이탈리어아가 큼지막한 화면에 읽기 좋은 크기로 나타났다. Grazie mille per aver preparato la migliore colazione degli ultimi nove giorni. 당시에는 정확한 표현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시간도 실력도 없었기에(실력은 지금도 여전히 없지만) 번역 어플 회사를 전적으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다 마친 사회와 중년생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 앞으로 다가갔다. 필요한 것이 있느냐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마주한 그분에게 중년생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 예상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하시더니 눈길을 돌려 읽으시는 매니저님. 그리고는 우리를 쳐다보셨다. 상기된 얼굴에 촉촉해진 눈망울. 감격하신 듯 우리에게 고맙다고 잘 가라고 진심의 눈빛으로 인사하셨다.(그분의 반응을 봤을 때 번역이 충분히 잘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파파고!)
방으로 올라와 천천히 씻고선 지난 열흘간 풀어뒀던 짐을 캐리어에 다시 담고 있던 때였다. “어? 어제 그 떨어진 몰딩! 언제 고쳤지?” 사회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올려다본 문 앞 천정 모서리엔 떨어졌던 몰딩이 그런 적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 수리를 요청한 후엔 깜쪽같이 잊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아침에 외출해서 커피 마시고 빨랫감을 가지러 한 번, 세탁소 들렀다가 빨랫감을 두러 또 한 번 방에 왔었고 두어 시간 휴식도 취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저녁 먹고 산책을 마친 후엔 아예 들어와서 아침까지 잠을 잤는데도 이제야 발견하다니 충격이었다. 은연중에 우리가 ‘체크아웃을 한 후에나 고치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국은 뭐든지 빠르고 그에 비해 외국은 느릴 것이라고 마음대로 확신해 버린 스스로에게 반성하는 바이다.
우리가 예매한 기차는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11:28분 출발하여 13:05분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 예정인 이딸로(Italo) Prima(프리마) 등급 열차였다.(2인 79.80유로) 시간 상으로 여유가 충분했기 때문에 천천히 짐을 꾸리고는 우리가 묵었던 방안을 눈에 담기 위해 꼼꼼히 돌아보았다. 그리고도 뭔가 남은 아쉬움에 사진까지 몇 장 찍고는 방문을 나섰다. 묵직한 310호 열쇠를 반납하면서 시티 택스(City tax)로 84유로를 지불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지상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띵- 문이 열리고 호텔 밖으로 나온 사회와 중년생. 마지막으로 피렌체 두오모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너네가 가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쾌청한 하늘 아래 두오모는 여전히 잘 생기고 예쁜 얼굴을 도도하게 뽐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두오모에게 작별의 인사를 던진 사회와 중년생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골목길을 걸어 기차역에 당도했고 곧바로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구입한 표의 탑승구 위치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1시간 반 정도면 가는데 그냥 일반석 살 걸 그랬나?’ 중년생은 속으로 잠시 후회했지만 고개를 돌려 일반석 쪽 탑승구 위치에 사람들이 상당히 붐비는 모습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중년생은 평소 안전에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혹시나 캐리어를 분실하거나 소매치기당할까 봐 기차는 돈이 좀 들더라도 짐칸이 여유로운 좌석을 구매한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가 탑승할 기차가 서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치익- 문이 열리고 사회와 중년생은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좋은데?” 사회가 감탄한 듯 말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더 좋았고,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한산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짐칸도 널널해서 우리 눈 바로 앞에 캐리어 두 개를 나란히 놓을 수 있었다. 일단 안심이 되자 그 뒤로 남은 것은 즐거운 기차여행이었다. 흐르듯 지나가는 몬테바르키(Montevarchi)의 풍경들. 잠시 후엔 커피와 가벼운 스낵 등이 제공되었다. 사회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그 모습에 중년생에게선 흐뭇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두 사람은 로마를 떠나 온 지 20일 만에 다시 로마로 향하는 열차 위에 앉아 있었다.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의 로마는 낯설고 긴장된 상태여서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었기에 지금의 로마행은 너무 설렜다. 점점 빨라지는 기차만큼이나 두 사람의 심장박동도 기대감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열차는 티켓에 표시된 도착 예정 시간에 거의 맞춰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 역에 멈춰 섰다. 밖으로 나오니 탁 트인 광장에는 막 도착한 사람들과 곧 떠나는 사람들이 한데 엉켜 바글바글했다. 문득 처음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던 날의 밤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어둡고 낯설어서 호텔로 가는 길이 무섭기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 구경까지 할 여유가 생겼다니. 감개가 무량할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가 아주 살짝 대견해지는 중년생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걷기엔 만만치 않은 돌바닥이었지만 처음이 아니라 마음이 준비된 상태여서인지 좀 더 수월했다.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을 지나 나지오날레 대로(Via Nazionale)로 내려가자 금방 우리의 숙소가 나타났다. 며칠 있어봤던 동네라고 지도는 딱히 필요 없었다. 더구나 이 호텔은 우리가 20일 전, 로마에 있었을 때 직접 위치를 확인하고 예약을 한 곳이기에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30분가량. 본인의 이름을 ‘사라(Sarah)’라고 밝힌 로비의 직원이 밝은 미소와 함께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부터여서 우리는 짐부터 맡긴 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목적지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지난번 로마에 있었을 때 사회와 중년생이 가장 좋아했던 Via dei Fori Imperiali로 발걸음이 자연스레 향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 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인데 양쪽으로 가득한 유적지 사이를 꿰뚫는 낭만적인 코스라서 로마에 돌아오면 매일 가자고 했었다.
웅장해진 마음으로 천천히 길을 거닐었다. 여행의 처음과 끝을 로마에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멋모르고 가이드 투어도 하며 보냈던 로마에서의 첫 5일. 그리고 점차 이탈리아의 문화와 음식에 익숙해지며 보냈던 다른 도시에서의 20일. 그리고 다시 찾은 로마에서의 첫날.
떠나 있었던 20일 동안, 마치 김치를 숙성하듯 로마에 대한 우리의 감상도 숙성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은 풍경인데도 전혀 다르게 보였다. “여기 정말 좋다. 한국 가기 전까지 자주 오자!” 사회의 말에 중년생이 동감이라는 듯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819호.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우리가 체크인을 하며 배정받은 방 번호였다. 50% 음료 할인 쿠폰 2개도 함께 받았는데 루프탑 바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방은 크진 않았지만 아주 깔끔했고 흰색과 고급스러운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콘셉트로 되어있었다. 피렌체에서 이동한 첫날이어서일까? 체크인 전에 한참을 산책하고 와서일까? 아니면 여행 중 낮잠을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셋 다일 것 같지만, 여하튼 두 사람은 피곤이 몰려온 김에 방에서 좀 쉬기로 했다. 어차피 두 번째 방문한 로마에서는 정해진 일정도 거의 없었다.
중년생이 눈을 뜬 시각은 5시 40분 정도였다. 잠든 줄도 몰랐는데 잠깐 쉰다는 것이 두 시간도 훨씬 넘게 잔 것이었다. “우리, 루프탑 가볼까?”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며 사회가 제안을 했고 중년생은 덥석 물었다. 짝짝- 중년생이 남은 잠을 깨우기 위해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양쪽 볼을 쳤다. 6시였다.
루프탑은 상당히 넓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통로로 나가면 바로 바(Bar)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크게 ㄱ자 형태의 공간에 테이블이 가득 놓여 있는 구조였다. 조식도 루프탑에서 제공한다고 하더니 역시나 넓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경치가 좋았다. 사방으로 탁 트인 시내의 모습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사실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 중에 상당한 부분이 이 ‘루프탑’의 매력에 있었는데 완벽한 성공이었다.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2~3 테이블 정도가 차 있었는데 모두 서양 관광객으로 보였다. 아페리티보 시간이어서 우리도 스프리츠 아페롤로 2잔을 주문했다. 곧이어 스프리츠 두 잔이 올리브와 감자칩, 땅콩과 함께 제공되었다. 천막이 쳐 있었지만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이 안까지 뚫고 들어와 눈이 부셨다. 자연스레 선글라스에 손이 갔다. 그러고는 마셔 보는 스프리츠 첫 모금. “아~~ 너무 좋다!” 중년생의 속마음과 똑같은 말을 사회가 입 밖으로 내뱉었다. 도시를 이동하는 날이기에 평소보다 다소 지치고 긴장했던 오후를 나른하게 이완시켜 주는 한 모금이었다. 중년생 손가락의 다음 행선지는 먹음직스럽게 올리브가 담긴 유리 접시였다. 작은 나무 포크로 올리브를 막 찍어 올리던 그때였다. “아페리티보에 올리브를 줬었나?” 사회의 순수한 질문에 중년생도 지난 25일 간을 떠올려 봤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경험한 아페리티보에 제공되는 간단한 안주(?)는 대부분이 감자칩 약간이나 땅콩 약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스프리츠 안에 올리브 한 개가 넣어져 나온 정도? 물론, 사회와 중년생은 둘 다 아페리티보에 관한 지식은커녕, 단어조차도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접한 초짜들이기에 어떤 구성이 일반적인 것인지 이 당시에는 알 턱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페리티보는 식사 시간 전에 술이나 음료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곁들이는 이탈리아의 고유한 문화로, 지역 마다도 조금씩 다르고 함께 제공되는 음식도 간단한 감자칩부터 뷔페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한 입 베어 문 올리브는 중년생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크기부터 훨씬 컸고 단단했으며(큰 대추 정도의 크기와 식감), 안에 씨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평소 피자나 샐러드에 들어간 블랙 올리브를 좋아했던 두 사람이기에 대부분 씨를 제거한 뒤 절여져서 약간 부드러워진 상태의 것만 접해봐서인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생소함은 매우 긍정적인 쪽이었다. 마음에 쏙 든 정도를 넘어서 행복이 폭발하는 지경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비슷한 것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음을 알고 중년생이 뛸 듯이 기뻐했다는 후문이 있다.)
아직 뜨거운 태양, 탁 트인 비현실적인 로마의 전경, 다소 출출한 위장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두 사람은 올리브 한 입, 스프리츠 한 모금, 감자칩과 땅콩 한 입의 무한 루프 시스템에 흔쾌히 몸을 던졌다. 그러다 보니 금세 한 잔이 동이 났다. “한 잔 더?” 사회가 신호를 보냈고, 중년생은 대답 없이 바로 직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 여유롭고 여유롭고 여유롭고 또, 여유로운 로마의 오후였다.
얼마나 쉬었을까? 저녁 7시 30분이 가까워졌는데도 대낮 같았다. 해에 아직도 힘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체력까지 충전 완료. 사회와 중년생은 시간이 아까워져서 시내를 한 바퀴 더 돌고 오기로 했다. 계산을 하기 위해 바로 향했다. 스프리츠 4잔에 총 20유로. 하지만 우리에겐 체크인 때 받았던 50% 쿠폰이 있었다. 그래서 10유로! 역시 할인은 소소하게 사람의 기분을 방긋-하게 만든다. 하하.
거리로 나갔다. 20일 만에 돌아온 로마의 길은 여전히 모르는 곳 투성이었지만 한 번 와봐서인지 친근함이 곳곳에 덧입혀져 있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걸을 체력이 있었기에 일단 판테온을 향해 걸었다. 여전히 관광객들로 빙 둘러싸인 인기 만점 트레비 분수를 지나 판테온 앞에 섰다. 20일 만에 봐도 역시나 압도적인 존재감. 천 년 전에 봤어도 변함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성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매일 인사하고 싶은 건축물이 피렌체에선 두오모였다면, 로마에서는 판테온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사회와 중년생 두 사람에게는.
살짝 서늘함이 느껴져서 올려다본 하늘의 해는 아까와는 다르게 옅어져 있었다. 밤의 기운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커피?”, “응, 커피!” 이때 생각나는 건 역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이었다. 처음 떠오르는 건 타짜도로 커피. 하지만 판테온의 북동쪽에 자리한 그곳은 지난번에 가봤으니 오늘은 다른 곳을 가보기로 했다. 판테온의 남서쪽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는, 서쪽에서 아주아주 살짝 남쪽에 위치한 산 에우스타키오 커피(Sant Eustachio il caffe). 타짜도로만큼이나 유명한 카페로 ‘로마 3대 커피’를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을까 바에 서서 간단히 마실까로 살짝 의논한 우리는 서늘하지고 있는 야외보다는 바를 선택했다. 커피는 이곳의 시그니쳐인 Gran Caffe 2잔(총 6.8유로). 큰 컵에 든 에스프레소에 기본적으로 설탕이 들어가 있는 커피인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약간 크리미 해서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노란색이 이곳의 메인 컬러인지 판매용으로 진열되어 있는 모카 포트나 커피 잔, 원두 포장지가 모두 노란색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어서 얼핏 본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직접 현지에 와서 만나니 모르고 살기엔 너무 매력적인 브랜드였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진리였다.
밖으로 나오니 이젠 완연한 밤이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걷던 우리 앞에 범상치 않은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로 살짝 보이는 불 켜진 건물은 한눈에 봐도 아름다웠다. 기대감에 거의 뛰듯이 계단을 올랐다. 건물 앞으로는 광장이 탁 트여 있었고, 우리가 올라온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도시의 전망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아직 살짝 남은 노을의 끝자락이 붉은빛을 황홀하게 뿜어냈다.
너무나 고급스러운 건물과 광장과 풍경들. 우아하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건물 앞에는 근위병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예사 광장은 아닐 것 같아서 꺼내든 스마트 폰의 구글 맵 찬스! 역시나 이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퀴리날레 광장(Piazza del Quirinale)과 퀴리날레 궁전. 역사적으로 교황들과 국왕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곳이며, 현재는 이탈리아 대통령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참고로 이곳은 로마의 7 언덕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이곳의 고요하고 벅찼던 일몰의 경치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까지 야경을 즐긴 두 사람. 이제는 정말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꼬르륵- 아페리티보를 즐겼을 뿐 사실상 하루 종일 식사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배가 소리로 확인시켜 주었다.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로컬 마켓에 들러 저렴한 와인 한 병과 올리브, 방울토마토, 햄과 치즈 등을 구입했다(총 20.77유로). 방으로 돌아오니 9시를 훌쩍 넘긴 시각. 중년생은 먼저 빠르게 씻고 나와 사회가 씻을 동안 저녁 상을 차렸다. 로마의 야경이 보이는 창가 쪽으로, 사 온 음식과 와인을 보기 좋게 플레이팅 했다. 생각보다 멋진 배경과 아늑한 호텔 방 조명이 한데 어우러지니 분위기 좋은 리스토란테에 온 기분이었다. 음식에는 꿀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 분명히 꿀맛이었고, 다시 찾은 로마에서의 첫날은 분명 꿈이 아닌데 꿈. 맛. 이 나는 것 같았다.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달콤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