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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Sep 26. 2024

Firenze : 살루테, 시뇨르!

4월 24일 (24일차)

오늘은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면서 프런트에 들렀다. 방에 수리할 것이 있어서였다. 어제 저녁에 장을 보고 돌아온 사회와 중년생은 호텔 방문을 열자마자 바닥에서 하얗고 긴 막대기 하나를 발견했는데 가만 보니 천장 쪽 몰딩 일부가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특이점은 없었을뿐더러, 배도 고팠고 늦은 시간에 수리하기도 뭣해서 일단 사진만 찍어두고 밤을 보낸 두 사람이었다.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프런트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얘기하니 미안하다며 낮에 우리가 외출한 동안 수리해 놓겠다고 했다. 이 호텔에 도착한 첫날밤에 이미 에어컨 에러코드 불빛 문제로 직원과 소통해 본 경험이 있었던 사회는 이제는 능숙하게 직원과 의사소통을 하며 미소까지 띠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화를 마치고 뒤를 돌아 몇 걸음이면 만나는 식당. 그리고 역시나 맛있는 조식. 이제 내일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방으로 돌아와 가벼운 차림으로 외출 준비를 마친 사회와 중년생은 프런트에 열쇠를 맡기고는 피렌체의 골목으로 그 가벼운 몸을 던졌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골목을 얼마간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핸드메이드 시계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상점은 지나칠 때마다 중년생이 눈여겨보던 곳이었는데 매번 “다음에 한번 들어가 보자.”라고 했을 뿐 정작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내일이면 피렌체를 떠나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의 ‘다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사각형 모양의 아담한 상점 안은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부터 테이블 위까지 온통 각종 시계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피렌체 상징문양이나 두오모 등 피렌체의 대표 건축물 형태로 예쁘게 조각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평소 실용적인 물건 위주로 구매하는 사회의 눈엔 시계로 가장해서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기념품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로잡힌 관광객의 이름은 바로 중년생이었다. 반면, 사회와는 달리 방문한 여행지마다 마그넷이나 소품 등을 한 두 개씩은 꼭 사는 중년생에게 이곳의 시계는 거의 필수 구매 품목이었다. 기념도 되고 멋진데 거기에 시계라는 기능성까지 갖춘, 완벽한 합리화를 가능케 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한참 동안 이 시계, 저 시계를 신중하게 비교해 보던 그가 결국 고른 것은 자그마한 탁상시계 2개였다. “왜, 두 개나 사?”라는 사회의 물음에 “혹시, 누구 선물로 줄 수도 있잖아. 하하하.”로 얼버무리며 스스로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년생. 하지만 사회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는다. 본인이 사지 않을 뿐, 굳이 말리진 않는 쿨함이 있다. 사회에게는.

두 사람은 밀린 시계를 산 김에 다른 쇼핑도 하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년생의 티셔츠 쇼핑이었다. 처음 로마에서의 목도리부터 볼로냐에서의 재킷까지 가끔 산 의류/잡화들이 어쩌다 보니 모두 본인 것이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사회가 제안했고, 마다할 리 없는 중년생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맘 속에 정해둔 칼하트 윕(Carhartt WIP) 매장으로 향했다.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브랜드지만 중년생이 입을 만한 반팔 티셔츠가 많은 곳이기에 고민 없이 선택했다. 매장에 들어갔다. 구매 끝났다. 어느 정도 빨랐냐 하면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입어 보고 계산하는데 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정도였다. 그렇다고 대충 산 건 아니었다. 그만큼 두 사람 맘에 꼭 들었다는 소리다. 시계부터 티셔츠까지 대만족 쇼핑을 한 중년생의 표정은 아이처럼 너무나도 신나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사회는 재밌어서 연신 웃어댔다.

두 사람의 다음 코스는 카페였다. 이제 좀 걷기도 했고, 그렇다고 배는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떠오른 최적의 선택지였다. 카페 질리는 몇 번 갔으니까 이번엔 다른 곳에 가기로 했다. 시뇨리아 광장의 리보이레(Rivoire) 카페. 정보 없이 가서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1872년 오픈한 이곳은 초콜릿과 디저트 전문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끌리는 대로 그냥 들어가도 150년은 족히 넘은 카페라니. ‘역사적’인 공간이 흔하디 흔한 이 나라는 보면 볼수록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카페를 선택했던 이유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좋아하는 광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멋진 테라스가 있어서였다. 가끔은 단순한 직감이 옳은 길로 안내해 준다.

시뇨리아 광장 한켠에 위치한 카페 리보이레(Rivoire)의 커피와 초콜릿

우리는 물 한 병과 에스프레소 도피오 2잔을 주문했다(총 22유로). 생수(San Benedetto Naturale) 한 병과 와인을 담아 마셔도 좋을 예쁜 물 잔, 흰 접시와 흰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도피오, 금색 찻숟가락과 새파란 포장지 속에 담긴 검은색 초콜릿, 달콤함에 코팅된 입 안과 그 위를 적시는 커피 한 모금, 150년이 넘은 카페의 테라스와 훨씬 더 오래된 맞은 편의 베끼오 궁전까지. 모든 조합이 완벽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베끼오 궁전이 보이는  카페 테라스에서의 여유로운 한 때

지불한 가격만큼 충분한 휴식을 즐긴 사회와 중년생은 일어나 망설임 없이 호텔 쪽으로 향했다. 쉬면서 이미 다음 스케줄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세탁’이었다. 두 사람은 내일 피렌체를 떠나기 전에 귀찮더라도 한 번 더 코인 세탁소를 가야만 했다. 이제 더 이상 갈아입을 옷도 양말도 없었으니까.

호텔방에 잠시 들러 두 개의 에코백에 능숙하게 빨래를 나눠 담아 들고는 지난번에 갔었던 코인 세탁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년생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미리 챙겨 온 책을 꺼냈다. 지난번 왔을 때, 세탁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책이라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각자 한 권씩 에코백에 담아 온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동전 교환기가 고장 나있네. 여기 동전 밖에 안되는데, 잔돈 없어?” 한껏 여유를 부리던 중년생의 얼굴이 굳어진 건 사회의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교환기가 있어서 따로 동전을 준비할 생각을 못했었다. 주머니를 겉으로 만져봤지만 잔돈은 거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탁소 문을 열고 좌우로 고개를 돌려 얼핏 주변을 살펴봤지만 딱히 동전을 교환할만한 상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다?’ 세탁물과 사회만 남겨 두고 너무 멀리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시 빨랫감을 지고 호텔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중년생은 일단 골목으로 나서서 가까운 곳에 동전을 교환할 만한 데가 없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대부분 일반 주택뿐인 작은 골목이었다. ‘포기해야 하나.’라고 잠시 고민하던 그때, 골목 끝 쪽으로 간판은 없지만 뭔가 음식을 파는 것 같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봤다. 인도 가정식을 하는 집 같은데 인도어로 적혀 있고 특별한 안내판도 없는 것으로 보아 현지에서 거주하는 인도인들을 위한 음식점인 듯했다. 아무래도 거기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용기를 내서 문을 밀고 들어갔다. 딸랑~ 출입문에 걸려있는 종이 울렸고, 동시에 식당 안의 모든 인도인들이 나를 쳐다봤다. 발표하러 교단으로 이끌려 나온 사춘기 학생 마냥,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집중된 시선에 얼굴이 오랜만에 화끈거렸다. 메뉴도 읽을 수 없고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건네는 말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당황하던 찰나, 정면 구석에 서 있는 냉장고의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띄었다. 작은 병의 코카-콜라였다. 발견하는 순간 기뻐서 어찌나 소리를 질렀는지. 영문도 모르고 놀라셨을 식당 안의 모든 분께 이제라도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는 바이다. 냉장고에서 콜라 한 병을 꺼내 계산을 하고(2유로) 거. 스. 름. 돈. 을 받고선 개선장군처럼 코인 세탁소로 돌아와 늠름하게 사회의 손바닥 위에 동전을 내놓았다. 외국 여행하면서 느끼는 점인데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언어라는 장벽 위에 낯선 곳이라는 긴장감까지 더해지면 순식간에 큰 일로 둔갑해버리곤 한다.

아무도 없는 코인 세탁소 안에서 나란히 앉아 독서를 즐기는 사회와 중년생의 모습

위이잉- 무사히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의 평안을 찾은 우리는 세탁소 안에 비치되어 있는 접이식 의자를 하나씩 펼쳐 앉고는, 가져온 책을 펼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고개를 창 밖으로 돌리지 않아도 뺨 너머로 느껴지는 하얀 햇살, 위잉- 위잉- 세탁기 소리, 착- 차락-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한참 동안 세탁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말 조용하고 정말 여유로운, 그래서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세탁소 전체를 임대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세탁하는 동안 정말 다른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허락된 시간이었다.

세탁이 끝난 시각은 오후 3시경. 짐이 많으니 호텔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조식 이후에 커피만 마셔선지 속이 빈 상태여서 힘이 없었기 때문에 당도 충전할 겸 젤라또를 하나씩 먹고 가기로 했다. 우리의 피렌체 단골 젤라또 가게에서 가볍게 싱글 콘 2개를 사서 하나씩 흡입한 사회와 중년생은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고작 젤라또로 되겠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부족하다. 하지만 오늘 예정된 저녁 식사를 위해서라면 애매한 시간의 식사는 지양해야 했다. 그럼 예정된 저녁 식사가 뭐냐고? 묻는다면 흐흐흐. 한 번 더 티본스테이크!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다. 주문 가능한 최소한의 양이 1.2킬로그램이기 때문에 양이 적은 사회를 생각하면 점심을 거르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고 며칠 전 한 번 먹었기 때문에 예약하기 전에 살짝 고민했던 사회와 중년생이었지만, 인생의 2대 자기 합리화 중 하나인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까’를 핑계로 과감하게 먹기로 했다.(참고로 인생의 2대 자기 합리화 중 나머지 하나는 ‘일생에 한 번뿐인데’ 임을 밝히는 바이다.)

호텔에 도착한 사회와 중년생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저녁 식사에 임하기 위해 남은 2시간 동안 쉬기로 했다. 사회는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 메모장에 여행 내용을 정리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기도 하면서 휴식을 했고, 이번 여행에서 낮잠을 배운 중년생은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고 사회가 말했다. 중년생이 눈을 뜬 5시경. 두 사람 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인지 몸이 개운하고 가뿐했다. 즉, 많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소리다. 호텔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피렌체에서의 루틴대로 먼저 두오모와 인사를 했다. 하늘은 아직 한낮의 색을 띠고 있었다.

1일 1 두오모 한 바퀴 실천! 정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까!!!

식당까지 천천히 걸어 도착한 두 사람. 정확히 예약 시간인 5시 30분이었다. 급히 예약하는 바람에 너무 이른 시간 밖에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티본스테이크를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테이블로 안내받은 우리는 지난번과 같이 티본스테이크와 루꼴라 샐러드, 그리고 하프 사이즈 와인을 주문하기로 했다. 다만, 지난번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고기의 품종을 끼아니나(Chianina)가 아닌 스코토나(Scottona)로 선택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와인을 끼안티 클라시코가 아닌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로 선택했다는 점이었다. 가격적으로는 첫 번째 선택은 조금 저렴해지는 선택이었고, 두 번째는 비싸지는 선택이었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주문한 대망의 스테이크가 나왔다. 신나게 먹으려는데 잠깐, 뭔가 이상했다. 고기의 가장자리를 보면 고기의 품종이 적힌 작은 깃발이 꽂혀 있는데 떡하니 ‘끼아니나’라고 적힌 것이 아닌가?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증거용 사진을 찍고 직원을 불러서 설명했다. 그냥 먹었다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등급이 더 높은 것으로 나왔으니 만약 괜찮으면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추가 비용 지불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이런 감사할 일이.

두 번째 먹으니까 더 맛있다!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이미 입에 침이 가득 고여버린 사회와 중년생은 음식과 와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선한 올리브 오일을 스테이크에 거의 들이 붇다시피 찍어 한 입, 와인 한 모금, 루꼴라 샐러드 와구 한 입, 물 한 모금의 순서로 무한 반복이었다. 행복했다. 그런데 한참 먹다 보니 누군가 힐끗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옆 테이블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옆 테이블에 한쌍의 노년 부부가 앉아계셨는데 그중, 중년생의 대각선 쪽에 앉으신 남편분의 시선이었다. 처음엔 우리가 주문한 와인을 보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동양인 두 사람이 와서 꽁냥 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여우셨던 모양인지 우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것이었다. 워낙 인상이 좋으시고 잘 생긴 분(배우 리암 니슨 닮으심)의 호의적인 시선이어서 불쾌하거나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우리 테이블 보다 빨리 식사를 마치신 그 부부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채비를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우리는 식사를 이어가는데 남편분이 일어나면서 살짝 망설이더니 중년생에게 말을 한마디 던지고 흐뭇하게 웃으며 떠나셨다. “살루테, 시뇨르!”(Salute, Signor!) 굳이 나름 해석해 보자면 “건배, 젊은이!” 정도의 뉘앙스였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사회와 중년생은 당시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짧은 두 단어가 머리에 계속 맴돌아 나중에 찾아봤다. 이탈리아어로 Salute는 ‘건강’이라는 뜻의 단어인데 이탈리아인들은 건배할 때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살루테’라고 외친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단어인 Signor 혹은 Signore는 ~군, ~씨, ~님 정도의 남성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때는 저 말에 전혀 반응을 못한 중년생이었지만 지금이라도 대답을 해드리는 바이다. “리암 니슨 닮으신 잘 생긴 아저씨, 살루테!”

우리는 천천히 한참 동안 스테이크를 더 즐긴 후, 입가심으로 에스프레소도 한 잔씩 했다. 마지막으로 커피잔 바닥에 녹다 만 굵은 갈색 설탕까지 티 스푼으로 싹싹 긁어먹고는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받아 든 계산서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끼아니나(Chianina) 가격으로 계산되어 있었다. 천천히 설명하는 중년생. 여차저차해서 요래 저래 되었다고 하니(유창한 의사소통이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실까 봐 알려드리는데 손짓발짓 떠듬떠듬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도 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흔쾌히 우리가 주문했던 가격으로 다시 계산서를 발행해 주셨다. 역시 어딜 가나 당황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결’이란 게 되는 법이다.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날의 그의 작품 모나리자의 모습

7시 30분이 넘어선 밖은 아직 밝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르노 강변을 거닐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모나리자’를 거의 완성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이미 완성된 ‘천지창조’가 보였다. “동전 하나만 줘봐.” 사회의 말에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중년생은 1유로짜리 동전을 하나 찾아서 사회에게 건넸다. 받아 든 사회는 그림 가장자리에 놓인 박스에 동전을 넣고는 다시 중년생 옆으로 돌아와서 강변 쪽으로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림에 대한, 그리고 피렌체의 마지막 저녁에 대한 팁이었다.

노을과 함께 점점 저물어 가고 있는 아르노 강변의 낭만적인 풍경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걷자 저 멀리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사회와 중년생은 다리를 건너 다시 반대로 한참을 걸었다. 붉은색의 영역이 점점 넓어져 온 하늘을 점령하더니 이번에는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붉은빛 보다 짙은 회색이 하늘을 뒤덮을 때쯤 갑자기 어느 집 창문에선가 반짝하고 전등 불빛이 켜지더니,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 불이 들어왔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피렌체의 밤. 우리는 그 사이를 걷고 또 걷고,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멈추고 싶지 않은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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