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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Sep 12. 2024

Firenze : 나는 누구? 여긴 시에나!

4월 21일 (21일차)

사실, 지난 이틀 연속으로 등정(쿠폴라와 지오토의 종탑)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인지 두 사람 다 몸이 제법 피곤해서 오늘은 빈둥빈둥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오늘을 쉬면 내일은 토요일이어서 어딜 가나 붐빌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조금 무리되더라도 하고 싶은 일정을 오늘 소화해 내고 내일 편히 쉬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2023년 4월 21일 금요일)

오늘 해낼(?) 일정은 근교의 시에나(Siena) 당일치기. 이탈리아 중부의 소도시인 시에나는 찾아보니 사실 자부심이 엄청난 도시였다. 중세 시대에 무역과 금융업을 통해 도시 국가로 성장, 1167년 시에나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피렌체와 경쟁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자랑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348년 발발한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의 절반이 줄어드는 피해를 입고 국력이 약해졌으며, 1555년 피렌체와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토스카나 대공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중년생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지금은 피렌체 근교에 있는 도시쯤으로 인식되지만 역사적으로 엄연히 큰 힘을 자랑했던 당당한 한 국가여서일까? 만났던 가이드마다 하나같이 시에나는 시간 되면 반드시 가 보라고 추천했었기에 사회와 중년생은 망설임 없이 오늘 하루를 시에나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기행문의 처음부터 누누이 얘기했듯, 사회와 중년생은 평소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했고 여행 자체도 급작스럽게 떠나왔기 때문에 필수 볼거리나 먹거리, 전문적인 역사 정보 등은 기대하지 말아 주십사 하는 당부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는 바이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쓰다 보니 부족한 정보력에 스스로 갑자기 찔리기 때문임도 함께 고지하는 바이다. 콜록콜록. 쨌든, 미숙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여행한 사람의 기록은 이랬구나 정도로 가볍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

시에나 벼락치기를 위한 머리와 몸의 기본자세, 여행책자 머리에 집어 넣기(좌), 빵 두 개 뱃속에 집어 넣기(우)

사회와 중년생은 시에나에 가기로 하긴 했지만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어젯밤 숙소에 돌아와서는 한국에서 구입해 가져온 여행책자를 꺼내 들고 밤늦게까지 벼락치기를 했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고 조식을 먹으러 가서는 특별히 각자 빵 2개 씩을 접시에 담았다. 이것도 준비라면 준비였다. 속이 든든해야 힘도 나는 법이니까. 먹고 방에 올라와 천천히 준비한 우리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 좌측 골목에 있는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그동안 밀린 피로가 뻐근한 다리에서부터 온몸으로 나른하게 퍼져나갔다. 가는 버스 안에서 조금 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년생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시에나행 편도 2인 16.8유로), 표를 개찰구에 밀어 넣어 오늘 날짜를 찍었다. 조금 기다리니 안내직원이 반대편에 버스가 와 있다는 시늉을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시에나가 목적지인 사람들이 줄지어 반대편으로 걸어가서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스르륵- 버스는 곧 출발했고, 하늘이 참 맑다며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스르륵-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차가 덜컹거려서였는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눈이 떠졌다. 아직 반쯤 잠 속에 걸쳐있던 중년생은 순간, 지금 본인이 누군지 또, 어디에 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잠이 깨는 속도에 맞춰 테트리스처럼 제 자리로 돌아와 맞춰지는 자아와 기억들.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해 보니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있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초원과 농가. 그 위를 빛내고 있는 하얀 뭉게구름과 새파란 하늘. 사회와 중년생은 버스 좌석 등받이에 늘어지는 몸을 맡긴 채 고개와 시선만을 돌려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얼마간 감상했다. 갈수록 조금씩 집들과 건물들이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느낌만으로도 시에나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던 버스가 완전히 멈춰 섰다. 시에나였다.

버스에서 바라본 여유롭고 너그러운 이탈리아 시골 풍경 (시에나 가는 길)

내린 곳은 시에나 비아 토찌(Siena-Via Tozzi) 정류장. 벼락치기로 어젯밤 여행책에서 봤던 곳이었다. 내린 후에는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면 된다던데 그전에 두 사람 다 화장실이 급했다. 정류장 지하 쪽으로 화장실 표시가 되어 있었다(2인 2유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후미진 느낌이었다. 밤 길이었으면 안 가고 참았지 싶었다. 잠시 후,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1층으로 올라온 두 사람. 정신을 차리고 넓어진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니 상당히 많은 버스가 지나가는 정류장이었다. 한쪽 편으로는 다소 과감한 복장을 한, 십 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노닥거리고 있었다. 지도를 볼까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보다는 사람들이 줄었지만 걸어가는 방향은 확실히 한쪽으로 집중되어 있어서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시에나의 건물들을 감상하며 우리의 첫 목적지인 캄포 광장 쪽을 향해 걷는 중에 관광객들이 상당히 몰려 있는 곳이 나타났다. 작은 광장인데 3면이 궁전으로 둘러싸인 특이한 구조였다. 찾아보니, 특히 가운데에 있는 궁전은 살림베니 궁(Palazzo Salimbeni)으로 1472년 창설된 세계 최초의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 BMPS)의 본사가 있는 건물로도 유명했다. 이탈리아는 참 최초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베니 궁을 등지고 앞에는 시에나 출신의 신학자이자 자유무역을 지지했던 경제학자인 살루스티오 반디니(Sallustio Bandini)의 동상이 서 있었다. 뚜렷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깔끔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궁전들과 동상이 있는 이 광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살림베니 궁 앞의 작은 광장(좌)과 살루스티오 반디니의 동상(우)의 모습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돌려 얼마간 걷다 보니 왼편 아래쪽으로 경사를 따라 계단이 나있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큼지막한 계단 몇 개를 내려가면 약간의 평평한 길이 있고 다시 계단이 나있는 구조였는데, 그 약간 평평한 길 옆에는 바(Bar)가 있어서 길가로 테라스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길의 끝에선 눈부신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넓은 광장이었고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 시에나 하면 떠오르는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 임에 틀림없었다. 어둡진 않지만 주위가 높은 건물에 둘러 싸여 약간은 실내 같았던 골목의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눈부신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통과하니, 사회와 중년생의 입에서 저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 멀리 보이는 빛나는 캄포광장. 이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거의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뻥 뚫려 있는 광장. 정면으로 13세기에 지어진 시에나의 청사이자 현재까지도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 그중에서도 좌측으로 우뚝 솟은 만자의 탑(La Torre del Mangia)이 우리의 눈을 첫째로 사로잡았다.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건물들이었다. 지금은 1층이 전부 카페, 바 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찾아보니 이 건물들은 당시 중세 귀족들의 저택이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광장 바닥의 모양새였다. 부채꼴로 둥근 데다가 중심부터 가장자리까지 완만한 경사가 있어서 광장의 모양이 마치 조개껍질을 뒤집어 놓은 듯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품은 낭만적인 광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하루 종일 있어도 좋겠다 싶었지만 사회와 중년생은 우선 시에나 중심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난 뒤에 다시 오기로 하고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걸으면 나타날 시에나 대성당(Duomo di Siena)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때 광장에서 반드시 좀 쉬었어야 했다.

아름다운 저택들이 둘러 싼 여유로운 광장의 모습(좌), 통로를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푸블리코 궁전(우)

두오모는 캄포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새파란 하늘과 완벽하게 대비된 새하얀 대성당이 나타났다. 전면부를 장식하는 조각들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해서 피렌체의 두오모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탈리아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스마트폰 카메라에 한 번에 담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건물의 크기가 엄청 거대했다.

어마 무시하게 화려한 시에나 두오모의 정면 얼굴과 반측면의 아름다운 자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자 아까 캄포 광장을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처럼 갑자기 개방감이 확 느껴졌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우리가 지나온 골목을 천천히 돌아봤다. “찾았다!” 사회가 소리쳤고 말을 이어갔다. 사회의 말인즉슨, 골목이 좁고 건물이 상당히 높아서 고개를 올려봐도 파란 하늘만 보일 뿐, 마치 미로처럼 시야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막혀 있어서 저 건물 뒤에 뭐가 있는지, 골목 끝에 뭐가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명작들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감동이 더 배가 된다는 사회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높은 건물로 둘러 싸인, 그래서 미로 같았던 중세시대에 멈춘 듯 한 시에나의 골목들

요새처럼 빼곡히 붙어 있는 중세시대에 멈춘 도시 시에나. 피렌체를 뒤덮고 있는 붉은색 지붕과는 다른, 좀 더 빛바랜 벽돌색 건물들이 땅 속 깊이 뿌리 채로 박혀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몇 백 년, 몇 천년이 지나도 우직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이. 사회와 중년생은 다시 시에나 대성당 쪽으로 몸을 돌려 내부 관람을 위한 티켓을 판매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줄을 서지 않았다. 티켓을 사지 않았다는 소리다. 정확히 말해서 내부 관람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아니, 거기까지 가서 도대체 왜?라고 묻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정말 이 순간만큼은 관람할 힘이 없었다. 이때까지도 왜 그런 맘이 드는지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몸과 정신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20일 정도 계속된 성당 관람과 종탑 등반으로 인한 체력 저하는 물론, 너무 멋진 나머지 꾸역꾸역 지식을 밀어 넣다가 머리에도 과부하가 걸린 셈이었다. 아무리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품들이라 할지라도 제반 지식도 없는 사회와 중년생이 단기간에 받아들이기엔 한계치를 넘어서는 분량이었다. 주말인 내일, 관광객으로 더 붐비더라도 오늘 하루는 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지만 이미 우리는 시에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줄 서는 과정부터 지치는 내부 관람 대신, 가볍게 주변이라도 휘-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두오모 뒤 쪽으로 가니 범상치 않은 내리막 돌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길가를 따라 미슐랭 스티커들이 붙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멋진 볼거리들의 연속이었으나 우리는 가파르고 큼지막한 계단에 다리가 아팠고, 급기야는 내리쬐는 햇살의 눈부심까지 짜증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결국엔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사회와 중년생의 신경질이 칼처럼 서로 부딪혔다. “아니, 도대체 왜 그래?”, “뭐가!!!” 피렌체에서 하루 그냥 쉴 걸 왜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지금 시에나 땅 위에 서 있나 하는 후회가 잠깐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사실 진심으로 다퉜다기보다는 힘들어서 생긴 짜증을 폭발시키기 위해 정말 사소한 일을 핑계 삼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었다.

아름답지만 가파른 돌계단과 사회&중년생의 그림자(feat. 중년생의 feet), 웅장하지만 더 웅장한 피로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두오모의 어느 문

서로 살짝 감정이 상했지만 지쳐서 그 이상 화를 내거나 심지어 화해할 힘도 없었던 두 사람은 몇 걸음의 차이를 두고 두오모 외곽 길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외곽 길이라 그런지 돌 난간 너머로는 건물 대신 나무와 풀이 가득한 너무도 여유롭고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너그러운 자연의 모습에 이미 둘 다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갈림길이 나타나는 곳에서 중년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지치고 배고파서 그런 거 같지 않아?” 그리고 계속 이어서 얘기했다. “지금 식사를 하는 게 어때? 아니, 반드시 지금 먹어야 할 것 같아.” 사회는 중년생의 얘기를 듣다가 피식 웃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화해 아닌 화해를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정확히 점심때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두 사람의 눈앞에 맛집 냄새를 풀풀 풍기는 로컬 오스테리아 하나가 나타났다. 살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가게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외곽이라 그런지 현지 분위기가 진하게 풍겼다. 낡았지만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서도, 손으로 직접 적은 메뉴판에서도.

고풍스러운 포스가 느껴지는 시에나 어느 골목의 오스테리아,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보면 익숙해지는 필기체 메뉴판

처음 메뉴판을 받았을 땐 필기체여서 뭐가 뭔지 읽기 힘들었지만, 마치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듯 시간을 들여 찬찬히 바라보니 어떤 게 A고 어떤 게 B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읽을 수 있게 되어도 대부분 모르는 메뉴인 건 변함없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다른 테이블에서 먹는 음식을 가리키기도 하고 몸짓으로 설명도 해가며 어찌어찌 주문을 완료했다. 안티파스토로는 살짝 구운 바게트 빵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짙은 갈색의 무언가를 익혀서 간) 것을 바르듯이 올려서 나온 요리였다. 피렌체에서의 곱창 요리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컨데, 이 것도 분명히 내장의 일부인 것 같았다. 색으로 봤을 때 ‘간’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서로 내놓으며 입으로 가져갔다. 우와! 정말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도 있겠지만 이 맛은 진짜였다. 먹어본 맛도 아닌데 입에 감칠맛이 착착 붙었다. 미리 주문해 둔 산지오베제 품종 하프 보틀 레드와인을 곁들였다. “아~~~ 녹아!” 사회의 감탄사를 시작으로 우리 테이블에는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좀 전에 싸운 게 맞나 싶었다. 곧이어 프리미피아띠로 파스타 종류 2개가 나왔다. 우리가 주문했지만 배고픔에 너무 허겁지겁해서 정확이 뭘 주문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색과 맛으로 설명해 보자면 하나는 관찰레가 들어간 전통 까르보나라 스타일, 다른 하나는 둥글고 다소 두꺼운(우동 면처럼) 면인데 소스 색이 녹색인 파스타였다. 아무려면 어때! 정말 너무도 맛있었고 와인과도 궁합이 완벽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우리의 음식. 하지만 세콘도(주로 육류인 본식)는 주문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엔 음식을 주문할 때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전부 1인 1 메뉴를 주문해야 하는 줄 알고 고민했었으나, 여행해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그냥 먹고 싶은 수량으로 주문하면 되는데 다만, 이탈리아는 코스대로 나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순서가 꼬이지 않게 직원에게 설명을 잘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요리 종류와 관계없이 한 상에 전부 올려 먹길 원한다면, 코스대로 말고 한 번에 다 달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애피타이저도 두 사람이 와서 1개를 주문할 경우, 둘이 셰어(나눠 먹을 것)한다고 말해주면 여분 접시와 포크를 추가로 가져다준다. 우리나라 사람과 이탈리아 식당이 서로를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이런 점이 꼬였을 때다. 예를 들어 둘이 와서 애피타이저 1개와 파스타 2개를 주문할 경우, 별 말이 없다면 이탈리아에서는 먼저 나온 애피타이저 1개를 한 사람 앞에 놔주고, 그 애피타이저를 다 먹을 때쯤 다가와 다음 식사를 드려도 되겠냐고 묻는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은 이미 애피타이저를 내올 때 앞접시를 알아서 가져다주지 않는 점에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는 애피타이저를 파스타와 함께 먹기 위해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파스타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 쪽을 쳐다보면 그 직원은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한 기색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아마도 직원의 속 마음은 이럴 것이다. ‘파스타 나가야 되는데 왜 애피타이저를 여태 안 먹고 있지? 셰프가 파스타 언제 나가면 되냐고 자꾸 쪼는데. 아 짜증 나.’ 물론 정말로 인종차별 때문일 경우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오해이니 알아두면 편리하다. 우리는 직접 부딪혀서 습득하긴 했지만.

우리의 화난 기분을 풀어주고,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준 그날의 만찬과 디저트

쨌든, 식사를 흡족히 마치고 돌체(디저트)로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거기에 에스프레소 1잔씩은 이제 필수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아까부터 옆 테이블 외국인들이 우리 쪽을 흘끗 거리는 게 보였다. 이미 와인도 좀 마신 듯 얼굴도 벌겋게 올라온 상태로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우리는 몹시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말을 섞기 귀찮아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가만 보니 그들이 흘끗 거리는 건 중년생의 모자였다. KOREA라고 선명하게 적힌 흰색 나이키 모자. 그리고 그들이 모자에 관심을 보인 건 다름 아닌 BTS 때문이었다. 대충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BTS, 방탄, 정국... 이런 단어들이 대부분이었고 태블릿으로도 BTS의 공연 영상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반응했으면 합석이라도 할 티를 팍팍 내고 있었지만 모른 척해서 미안했다는 말을 이 페이지를 빌어 정중하게 전하는 바이다. 죄송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에너지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었다구요. 하지만 정말 BTS의 인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총 55유로를 지불했다. 정말 식사는 대만족이었고, 한참 쉬다 나오니 몸도 어느 정도 충전되어 있었다. 남은 시간은 관광이 아닌 산책을 하기로 했다. 걷다 보니 산타고스티노 성당(Chiesa di Sant'Agostino) 쪽으로 주차장이 있고 그 위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공간이 있는데 탁 트인 전망이 정말 끝내줬다. 멋스러운 시에나의 건물들과 나무들,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막혔던 가슴속까지 트이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안에 있으니 잠시나마 중세에도 같은 자리에서 우리와 똑같은 하늘을 바라봤을 시에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천천히 사진도 찍고 여유를 부리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밥으로 충전 후, 신나고 여유롭게 돌아다닌 시에나의 한적한 외곽의 모습들

외곽 쪽이라 그런지 주차도 가능한 골목을 지나쳐 걸었는데 약간 내리막인 이 골목, 너무 예뻤다. 사진에 담으며 검색도 해봤다. 지오반니 듀프레 골목(Via Giovanni Dupré). 이탈리아의 조각가인 지오반니 듀프레의 이름을 딴 골목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일방적인 추측일 뿐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아무렴 어때. 여행자들의 핫 플레이스는 이제 아무래도 괜찮았다. 멋진 건물과 돌바닥과 문과 경사가 있는 골목. 사회와 중년생 두 사람의 핫 플레이스는 바로 여기였다.

사회와 중년생의 원픽은 뭔가 힙한 지오반니 듀프레 골목! 우리 맘대로 여행이라 픽도 맘대로!

우리는 다시 캄포 광장으로 돌아와 또 한참을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사회는 가져온 메모지에 펜으로 가볍게 광장 풍경을 스케치하다가 그냥 쉬고 싶었는지 메모지를 덮어 버렸다. “갈까?”, “그래, 가자!” 충분히 쉬고 난 뒤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전에 내렸던 정류장에 도착해 참았던 화장실을 이용하고는 돌아가는 버스표(2인 16.8유로)를 구매한 사회와 중년생. 그런데 어디서 타야 할지 표시가 애매했다. 중년생이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안 되겠는지 혼자 서 계시는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무표정으로 서 계셔서 말 걸기가 좀 힘들었는데 막상 여쭤보고 나니 세상 친절한 웃음으로 타는 곳을 알려주셨다. 우리가 타야 할 피렌체행 버스는 이미 정차해 있었다. 표시된 출발 시간을 보니 곧 떠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제법 버스에 타 있었고, 운전기사는 없이 출입문만 열어 둔 채였다. 중년생은 피렌체에서 출발할 때 했던 것처럼 구입한 표를 접어 개찰일자를 찍기 위해 운전석 옆에 설치된 기계에 밀어 넣었다. 어? 근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처음엔 기계가 고장 났나 했지만 사회를 포함해 찍은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계속 시도했다. 중년생이 기계 앞에서 끙끙대자 먼저 탑승을 완료한 분들이 도와주기 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다른 분이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표와 이미 개찰일자 찍기에 성공한 사회의 표를 곰곰이 살펴보는 중년생. 갑자기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시도해 본다. 띠디딕 띡- 결과는 성공! 티켓 하단에 선명하게 인쇄된 날짜가 보였다. 그게 뭐라고 의기양양하게 사회가 앉은 자리로 다가가는 중년생. 알고 보니 티켓 판매소에서 너무 얇은 종이에 티켓을 인쇄해 준 것이 화근이었다. 종이에 힘이 없어서 기계 끝까지 들어가지 못한 채 밀어 넣을수록 구부러지기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중년생이 마지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표를 두껍게 만들기 위해 한 두 번 더 접은 채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어? 저 사람도 안 찍히나 봐!” 사회의 말에 출입구 쪽을 쳐다보니 어떤 아저씨가 표를 찍지 못하고 계셨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다가가는 중년생. 곧 아저씨에게 표를 받아 들더니 능숙하게 몇 번 접어 기계로 밀어 넣었다. 띠디딕 띡- 해결한 후 중년생은 바로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순간 사회가 목격한 중년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표정엔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고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에나, 안녕! (feat. 만자의 탑과 비행기)

피렌체로 돌아왔지만 7시가 안 된 시간이어서 아직 밝았다. 두 사람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망설임 없이 와인샵으로 향했다. 외부 식당에서 먹기에는 너무도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선택은 이탈리아 3대 와인 중 안 마셔본 마지막 와인. 와인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바롤로였다(47.9유로). 카드로 계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물 흐르듯 Conad에 들려 저녁 장(27.87유로)까지 본 후, 호텔로 복귀했다. 정말이지 어제 99센트 샵에서 산 미니 와인잔은 신의 한 수였다. 어제는 저녁을 식당에서 먹는 바람에 오늘이 사실상 새 잔의 개시일인 셈이었는데, 얇은 플라스틱 컵이 아닌 묵직한 유리잔에 와인을 담아 마시니 맛이 전혀 달랐다. 남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우리의 최애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와인 잔에 담아 마신 우리의 첫 바롤로는 충격이었다. 와인의 왕이라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엄청 무겁고 강한 와인일 거라고만 예상했는데 너무 향기로워서 마치 향수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새로운 경험엔 언제나 강렬한 짜릿함이 깃든다. 힘들고 힘들었고 또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고, 즐겁고, 또 맛있고, 더 행복한 하루였다. 벌써 또 밤이었다. 행복한 어두움이 이불처럼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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